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오라기 Dec 31. 2020

코로나 끝나면 이거 먹으러 가야지

‘좀 다른 먹방’ 보고 싶다면: 넷플릭스 추천 음식 컨텐츠 7개

다큐멘터리라는 게 피트니스 센터랑 비슷해서 한 번 틀면 열심히 보는데 틀기까지의 진입 장벽이 내 주식 오르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마련이다. 그나마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음식 컨텐츠다. 넷플릭스 내에서도 ‘음식 프로그램’ 카테고리가 따로 있는데 ‘맛있는 녀석들’같은 한국 프로그램부터 드라마, 영화, 서바이벌, 다큐멘터리 등 장르가 다양하다. 그 중에 밥 먹을때 틀어놓고 보기 좋은 다큐 5편과 드라마 1편, 대결 프로그램 1편을 추천하려고 한다. 밥 안 먹을 때 보면 너무 배고프니까...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내 사랑 레이먼드>를 제작한 미국의 유명 드라마 프로듀서인 필립 로즌솔의 식도락 여행’이라는데 솔직히 말하면 총 네 개의 시즌을 정주행했지만 아직까지 이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겠고 별 관심도 없다. 다큐는 필립 로즌솔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점부터 미슐랭 추천 식당까지 다양한 곳에서 열심히 먹는다는 게 내용의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첫 번째로 추천하는 이유는 ‘균형이 잘 잡혀 있기 때문’이다.


각 음식마다 적절한 단맛과 짠맛과 온도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 다큐도 그렇다. 필은 전형적인 50대 미국 백인 남성이지만 외국 문화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없는 것=신비롭고 놀라운 미지의 세계’라는 서구 문명 우월주의를 보이지도 않는다. 밝고 유쾌한 태도로 행복하게 음식을 즐긴다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배경 지식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갈 때 알아보는 것보다 반 발짝 더 들어간 것 정도로,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어느 지역을 가든 독특한 커리어를 가진 현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나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기 시작해서 숙소에까지 뭘 포장해 오는 왕성한 식욕을 보여 주는데 그 메뉴들도 ‘여기 가면 이거 꼭 먹어야지’ 와 ‘여기에 이런 음식도 있었어?’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많이 생소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식상하지도 않다. 시즌 3에는 ‘서울’편이 있는데 치맥에 부대찌개, 대게, 공항 기내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가니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길 위의 셰프들



외국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노점에서 먹는 스트리트 푸드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서는 그 나라의 생활감이 팍팍 느껴지고 이국적인 향신료와 식재료를 능숙하게 요리하는 현지인들을 구경하다 보면 내가 외국에 나오긴 나왔구나 하는 실감이 나기 마련이다. 또 다른 장점은 몇 개씩 먹어도 남들이 잘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길 위의 셰프들>은 각국의 유명 거리 노점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서울’ 편에서는 광장시장 고향칼국수 사장님의 이야기가 다뤄졌는데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하셨고, 자제분 또한 유명 호텔의 셰프로 일하고 계신다는 등 퍽 깊은 얘기까지 나온다. 여러 음식을 급하게 꽉꽉 담아내기 보다 한 명의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들어가는 연출을 택하고 있는데 그 편이 오히려 음식에 대해 더 잘 알게 해 준다. 현재<아시아>편과 <라틴 아메리카>편이 나왔는데 아시아 쪽을 좀더 추천한다.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고독한 미식가>와 <심야식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일본드라마가 있어 추천에 넣었다. 주로 도쿄의, 그것도 빙수나 팬케이크 같은 디저트류만을 다루는 특이한 컨셉이다. 단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출판사 영업 사원 칸타로가 완벽한 일처리 후 남는 시간에 아무도 몰래 디저트를 먹으러 다닌다는 설정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일드 특유의 과장스러운 맛 표현과 다소 어색한 대사, 진지한 건지 장난인 건지 모르겠는 연기 같은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어 인상에 남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코믹한 연출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재밌게 후다닥 정주행할 수 있다.




