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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Oct 21. 2020

우리는 우리만의 세대일 뿐

안녕 애들아!     


여러분 혹시 ‘인구 압박’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나요? ‘과거보다 현재의 청년들이 더 큰 인구 압박을 받고 있다’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일 것 같나요? 샘은 단어를 보자마자 답답한 느낌을 받았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샘을 짓누르는 이미지가 바로 떠올랐죠.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과거보다 사회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청년이 사회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뜻일까요? 이는 샘이 최근에 읽은 신문 칼럼에서 우연히 발견한 개념이에요. 인구학을 전공하는 서울대 조영태 교수의 칼럼인데, 인구 압박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금의 청년 세대를 색다른 시선으로 담아냈죠. 인구의 구조, 변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인구 현상을 다루는 학문인 인구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대론이라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여러분과 공유했으면 하는 시선이라 같이 읽어봤으면 해요.      


** 조영태 교수 칼럼 :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2971340


칼럼은 먼저 ‘1990년대의 서른 살과 2020년의 서른 살은 다르다’고 말해요. 겉으로 보이는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어려 보인다고 하죠. 하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가끔 과거 유튜브 영상을 통해 당시 30살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 나이가 맞나 깜짝 놀라곤 해요. 지금 기준으로 족히 마흔은 훌쩍 넘은 것 같은 노안(?)이기 때문이죠. 머리는 지나치게 단정하고 넥타이 갖춘 양복을 입고 있죠. 머리 스타일도 다양해지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지금의 서른과 확실히 비교돼요. 정신적으로도 그때보다 좀 더 자유롭고 개성이 추구하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들이 늦춰졌어요. 취직, 결혼, 출산 등 소위 인생 과업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늦어졌죠. 이에 교수는 지금의 서른이 어려진(?) 이유가 한국의 인구구조, 즉 인구 피라미드가 질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요.      


먼저 1995년도 인구 구조를 살펴보면, 평균 연령은 31.2세이었어요. 인구 피라미드는 마름모꼴로, 평균 연령 위쪽으로는 명확한 삼각형이고, 아래로는 전반적으로 인구 크기가 줄어드는 역삼각형 모양을 띠었죠. 교수는 당시 서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해요. “당시의 서른 즈음은 바로 당시 우리나라 허리 연령대이며 가장 수가 많은 사람들의 삶이었다. 허리였기 때문에 서른 살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충분히 성인이었고 돌봐야 할 것들이 많은 어른이었다. (1995년 발매된 김광석의 <서른 즈음>의 노래 가사처럼) 또 하루 멀어져 가고 저물어 가는 감성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인구학적 위치였다.” 즉 당시의 서른은 우리나라 인구의 딱 중간 정도로, 이에 걸맞게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책임이 주어졌다는 의미예요.      


출처 : KT Estate


반면 2020년 인구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평균 연령이 42.8세입니다. 허리 층이 무려 10년이나 올라갔네요. 인구 피라미드 역시 달라졌죠. 서른 살 위로는 계속 인구가 많아지다가 60세를 계기로 줄어드는 다이아몬드 형태이고, 서른 살 아래로는 인구가 급감하는 명확한 역삼각형 모양으로 변해요. 그는 말하죠. “인구피라미드의 형태만 보더라도 2020년과 1995년은 완전히 다른 사회이기 때문에 비록 생물학적 나이는 같더라도 서른 즈음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는 절대로 같은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2020년의 서른의 위치는 과거에 비해 좀 더 사회적으로 어려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서른이 더 어리다는 말은 아니라고 해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죠. 그는 “과거의 서른 즈음은 가정을 꾸리고 평생 직장을 갖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어른의 대접을 받았고 스스로도 어른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사실 어른으로서 짊어지어야 할 사회적 부담의 무게는 2020년의 서른이 더욱 무겁다”라고 단언해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인구 압박(population pressure)’인 것이죠.      


“(인구 압박이란) 어떤 연령이 다른 연령 혹은 연령 집단에 비해 얼마나 큰지 작은 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만일 30세가 100명 있는데 생산연령대인 31~59세가 1000명이면 30세 인구집단은 10만큼의 인구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높은 숫자는 높은 압력을 의미한다. 1995년 서른 살에게 지워졌던 31~59세의 압박은 20.3이었다. 2020년 현재 서른 살은 34.5배의 압박을 받고 있다.”      


참 재밌는 개념이죠? 한 마디로 내 윗세대가 나를 아래로 누르는 압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세대의 수가 적고 윗세대의 수가 많을수록 인구 압박의 수치는 상승하죠. 과거와 지금의 서른이 경험하는 인구 압박은 큰 차이를 보이네요.      


