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ORAMA 1453>
'어디부터 시작할까?'
어젯밤 도착해서 구체적인 여행 일정을 계획하며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이스탄불의 시작이라...'
이스탄불은 두 개의 대륙에 걸쳐 있는 유일한 세계적 도시다. 두 개의 대륙에 걸친 나라는 종종 볼 수 있지만 도시로 범위를 한정하면 이스탄불만 남는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곳인 만큼 당연히 역사 속에서도 중심이 되었다.
이스탄불의 역사는 크게 3개의 변곡점을 지니고 있다.
기원후 330년, 고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비잔티움 천도가 그 첫 번째 변곡점이다. 그후 이곳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불리며,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로써 천년을 호령한다.
두 번째 변곡점은 오스만의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1453년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과 오스만 제국의 비상(飛上)이 교차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Istanbul)'로 불리게 되면서 15, 16세기 세계의 수도를 자처하게 된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에 이은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터키공화국의 건설(1923년)이 마지막 변곡점이 된다. 터키는 수도를 앙카라(Ankara)로 이전하면서 이스탄불이 가졌던 무거운 짐을 벗겨주었다.
이제 오늘날의 이스탄불은 옛 역사를 간직한 거대한 박물관 도시가 되었다. 박물관 도시라고 하니깐 왠지 고리타분한 도시의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그건 괜한 생각이다. 이스탄불은 여전히 북적이고 꿈틀대는 역동적인 도시니깐 말이다. 그걸 확인하러 이곳에 왔다.
'이스탄불(Istanbul)'은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스탄불이 시작된 역사적 현장에 가보는 것으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PANORAMA 1453>에 가 보자.'
다음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기 전에 찾아가 봐야 할 곳이 있었다. 환전소다. 미리 알아봐 두었던 환전소에 들어가 보니 환전 직원 5명 정도가 칸막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일단 100유로를 터키 리라(TL)로 환전해보았다. 역시나 걸어오면서 보았던 다른 환전소보다 환전한 금액이 높았다. 환전을 마치고 나오면서 환율 전광판을 보니 그 사이 5TL가 올랐다. 터키의 경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한 것 같다.(*2019년 12월 1TL은 대략 우리나라 200원 정도였다.)
일단 환전도 했으니 이제 <PANORAMA 1453>으로 향했다. <탁심 광장>은 언덕 위에 위치했다. 그리고 타고 갈 트램은 언덕 아래에 있어서 나는 가파른 언덕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경사가 매우 급해서 이곳에는 푸니쿨라가 운행된다고 하는데, 나중에 올 때는 이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통 건물들로 둘러싸인 언덕 계단을 다 내려오자, 길 건너로 보스포루스 해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앞에 노면전철(트램) 역인 '카바타쉬(Kabataş) 역'이 보였는데, 이곳에서 운행되는 트램 T1을 타고 구(舊) 시가지로 갈 예정이다.
아까 이곳으로 오던 중에 <탁심 광장 지하철역>에 들러 이스탄불 교통카드인 '이스탄불 카르트(Istanbul Kart)'를 구입했다. 이 교통카드는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 노면전철인 트램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는 수상버스까지도 이용이 가능하다. 매우 유용하지만 카르트 구입 시에 내는 보증금(6TL)은 나중에 돌려받기가 까다롭다고 한다. 그냥 기념으로 간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카바타쉬 트램 역 입구에서 카르트를 체크를 하고 들어가니 때마침 출발하려는 트램이 있어서 서둘러 탔다.
T1 트램은 이곳에서 출발해서 <갈라타 다리(Galata Köprüsü)>를 건너 "술탄 아흐메트 지역"을 통과하며 구(舊) 시가지를 관통한다. 트램을 타고나니 그동안 더웠는지 땀을 흘렸다. 점퍼 안에 입고 있던 남방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오늘은 흐리고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예보와는 달리 날이 너무 좋았다. 햇살까지 내리쬐어서 그런지 12월임에도 불구하고 봄이 온 듯했다. 드디어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서 잠시지만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든 혼'을 보았다. 그리고 구(舊) 시가지를 트램을 타고 스치듯 맛보며 지나쳤다. 그 속에서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도 언뜻 본 것 같은데, 다음에 와서 제대로 보려고 한다.
