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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Feb 21. 2022

천 원의 온도

  나는 지폐를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아주 가끔은 현금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 카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되기 때문에 지폐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약 한 달 전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할 일이 생겨 지폐를 좀 준비해 둔 적이 있었다.


하이패스를 이용해도 되지만 하이패스 라인에 차가 몰려있고 현금결제 라인이 널널할 때가 있어서 빠른 통과를 위해 하이패스의 대안으로 지폐를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톨게이트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오랜만에 지폐를 사용하게 되었다. 사용 후 남은 잔돈은 외투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나는 외투에 지폐를 넣어 둔 일을 까맣게 잊게 되었고 며칠이 흘렀다. 


외출할 일이 있어서 무심코 그때의 그 외투를 꺼내 입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순간 손 끝에 무언가 닿았다.

웬 종이들이 닿는 게 카드 결제하고 영수증을 넣어 둔 건가 싶기도 했다. 그 종이들을 끄집어내 보니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지폐 3장이었다.

허 분명 내 돈이 분명할 것인데도 이렇게 현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니 시각과 촉각을 통한 흐뭇함이 상당했다.

요즘은 카드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연히 지폐를 손에 쥐게 된 게 하도 반가워서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렇게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손에 쥐고 있자니 한 일화가 떠올랐다.


약 2년 전의 일이었다. 


아침이 아직 오지 않은 새벽녘에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수영장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즈음해서 평소 잘만 타고 다니던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지만 굳이 빨리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정도의 밤과 아침의 중간쯤 되는 시간에 버스 정거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마을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여름이었지만 새벽시간이라 선선해서 좋았고 부지런하게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마을버스에도 항상 3~5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나는 당시 교통카드를 이용해서 마을버스를 탔는데 그날따라 주머니고 지갑이고 아무리 뒤져도 교통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아 이거 어찌할까 버스는 이미 출발했는데 카드가 없으니 세워달라고 해서 내릴까 아니면 계좌이체를 해준다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던 그때에 누군가 뒤에서 내 옷깃을 가볍게 당기는 것이었다. 얼른 뒤 돌아보니 한 어르신이 꼬깃꼬깃 접힌 천 원을 내게 내밀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분의 밝은 표정과 미소는 버스에 타는 비용을 대신 지불해 주려는 의도보다도 내가 겪고 있는 이 당황스러움에서 나를 구해주시려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그 천 원을 받으면 신세를 진다는 마음이 컸을까. 대뜸 받아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니 미소를 띠시며  받으라고 하신다. 그 마음을 계속해서 거절하기도 뭐해서 마지막으로 가방에도 없으면 받을 생각으로 가방을 뒤졌고 마침내 가방 안에서 교통카드를 찾아 결제를 무사히 했다. 그렇게 그분이 주시려던 천원은 받지 않아도 되었고 그 마음만을 받게 되었다.


분명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데에 있어서는 그 어떤 뭉칫돈보다도 값진 지폐 한 장이었다. 그 마음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분과 나는 친분이라 할 것도 없었고 굳이 친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소한 것조차 모두 끌어 모아도 며칠 동안 마을버스 안에서 아주 잠깐 길어야 10분가량 같이 타고 이동한 정도의 인연이었다.

그때 그렇게 마음을 뜨끈뜨끈하게 데워준 천 원짜리 지폐와 인연이 되어 나는 지금도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를 보면 그렇게 반갑고 정겨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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