교육 수준을 대입한 인구 압박의 강도 역시 차이를 보인다고 해요. “대학입학 비율을 고려하여 인구 압박 강도를 산출해보면, 100명 중 20~30명만 대학에 진학하고 1995년 서른 살이 된 사람들은 31~39세로부터 약 7.5배의 인구 압박을 받는다. 반면 100명 중 80명 정도가 대학에 진학했던 2020년의 서른 살에게 지워진 인구 압박은 10.1배나 된다.” 즉 대학 졸업자만을 대상으로 인구 압박을 계산하면 과거보다 현재 압력이 훨씬 크다고 해요. 한 마디로 과거에 비해 대졸자의 취업과 승진 문이 좁아졌고 그만큼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뜻이겠죠. 대학 진학률이 해마다 상승해 대학 졸업장의 메리트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인구 압박의 수치로 비교하니 그 경쟁의 치열함이 좀 더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는 현재의 서른이 과거와 다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요. “이렇게 의미가 바뀐 이유가 2020년 서른 즈음 인구가 과거에 비해 어리거나 편해져서가 아니라, 바로 1995년 서른 즈음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인구 압박에 기인한 것이다. 커져버린 인구 압박의 무게는 자연스레 사회적 진도를 늦춰 놓았다.” 즉 인구학의 관점에서 지금의 서른이 전반적인 사회 진도가 느린 것은 어마하게 커져버린 인구 압박의 무게 때문이라고 해요.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서른은 인구 구조상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고, 인구 압박의 무게를 견디면서 사회적 진도를 더디게 빼고 있었던 것이에요.      


이 칼럼을 다 읽고 제일 먼저 들었던 감정이, ‘참 힐링된다’이었어요. 인구학의 생소한 개념이 등장하고 수치가 난무하는 차가운 글이었지만, 어떤 글보다도 감성적으로 샘을 위로해주었어요. 서른 즈음인 샘 세대의 객관적인 인구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덤덤히 ‘샘 세대를 그냥 이런 세대인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을 받았죠. 인구의 프레임으로 샘 세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느낌. 사실 샘 깊은 무의식 속에, 우리 세대가 혹시 병들고 왜곡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우리 세대가 양극화와 경쟁이 심한 사회에 지쳐 지나치게 개인으로 파편화된 것은 아닐까, 혹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 여기는 태도가 혹시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인내를 애써 외면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불편함 말이죠. 물론 샘은 우리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무척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답니다. 샘 또한 이러한 삶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우니까요. 하지만 의무와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마음 한편에 찜찜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90년대생이 온다>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기쁘면서도, 우리가 좀 별나나 하는 생각도 했죠. 출산율은 0명대에 수렴하고, 결혼 기피 현상도 가속화되는 게 조금 병리적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죠. ‘왜 우리는 부모 세대만큼 희생할 수 없나?’하는 생각.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샘 세대가 느끼는 인구 압박의 강도를 상상함으로써,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위로받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 인구 구조가 너희를 그렇게 이끌었다고 말하는 것 같죠.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떠나 너희는 그럴 수도 있다는 차분한 받아들임이 느껴지네요.      


출처 - <90년생이 온다> 책 표지


그리고 참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출산 현상, 결혼 기피 문제 등의 문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과 많이 다르죠. 주로 사회경제적인 이유들이죠. 취직이 어려워지고 청년 실업률이 상승해서이다, 집값이 지나치게 높아서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확대됨에 따라 개인주의가 심화돼서이다 등과 같은 설명에 익숙하죠.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이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인구 압박이라는 개념으로도 꽤 설득력 있는 세대론을 보여줘 신선했어요. 그리고 시선이 다양해지는 경험이죠. 사실 하나의 사회 현상에도 복합적인 원인들이 중첩되어 있죠. 그래서 다양한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볼 때 좀 더 현상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죠. 인구학이라는 색다른 시선이 하나 더 추가되니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그만큼 커져 즐거운 마음이었어요.      


이 교수는 저출산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도 인구학의 관점에서 색다른 분석을 제시해요.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더 이상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죠. 출산율이 점점 1에 수렴해가더니, 결국 작년 합계 출산율이 0.92를 기록하면서 0명대를 기록했어요. 그리고 2020년 올해가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인구 감소의 첫 해가 될 것이라고 해요. 미래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저출산 문제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인데, 그는 이러한 초저출산 문제의 원인이 ‘수도권 인구집중’ 때문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석을 제시해요.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국가 자원이 서울에만 집중돼 있고 그렇다 보니 물리적인 집중도나 심리적인 경쟁이 더 치열해지니 다들 출산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다.” 인구학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 출산율이 반드시 낮아진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인 약 2천 5백만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죠. 이 엄청난 인구 밀도는 공간적으로 큰 집중도를 낳았고,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 현시는 심리적 경쟁의 치열함으로 이어졌다고 해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출산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존, 즉 각자도생 하는 자연의 경향이 있어 지금의 출산율 재앙을 낳았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서울시의 출산율은 전국에서 제일 낮은 0.72명이에요. 이러한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현재의 복지 정책 위주의 출산율 대책을 비판해요. 즉 그동안의 복지 정책은 큰 변화를 주지 못했고, 수도권 과밀화 현상에 대한 해결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죠. 중앙 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해 물리적, 심리적 경쟁을 완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출처 - 경향 포토


