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아사히도는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게 탐탁치 않은 모양이었다.
뮤즈만은 반드시 밝은 곳에서, 그것도 내 바로 옆에서 새끼를 낳았다. 진통이 시작되고 드디어 새끼가 나올 듯한 단계가 되면, 야옹야옹 울면서 내 무릎으로 안기듯 기어든다. 그리고 호소하듯 내 얼굴은 본다. 할 수 없이 나는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고, 뮤즈의 손을 꼭 쥐어준다. 그러면 뮤즈도 내 손을 그 눈길로 꼭 잡는다. 그러다 마침내 다리 사이로 새카맣게 젖은 태아가 움찔움찔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새끼를 낳을 때, 뮤즈는 상반신을 세운 채 양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나는 그런 뮤즈의 몸뚱이를 뒤에서 받치듯 안고 양손을 잡는다. 뮤즈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아무데도 가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차분한 눈길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새끼가 밖으로 다 나오고 나면, 나는 태반을 집어다 버린다. 뮤즈는 그동안 새끼고양이의 몸을 맛있게 핥는다.
그렇게 한번으로 끝나면 좋을텐데, 뮤즈는 언제나 다섯마리쯤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한 마리를 낳고 다음 한 마리를 낳을 때까지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첫 진통이 시작되고부터 마지막 새끼를 낳을 때까지 대개 2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동안 나는 내내 뮤즈의 손을 꼭 잡고, 서로의 눈을 응시해야 한다.
덧붙여 뮤즈는 어째서인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밤중에 새끼를 낳는다. 나는 그 무렵에는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기에 안 그래도 밤이 되면 육체 노동에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는데, 한밤의 2시에서 새벽녘까지 고양이의 출산을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되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도중에 우리 마누라와 교대하고 싶지만(졸립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다) 뮤즈는 어찌 된 셈인지 출산 때에는 내가 아니면 근접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절대로 내가 손을 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마누라는 곧잘 "저 새끼고양이, 혹시 당신 자식 아니에요"라고 비아냥거렸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새끼고양이의 아버지는 같은 동네에 사는 고양이다.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면 곤란하다. 야옹야옹.
하지만 새끼를 낳고 있는 고양이와 한밤에 몇 시간이나 눈길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나와 그녀 사이에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그것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양이와 인간의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묘한 체험이었다.
- p. 47. 장수 고양이의 비밀 - 출산편.
. 그동안 하루키 초기 에세이들을 리뷰하면서 '무라카미 아사히도'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는 항상 원 제목인 '무라카미 아사히도'를 기준으로 했다. 첫 번째의 무라카미 아사히도부터 시작해서 역습, 하이호, 그리고 마지막 시리즈인 이 책에 이르기까지 수십년간 몇 번씩 번역되면서도 그 어느 출판사에서도 무라카미 아사히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적이 없었기에 나라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고보면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 와선 소설 같은 경우엔 웬만하면 낯선 이름이라도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는데, 유독 에세이류는 지금도 출간 과정을 거치며 이름이 자주 바뀌곤 한다. 하기야 아무리 하루키라 해도 제목에 '무라카미 아사히도'라는 종잡을 수 없는 이름이 붙어있으면 판매량이 반토막으로 떨어질 지도 모르겠다. :)
. 이 책 같은 경우는 30년 동안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무려 세 번이나 다른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90년대 말에 처음 번역되었을 때는 책에 실린 제목이자 비틀즈의 노래 가사인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가, 그 다음에는 '비밀의 숲'이라는 00년대 초반 특유의 '갬성'을 가득 담은 제목으로 나오기도 하고, 가장 최근엔 고양이 뮤즈 이야기에서 따온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나와있다. 마지막이 가장 좋아보이긴 하니 그럭저럭 만족. :)
"그런데, 너 혹시 무슨 말했니?" 라고 나는 진짜로 고양이한테 물어보았다.
고양이는 눈을 뜨고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내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쫙 벌린 채 하품을 하고는 몸을 쫙 펴고서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란 식으로 이불 속에서 나와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때 '이 고양이는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자신의 소중한 비밀이 인간에게 발각되어, 그것을 어떻게든 얼버무리고 시치미를 떼려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뮤즈가 사실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데, 그런 게 알려지면 성가신 일이 벌어질테니 그 능력을 교묘히 감추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 p. 103. 장수고양이의 비밀 - 잠꼬대편.
