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 전사지 원데이 클래스
원데이클래스를 매달 하나씩 하다 보니 슬 관심 가는 게 없어졌다. 내가 주로 하고 싶다고 담아놨던 수업들은 그림, 베이킹 이 정도더라. 날이 풀려서 그런지 몸을 좀 움직여보면 어떨까 싶어 친구 S에게 같이 댄스 수업을 듣는 게 어떤지 물었고, 그는 요즘 움직일 기운이 없다며 공예 클래스를 찾아보자고 했다.
S는 도예 클래스를 들으면 어떨지 묻더니 물레, 핸드 빌딩 등 여러 가지를 살피다가 결국 유리컵 전사지 공예로 결정했다. 컵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가 꾸민 컵을 한번 굽기는 하니까... 그런대로 비슷한 셈 치기로 한다. 대체로 친구와 무언가를 함께 할 때는 오랜 기간의 계획보다 때마다 흘러가는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다.
90분, 지금까지 들었던 클래스 중 가장 시간이 짧은 클래스였다. 그만큼이나 하는 작업은 간단했다. 전사지 뒷면에 밑그림을 그리고, 오려서 붙이면 끝이 나는 과정이었다. 물론 뒷면에 밑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좌우반전을 신경 써야 했고, 물에 불린 필름처럼 얇은 전사지가 말리지 않도록 긴장해야 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한 전사지를 보니 정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오리는 일도 그랬다. 처음에는 캐릭터를 만들어 꾸미고 싶었으나, 굽고 나면 뭉개져 보여서 예쁘지 않다는 작가님 조언에 단순한 무늬로 만들기로 했다.
나는 꽃을, 친구 S는 다양한 무늬를 여기저기 붙이는 것으로 결정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오리고, 물에 담가 불린 뒤에 전사지를 떼어내 컵에 붙였다. 공기방울이 남아있으면 구울 때 구멍이 날 수 있으므로 밀대로 밀어 공기방울이 없도록 꼭꼭 붙였다. 유리 표면에 물로 필름을 붙이는 형식인지라 잘못 붙이면 물을 살짝 묻혀서 위치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그렇게 바짝 긴장한 채로 붙이지 않아도 되니까.
이미 몇 번의 클래스를 거치면서 손재주가 없어도 수업 작품은 기대할만하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나 이번 원데이클래스 결과물도 마음에 든다. 이것저것 배워보면서 몰랐던 의외의 면을 발견하는 건지, 직접 만든 작품에 대한 애정 필터가 생기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는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재미있을 거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간이었다. 다른 수업에 비해 짧은 시간도 그랬고, 그냥 오려 붙이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즐거웠고, 내 작품을 꼼꼼히 어루만져 완성하는 일에 꽤나 보람을 느꼈다.
컵을 만드는 내내 '완성된 이 컵에는 무얼 담아 마실까?'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냥 물을 담아 마시는 건 심심할 테니까. 꽃차를 담아두고 독서와 함께 즐기면 어떨까, 커피를 담아 공부할 때 옆에 둘까, 아니면 멋진 안주에 어울리는 술을 담아 혼술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하는 상상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건 요즘 유행하는 홈카페, 홈텐딩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 컵이기 때문이다. 컵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 중점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기준에 그렇게 혼자 시간을 향유한다는 건 예쁘고 정갈한 식기에 맛있고 좋은 것들을 담아야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쁜 식기를 사용한 적이 없기에 홈카페로 혼커피, 홈텐딩으로 혼술을 제대로 즐겼다 느낀 적이 없으니 직접 만든 컵이 품으로 들어오는 날 꼭 제대로 만끽해 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