이 새로운 시선에 샘은 눈이 번뜩이는 느낌을 받았네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원인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수도권이 얼마나 밀집된 공간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경쟁 심리를 꾸준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동안 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었는데, 새삼 인구수의 무게가 크게 느껴져 색다르게 보이네요. 결국 젊은 세대일수록 수도권에 사는 비율이 높다고 할 때, 우리 세대는 크게 2가지 인구 압박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윗세대가 아래로 누르는 세로축의 인구 압박과, 수도권 인구 집중이 공간적으로 가하는 가로축의 인구 압박. 마치 엑스레이를 통해 겉으로 보이지 않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을 선명히 볼 수 있듯이, 인구학을 통해 우리 세대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2가지 인구 압박의 축을 선명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인구 압박 강도는 어떠한지 상상하게 되었어요. 샘 세대보다 더 큰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지금 고3이 2002년도생인데,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현상이 시작한 해가 바로 2002년이죠. 즉 지금의 청소년들은 모두 초저출산율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에요. 고3의 인구수 변화를 살펴보면, 샘 고3 때 인원이 67만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약 49만 명이라고 하니 짧은 기간 동안 감소폭이 상당하네요. 49만 명이라는 더욱 왜소해진 인구가 가로축, 세로축 모두에서 강한 인구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샘 세대보다 더욱 늦어진 사회적 진도와 심화된 심리적 경쟁을 경험하게 될까요? 인구 압박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본 여러분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네요. 이러한 상황에서 샘 세대와는 또 다른 여러분 세대만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 측면에서 샘이 하나 반성할 게 있어요. 바로 ‘아니, 우리 세대보다도 왜 이렇게 책임감과 의지가 약하지?’라고 꼰대 같은 세대 비판을 무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우리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 말이죠. 결혼과 출산은 우리 때보다도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라는 인식이 더욱 커진 것을 종종 학급 앙케트 조사를 할 때 느낄 수 있었고, 유튜버와 각종 인플루언서를 보고 자라면서 점점 대학과 취업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인지 점점 공부에 대한 끈기가 약해지고, 책임감과 의지력도 부족하고, 흥미만 좇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마저도 사실 현실의 변화를 감지한 여러분들의 당연한 삶의 태도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사회는 꾸준히 변화고 있고, 그 속에서 여러분의 의지력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기존 질서가 아닌 여러분만의 분야에서 열정을 쏟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결국 사회에 밝고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죠.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꾸려 가는 것일 텐데, 이를 이해하기도 전에 샘 세대와 비교하면서 판단하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요.     


사진 - Young샘


사실 교수의 칼럼 마지막에 이러한 세대 변화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를 제시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는 엄청난 수준의 인구 압박을 받고 있다니 2020년 서른 즈음의 청년을 다독이며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어야 하는가? 아니다. 이 질문 역시 기성세대의 눈과 감성으로 오늘의 청년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필자의 생각으론 굳이 서른 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냥 다름을 인정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1995년에 비해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의 무게를 톡톡 튀는 감성과 재기 발랄함으로 극복해 가고 있는 것이 2020년의 서른 즈음이기 때문이다.”     


교수는 늦어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도 꼰대와 같은 발상일 수 있다고 해요. 결국 ‘늦어도 괜찮다’는 것은 ‘늦어도 해’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기에 기존 과업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죠. 그보다 새로운 세대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할 것을 주문해요.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상상할 수도 없는 인구 압박을 ‘톡톡 뛰는 감성과 재기 발랄함’으로, 즉 그들만의 웃음 코드와 삶의 방식으로 처벅처벅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샘도 여러분이 여러분만의 재기 발랄함으로 어떤 새로운 삶의 문법을 창조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볼게요. 여러분들을 판단하려는 마음이 들기 전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그대로 존중하는 자세를 키워보도록 할게요.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여러분들만의 재기 발랄함을 관찰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인구 압박이라는 현실 문제에 대처하는 여러분만의 해법을 찾아내고 샘도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라면 적극적으로 본받고 싶네요. 사실 이미 그 씨앗을 종종 발견해 샘도 여러분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네요. 누가 뭐라고 해도 여러분의 세대는 여러분의 세대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의지해 꿋꿋이 세상 속을 걸어갔으면 해요. 여러분이 만드는 미래라 두렵지 않고 오히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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