. 다른 무라카미 아사히도 시리즈가 그렇듯 이 책에도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장수 고양이 '뮤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루키 에세이라면 빠질 수 없는 달리기, 맥주, 그리고 악우라고는 하지만 팬이라면 누구나 영혼의 친구였다는 걸 알고 있는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편안하시길)과의 아웅다웅까지. 거기에 이 에세이집에만 실려 있는 공중부유 꿈이나 러브호텔 이름으로 순위 매기기 같은 즐겁고 실없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술술 읽힌다. 직전에 읽은 하루키 책이 '언더그라운드'였기에 더욱. 하루키 스스로도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언더그라운드와 같은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에 그쪽에선 숙연하고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다(피해자와의 인터뷰집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선 긴장을 확 놓아버리는 식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시리즈에 비해 유독 웃기고 실없으며 부분부분 아저씨틱하기도 하다. 하긴 하루키도 이 책을 쓸 때쯤이면 40이 넘어 오랜만에 다시 일본생활을 시작하고 오랜만에 미즈마루 화백을 비롯한 지인들과 재회하던 시기였으니까.
어느 앨토 색소폰의 솔로가 시작되자, 나는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뭐야, 대체 이거?' 싶어 어리둥절했다. 무대에서는 소니 스텟이 솔로를 연주하고 있었다. 나를 두드려 깨운 것은 스텟의 솔로였던 것이다. 졸음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나는 빨려 들어가듯 스텟의 연주에 몰입했다. 그의 솔로가 끝나자, 베니 골슨의 솔로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잠이 솔솔 쏟아져 나는 또 쌕쌕 잠들고 말았다. 그날 밤 여러 사람이 솔로 연주를 했는데, 스텟의 솔로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텟이 연주할 때 외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텟이 연주를 할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번쩍 뜨고, 그의 연주가 끝나면 또 자연스럽게 잠에 빠졌다. 그리하여 콘서트가 끝났을 때, 나의 피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몸은 치유되어 있었다. 더 이상 졸립지도 않았다.
- p. 108. 음악의 효용.
. 하지만 그렇게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 싶다가도 음악을 통해 충전되었던 일화나,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을 읽고 있자면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재미있지만 경박하지 않고, 거침없다 싶으면서도 선은 넘어가지 않는 절묘한 글들의 모음이었다. :)
일이 끝난 다음 한밤에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맥주를 찔끔찔끔 마시면서 첫 소설을 썼을 때의 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고양이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게 탐탁치 않은 모양이었다. 만약 그 때 내가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8년 가까이나 외국에 나가 생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내내 일본에서 가게를 꾸려 나가면서 뮤즈와 함께 느긋하고 한가롭게 살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가설을 세우기가 어렵지만, 뭐 그랬다면 그 나름으로 나는 지금이나 거의 다름없이 마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살았을 것이란 기분이 든다. 주변의 이런저런 일일랑 어찌되었든, 내 자신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늙은 뮤즈를 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 p. 23. 장수 고양이의 비밀.
이 책은 작년 여름에 죽은 우리의 장수 고양이 뮤즈의 혼에 바친다. 이 책에 실린 문장을 쓴 몇 달 후에 그녀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뮤즈가 묘한 인연으로 생후 6개월의 몸으로 고쿠분지의 우리 집에 온 것이, 그러니까 내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그 때는 내가 언젠가 소설가가 될 것이란 가능성 따위는 지평선 너머에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 이후 그녀는 거의 언제나 늘 내 옆에 있었고, 기구하다고도 할 수 있고, 즉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 뒤죽박죽 내 인생을 싸늘하고 냉철한 눈길로 지켜봐주었다. 뮤즈가 그런 나의 인생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는 나도 모른다. 고양이의 마음이란 정말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니까.
아무튼 무슨 일이 생겨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해도 터프하게 견뎌주었던 이 불가사의하고 총명한 고양이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낸다.
뮤즈의 혼이여, 편히 잠들라. 나는 아직은 좀 더 살아야 할 테니까.
1997년 3월 무라카미 하루키.
- p. 279.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