애프터눈 티로 우아한 주말 완성하기
직장과 커피를 분리할 수 없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일 점심식사 후에 커피는 이제 없을 수 없는 루틴이다. 가끔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한 잔을 마시고, 점심에 한 잔을 더 마시는 날도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30분 정도 커피타임을 호로록 가지고 나면, 점심시간에 휴식을 즐긴다기보다는 하루를 잘 견뎌내기 위해 카페인 급속 충전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쉬는 날에 카페에 가야 하는 약속이 생긴다면 가급적 차 종류나 가벼운 음료를 골라마시는 편이다.
시간이 맞을 때면 종종 만나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임의 약속을 정할 때는 어느 카페를 갈까 고민한다. 만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이야기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마시는 음료의 종류보다 '대화'가 중점인 모임이기에 자리가 편안한 카페를 위주로 찾는다.
하지만 지난여름에는 토론 대신 요즘 각자가 가장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기로 했고, 영국 여행 때 미처 하지 못했던 애프터눈 티를 한국에서 즐겨보자고 했다.
예약자명을 대고, 남는 자리 중 채광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아 차를 주문했다. 더운 여름이었으니 차가운 티를 주문한 테이블이 많았다. 하지만 에어컨 바람이 쾌적하게 도는 실내였고, 분위기 내자고 여기까지 왔으니 정석대로 따뜻한 티를 주문했다. 티가 먼저 나오고 애프터눈 티의 핵심인 3층 다과가 나왔다.
고풍스러운 접시에 예쁜 조화와 리본이 장식된 3층 트레이에는 층별로 다른 디저트가 있었다. 1층에는 오픈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2층에는 다쿠아즈와 스콘, 요거트가. 3층에는 브라우니와 마카롱이 자리했다. 가벼운 다과세트보다는 한 끼를 넉넉히 채우는 브런치 느낌에 가까웠다.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옛날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점원이 공주고, 손님은 놀러 온 이웃나라 공주라는 컨셉의 모 화장품 브랜드처럼 말이다.
이름이 가물한데 차도 향이 좋았다. 보통 차를 마시면 "향으로 마시는 맹물" 같았는데, 이 차는 맛도 좋았다. 입안에 머무는 향이 맛으로 느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차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차를 우려내는 물 온도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일반 카페와는 그 점이 달라서 차맛이 더 좋았나 싶기도 하고.
향기로운 차, 3층짜리 다과보다 더 마음을 뺏긴 건 식기였다. 비싼 브랜드의 접시를 들이고 싶어 한다는 주부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접시가 뭐라고 그 돈을 주고 사고 싶은 거지?'라고 이해를 못 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나도 똑같아졌다. 마음에 드는 식기를 보면 당장 내 방에도 들여놓고 싶다.
디저트를 작게 잘라 입에 넣고, 차의 향을 천천히 음미하며 삼켰다.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급하게 털어 넣는 카페인이 아니라, 지친 일주일을 잘 정리하고 접어 넣을 수 있는 여유를 누렸다.
서로 요즘 가장 나누고 싶은 것으로 문학 작품을 소개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시시껄렁한 세상 얘기나 사는 얘기도 분명 좋은 대화 주제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가 필요한 대화는 훨씬 더 깊은 울림과 치유를 준다.
여름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공간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하게 차를 즐기는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들기도 했다. 꾸역꾸역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제법 번듯한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