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원래도 볼 생각이긴 했는데, 블로그 이웃이기도 한 친구가 이 작품에 대한 좋은 감상을 써둔 걸 보기도 했고, 마침 남편이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영향이 있었다. 15부나 되는 시리즈물을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퀴어물이 아니면서 여자 '친구'들간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는데 보다 보니 점점 더 몰입이 되고 재밌어서 나중엔 잠을 설쳐가며 몇 편씩 몰아보게 됐다. 배우들의 호연과 좋은 각본, 섬세한 연출의 세 박자가 잘 맞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출자를 찾아보니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를 연출했던 감독이었다. 역시. 그 작품도 볼 때 감탄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멜로 드라마에서 '계급'이라는 주제가 그렇게 부각된 작품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진짜처럼 다가오고 집중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 간에, 서로 끌리고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고 해도 '이해'에 다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매우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생각해보니 <은중과 상연>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서로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고 가정사나 상대의 사정을 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두 친구는 계속 우정이란 관계를 지속해나가지 못한다. 어쩌다보니 좋아하는 남자가 겹치고(삼각관계에서 우정이 살아남기란 사실 불가능하지.), 성격이 다르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결정적으로 배신하는 행동을 하고... 여러 복잡한 요소들이 있었지만 제일 핵심적인 건 두 친구의 처지가 다르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몰이해였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드라마 속의 은중, 상연과 거의 동년배인 나도 이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맺어왔던 관계들과 그 우정의 양상들을 떠올리게 됐다.
삼각관계 아닌 삼각관계로 괴로움을 겪었던 대학 시절.
'너는 늘 사랑을 받고 주위 사람들의 애정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고 내게 질투 어린 이야기를 했던 친구.(그건 내가 생각하는 진실과는 너무 달라서 그 얘기가 놀라웠지만.)
무슨 애인도 아닌데 그 친구와의 통화가 너무 좋고 대화를 중단하고 싶지 않아서, 라디에이터에 긁혀 다리에 피가 나는데도 한참 통화를 이어갔던 이상한 추억도 있다. (결국 다리엔 꽤 큰 흉터가 남았다.)
서로 못할 얘기가 없이 비밀을 나누고 밤을 지새워가며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던, 성장 과정에서의 아픔도 속속들이 나누었던 소중한 친구와의 관계가, 요란한 '절교'까지는 아니었지만 툭 하고 끊어져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인 성격이었던 적은 없지만 내게 있어서 '친구'라는 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내 인생에서 '우정'이라는 것의 존재가 쓱 빠져나간 것만 같다.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쓰고 있는 게 좀 슬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소중한 이들이 있으나, 좀 시니컬하게 말한다면 이 관계들은 그저 과거의 연이거나, 많이 친밀하지는 않은 안전하고 느슨한 관계들인 것 같다. 친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히 친하고 가깝다고, 서로의 사정을 다 알고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지금 내게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몰이해'와 '실망감'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멀어진 친구를 생각해보면 내가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애정이나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내 방식대로 상대를 위하고, 개입도 하고, 걱정도 해주고 그랬지만 나와는 다른 성격과 성장과정과 상황을 가진 존재였던 그 친구 자체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쉽게 나와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가. 남과 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이다.
내 편에서 친구에 대한 마음이 멀어지게 된 때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에게 마음을 써주거나 관심을 기울여줄 거라고 기대했던 상황에서 상대의 반응이 그렇지 않았을 때였다. 그럴 때 큰 실망감과 나아가 분노를 느끼면서 상대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마음을 닫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되는 데에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일단은 내가 많이 힘든 상황이어야 한다. 너그러워지거나, 상대방도 뭐 사정이 있었겠지...하고 넘어가줄 수 있는 여유가 없을 때. 그리고 또 하나의 조건은, 우리가 가깝고 친한 관계이니 마땅히, 당연히 너는 내게 이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강력한 기대와 요구.(세상에 이런 게 어디 있다고.) 그리고 마지막은 이런 섭섭함이나 실망감에 대해 상대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기보다는 혼자 속으로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해버리는 것. 이런 조건들이 다 들어맞게 되면 제 아무리 좋은 관계에 있던 친구였더라도 남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나이가 들어가며 당연한 흐름인 부분도 있다고,
사람은 변하므로 모든 관계가 영원해야 한다는 생각도 어쩌면 환상이라고,
인간관계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 건 좋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들이 나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건가...하는 자기 비난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 관계는 힘들다. 가까운 관계든 아니든간에 분명히 그런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해와 배려와 수용과 조율...등과 관련하여 에너지를 쓰고 수고를 해야한다. 전혀 그런 부분이 없이 그냥 자연스레 이어지고 풍성해지는 관계는 이 세상에 없는 듯하다. (가족도 포함하여)
그래서 이런 수고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 말지, 이어간다면 어느 정도의 친밀함이 적당할지...하는 부분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그 관계를 통해 얻는 것에 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크다면 이 관계는 계속 유지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 점점 뜨문뜨문 보게 되고, 연락의 횟수가 줄고, 시간을 내는 게 덜 내키게 되고...하는 일들은 아마도 이런 과정들을 거친 결과일 거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의 나는, 친구와 우정이 인생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전제에 대해 재고하고 좀 독립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더 잘 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고는 있다.
그런데 좀 심심하고 뭔가 부족한 상태처럼 느껴진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하다!! ^^;;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은중과 상연은 '죽음', 게다가 '조력 사망'이라는 큰 상황 앞에서 어쨌든 극적으로 화해한다. 그리고 은중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두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어주는 선택을 한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소원해지거나 관계가 단절된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결국 그들의 단점이나, 나에게 준 실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곁에 계속 있어주겠다는 그 사랑이 내게 부족해서, 내가 받은 상처나 섭섭함이 더 중요해서 결국 멀어지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마음과 관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 섬세하고 좋은 드라마였다.
나의 부족을 계속 탓하거나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 머물지 말고, 어렵지만 먼저 손을 내밀고 가능하면 '사랑'쪽을 택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