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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Jan 12. 2023

마시면 취하니까 예술도 술, 그리고 술도 예술

세상에 맞서는 술술 콤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같이 미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술을 허락한 게 아닐까.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마시는 술은 물론이고, 마술, 학술, 의술, 예술, 상술, 화술, 무술, 입술… 까지는 너무 갔나. 기술로 홀리든, 매력으로 홀리든, 화려한 언변이나 작품으로 홀리든 하다못해 마취로라도 혼을 쏙 빼놓는 게 세상 모든 ‘술’이다.


 특히 이런 술과 술이 만나면 그 혁신적 에너지가 우주 대폭발 수준인데. 가령 마술과 무술이 만나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거나, 상술과 화술이 만나 한계 없는 매출을 만드는 게 그렇다. 이렇게 기가 막힌 만남 중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조합이 있는데, 알만한 이는 다 안다는 술과 예술의 콜라보다.





 콘서트나 록 페스티벌 같은 축제의 장에는 술이 빠질 수 없고,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공연에도, 미술 작품을 관람할 때도, 심지어는 책을 읽을 때도 술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일단 술은 일상에 찌들어 한껏 어색하게 쭈그러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펼쳐 놓는다. 자고로 한국인은 흥과 해학의 민족이 아닌가. 딱딱한 틀에 갇힌 모습에서 풀어져, 대상인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흥을 돋운다. 점입가경으로 작품에 심취하게 하고, 급기야는 내가 주인공인지 작품이 나인지 무아도취 하게 한다. 참, 이쯤에서 의아함을 느꼈을 당신을 위해 미리 이야기한다. 앞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를 더 잘 이해하게 하거나, 기억하게 한다는 뉘앙스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혼술의 재미를 깨달은 것도 술술 조합 때문이다. 길어진 팬데믹으로 혼술이 주류 문화로 자리 잡는다는 둥 그런 얘긴 잘 모르겠고, 혼자 마실 때 비로소 예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이 아닌 차를 곁들여야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을 테지만, 예술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대상으로 정의한 이는 어디에도 없다. 술에 취해 알딸딸하게 읽는 공상 과학 소설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다 놓고, 영화 속 배우의 처량한 모습ㅡ실제로는 분명 나보다 제곱 아니 열 제곱은 더 잘살고 있을 테지만ㅡ은 마치 내 모습인 양 마음이 시리다. 작품과 혼연일체 되었다 느낄 때 몰려오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함께 마시는 술은 즐겁다. 술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가져다주는 들뜨는 분위기를 좋아하기에 더 그렇다. 숙취 걱정은 미뤄두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가벼운 이야기로 웃고 떠드는 것도, 유흥의 붕 떠 있는 분위기와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즐겁다. 술 한 잔에 담기는 이야기가 가볍든 무겁든, 별것도 아닌 한 모금으로 취해서 둥실 떠오르는 몸처럼 어깨를 짓누르던 중력을 털어내기도 한다. 부딪힌 술잔은 타인과의 관계를 깊어지게 하고, 혼자 감당하던 무게를 기꺼이 나눠 해결하게도 한다.





 하지만 혼자 마시는 술은 나를 단단하게 한다. 술은 어른이라서, 직장인이라서, 첫째라서, 선배라서. 여타의 온갖 자리와 책임을 다하느라 묻어두고 한참 뒤로 밀어뒀던 감정을 꺼내 보게 한다. 하나씩 꼼꼼히 돌아보게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예술은 증폭제로 작용한다. 주인공에게 이입해 눈물을 쏟게 하기도, 일어날 기운을 내게 하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문장이나 그림 속 구석을 뜯어보면서 답을 찾게도 한다. 한 모금 술이 마른땅을 말랑하게 적시면, 한 조각 예술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새싹에게 햇살이 되어주고 바람이 되어준다. 그렇게 단단해진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하던데, 술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향락’이다.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에 조용하게 커다란 힘을 행사하는 문학과 음악, 공연 등 예술은 뭇 어른의 소울푸드인 술과 만나 세상살이에 영 허술한 나를 돕기라도 하듯 거대한 내 우주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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