슈거 러시: 달콤한 레이스



나 또한 여러분과 같이 수많은 오디션과 대결 프로그램에 질려버렸지만 <슈거 러시>는 재밌게 봤다. 가장 큰 장점은 1.5배속이 가능하다는 것은 농담이고, 일단 디저트를 매우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다. 대부분 이미 제과제빵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특정 주제를 놓고 대결하는 컨셉인데,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고 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많아서 전개가 매우 빠르다. 디저트의 특성상 맛도 맛이지만 시각적인 자극이 커야 하기 때문에 참가자들 대부분이 화려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볼거리 중 하나다. 빠른 호흡으로 연출되는 만큼 출연자 개개인의 쓸데없는 사연 만들기나 몰아가기 같은 불필요한 요소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명절의 맛



넷플릭스 제작은 아니지만,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사는 중국인들이 명절에 먹는 음식을 다룬 중국 방송사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다. 마치 베트남에서 만들어진 일본 브랜드의 자동차를 서울에서 몰고 있는 대만 유학생을 보는 느낌이다.

배경은 말레이시아지만, 인터뷰이 대부분은 말레이시아에 이주해 온 중국인 3세 4세들이다. 총 11편 가운데 중국 명절이 절반 이상이기도 하다. 중국이 넷플릭스의 다큐 제작 방식에 감동을 받았는지 특별한 내레이션 없이 전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그 바람에 배경 지식이나 설명이 종종 부족한 부분은 있다. 넷플릭스도 별 관심이 없었는지 제작사나 연출자 같은 정보에 대한 설명도 없다. 여튼 이래저래 특이한 프로그램인데,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것은 역시 중국 전통 음식이다. 요즘 현지인들도 잘 찾지 않을 것 같은 월병이나 설탕과자, 통돼지 구이 같은 것들이 턱턱 등장한다. 조리법마다 엄청나게 손이 가고 듣도보도 못한 재료를 쓴다. 물 없이 기름만을 써서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한자를 손으로 일일이 오려내 과자를 만드는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요리들이 매번 등장하는 매력과 오리엔탈리즘이 쏙 빠진 아시아 배경의 다큐멘터리라는 장점이 있다.



셰프의 테이블: 바비큐



불에 고기를 굽는다’는 원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리법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맛을 위해서 살아 있는 동물을 요리한다든가 무지막지한 양의 고기를 구워대는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비주얼을 선호한다면 그다지 재밌지 않은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다. 이건 비단 이 시리즈 뿐만 아니라 <셰프의 테이블> 다큐멘터리 전반의 특징이기도 한데, 요리도 요리지만 거기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철학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솔직히 말하면 어떨 때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사소한 것에도 공을 들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셰프의 테이블:바비큐>도 마찬가지로 ‘불’과 ‘고기’라는 단순한 것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음식 자체를 즐기기보다 <인생극장> 요식업계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미리 말씀드린다.




어글리 딜리셔스



특정 분야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경우 역사나 원리 같은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반드시 등장하는데, <어글리 딜리셔스>는 이 전문가들이 해설자를 넘어 프로그램의 일부로 참여한다. 특히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인 ‘데이비드 장’이 본인의 독특한 요리 철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어글리 딜리셔스>의 요리는 대부분 피자나 타코, 치킨 등 미국의 대중적인 음식을 소재로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중에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음식은 별로 없다. 피자는 이탈리아에서 왔고 타코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했으며 대표적인 테이크아웃 푸드는 볶음밥이나 크림새우 같은 중국음식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본토’의 음식을 추구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미국화’된 음식이 제일이라고 정하는 것이 좋을까? 뼛속까지 미국인이지만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한쪽에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데이비드 장은 이런 미국의 음식 문화에 본인을 무척 이입해서 생각하는 듯해서 다큐멘터리가 진행되는 내내 이 같은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이민자의 자녀로서 때로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자신의 삶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음식 문화를 고찰하다 보면 이민자의 역사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요리다운 화려한 비주얼도 빠지지 않는다. 보다 보면 갑자기 막 내가 미국 이민자가 된 것도 같고 감정 이입도 되고 그렇다. 시즌 2까지 나와 있지만 1에서 정주행을 멈추는 것을 권장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넷플릭스 <1922> 지극히 스티븐 킹갓제너럴적인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