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겪은 썰 신호 기다리며 끄적여봄
어젯밤은 애기가 역대급으로 자지 않았다. 그래봤자 2시간이긴 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애기는 감사하게도 잘 자는 편이다. 지난 50일가량 신생아인 셋째를 키우면서 우리 집에 루틴화된 수면패턴이 있는데, 10시쯤 아내가 두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면 내가 셋째를 안고 잠을 재운다. 아기는 보통 자기 싫어서 보채지만, 길어야 30분 내로 잠에 든다. 아기를 재울 때는 보통 이어폰을 끼고 거미의 환각과 클래지콰이의 빛을 듣는다. 이 두 곡에 맞춰 살랑살랑 아기를 흔들고 나면 감사하게도 아이가 잠들어 있곤 한다. 아이가 잠들면 나는 재미난 영상들을 보며 아이를 포대기에 안은 채 소파에 걸터앉아 있다가 두 아이를 재운 아내가 나오면 육아 퇴근을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정형화된 수면 루틴이었다.
그런데 어젯밤은 달랐다. 변수가 하나 있었다. 아기가 예방 접종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는 2시간을 내내 보채서 포대기에 안고 있어야 했다. 30여분이 흐르고 애 둘을 재운 아내가 나왔을 때까지도 나는 곧 육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아기는 자지 않고 계속 울어댔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서 포대기에 안고 아기를 재워 봤지만 아기는 짜증만 낼뿐, 자지 않았다. 혹시 더워서 그런가 에어컨도 켜보고 수면 비지엠도 틀어 보고 평소에는 안 하는 별별 행위들을 해가며 아기를 재워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자 아내는 점점 지쳐갔다. 평소에도 아이를 자주 포대기로 안고 있는지라 가뜩이나 허리에 부담이 갈 아내였어서 안쓰러웠다. 아기는 현재 6키로 정도인데, 아기를 포대기로 안고 있는 건 6키로짜리 아령을 들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남자인 나에게는 아직 가볍게 느껴지는 무게지만 아내는 달랐다. 자주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그래서 밤에 재울 때는 내가 주로 안고 있는데 이번엔 자지 않으니 아내도 수시로 아기를 안으려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아내도 나도 지쳐가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두 시간 동안 6키로짜리 아령으로 번갈아가며 한밤의 피티를 받고 있는 것이니 건강한 성인 남녀라도 지칠 법 했다. 그렇게 간만에 힘들다고 느끼는 찰나였다. 나는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아내가 내 품에서 울고 보채는 아이를 자신에게 달라고 할 때 나는 3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곤 이어폰을 꽂고 그 노래를 틀었다.
첫째 육아가 힘들 때, 나는 종종 버즈의 가시를 듣곤 했다. 그 이후로 육아를 하다 힘들 때면 버즈의 가시를 듣곤 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묘하게 육아의 힘듦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둘째를 낳고 셋째까지 키우면서 육아가 점차 익숙해져서 한동안 듣지 않고 있던 노래였다. 근 몇 년 만에 이 노래를 틀었다. 그러곤 음악에 맞춰 몸을 놀리며 아기를 재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1절이 끝나갈 무렵 아기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바로 내려놓을 수 없었다. 아직 아기가 완전히 잠들었다는 확신도 없었을뿐더러, 그대로 내려놓기에는 음악에 취했다. 음악에 맞춘 몸놀림으로 아기를 더 재우고 싶었다. 그렇게 3분의 음악이 끝나고 아기를 내려놓았다. 아기는 잠깐 칭얼대나 싶더니 이내 잠에 들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아기를 재우기 시작한 지 2시간 15분, 퇴근 후 육아를 시작한 지 9시간 만의 육아 퇴근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들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미있다. 아기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힘든 가운데 있었지만 마지막 곡을 듣고 아기가 기적적으로 잠드는, 이런 즐거움. 인생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고통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의 반대,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 즐거움이나 재미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고 있는 여러 전우들께서는 이미 인생이라는 것을 선택하셨기에, 그 고통과 그에 따른 재미의 옵션을 인생에 추가할지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겜을 할 때 확장팩을 안사면 꽤 후회스럽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