구(舊) 시가지를 지나쳐 한참을 간 것 같은 데, 내려야 할 역이 나오지 않아 슬슬 초조해졌다. 불안해하는 모습을 눈치챘는지, 앞에 앉은 터키 여인이 어디를 가냐고 수줍게 물어본다. 아마도 구(舊) 시가지 관광지에 내려야 할 친구인 거 같은데 내리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PANORAMA 1453>에 간다고 하니깐, 갑자기 의외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인다. 그곳이 좋다는 것인지, 나 보고 터키를 제대로 보고 다닌다는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얼마 가지 않아 목적지인 '톱카프(Topkapı) 역'이 나왔고, 내릴 역을 알려준 터키 여인에게 인사를 하며 트램에서 내렸다.
트램 플랫폼에서 밖으로 나오자 길게 늘어선, 그러나 꽤 오래된 듯한 긴 성벽이 보였다. 성벽 앞은 공원으로 조성된 듯했다. 고개를 돌리니 가까이에 <PANORAMA 1453(Panorama 1453 Tarih Müzesi)>이 보였다. 건물 주위로 공사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처음엔 문이 닫힌 줄 알았다. 박물관 입구 표시를 따라가 보았더니 입구에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복도 양면 벽에는 이스탄불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그래픽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천천히 살펴보며 중앙으로 들어가자 지하로 내려가도록 안내되어 있었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파노라마실의 입구가 나왔다. 입구에서부터 그 안에서 나오는 전투 음향이 시끄럽게 들렸다. 발길을 재촉해 입구의 계단을 딛고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다 오르자 360도 벽면 전체가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림은 비잔틴 제국의 최후의 날이자, 오스만이 사실상 제국으로 비상한 바로 그날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명한 8m의 대포와 수많은 병사들의 항전과 이를 백마를 타고 독려하는 술탄 메흐메트 2세(Mehmed II)가 보였다. 여기에 반해 반대편에는 허물어져 가는 성벽 끝에서 끝까지 저항하며 싸우는 비잔틴 기사들이 보였다.
전투 소리와 대포 소리, 오스만 군의 군악대에서의 음악소리가 범벅이 되어 귓가를 울렸다. 마치 그날의 전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도록 연출되었다. 여기에 그려진 인물들의 수는 자그마치 1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군인들의 표정들이 모두 제각각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8명의 화가가 3년간 그렸다고 하니 지금 엄청난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며 그림을 감상했다. 마지막 성이 뚫리기 직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극히 성을 공격하는 오스만의 입장에서 그려진 전쟁화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처음에 오스만의 용맹한 병사들 모습에 갔던 눈길이, 이후 점점 저항하는 비잔틴 병사들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적들의 침입, 무너져가는 방어선, 끝까지 지키고자 항전하는 용사들의 모습에 말이다. 이때의 비잔틴 군사들은 이날의 패전으로 모두 전사했겠지만, 오스만의 공격이 치열했다고 기록할수록 그들의 분투가,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끝내 꺾이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극적인 이날의 전쟁은 역사상 큰 획을 긋는 날이기도 했다. 1453년 5월 29일, 역사상 최고의 3중 성벽인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향한 57일간의 파상 공세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이 서로 목숨을 걸고 지키고 빼앗는 궐기이지만, 최종 승자가 결정되면 이후 결과는 늘 참혹하리만치 잔인하다. 승자인 오스만 군대에게는 전통적으로 3일간의 약탈이 허락되었으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하루 만에 약탈을 거둬들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탈은 파괴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콘스탄티노플은 가라앉았고, 그 위에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세운다.
이 전쟁의 결과는 세계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먼저 이 승리로 인해 점차 세력을 확대하던 오스만은 대제국으로 비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16세기까지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솟게 된다. 한편, 비잔틴 제국의 멸망과 함께 이곳의 문화와 학문이 유럽으로 유입되어 '르네상스'를 여는 계기로 작용한다. 유럽의 '중세'는 그렇게 종말을 고하고 '근세'를 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기세에 눌린 유럽은 이후 지중해까지 포기하게 되고 대서양으로 눈을 돌려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되었고, 드디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의 실타래는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