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임용한(레드리버) ●●●●●●●●○○
한 줄의 지식, 교훈, 이념은 인간을 더 잔인하게 만들 뿐이다.
과도한 영광이 그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게 했다. 전쟁을 벌일 때도 명분과 외형에 너무 집착했다. 위신을 잃었을 때 이를 되찾기 위해 너무 서둘렀고, 병력과 무기 같은 겉치레와 외형을 위한 외교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했다. "불쌍한 나세르...." 사다트는 친구를 비난할 마음은 없었지만 나세르의 실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사다트는 실용주의자였다. 싸움은 병력과 무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추구한다. 모두가 납득하는 승리가 아니라 자신이 인정하는 승리를 얻어야 한다.
사다트는 몸을 돌려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병사들이 환호로 대통령을 맞았다. 이집트의 건조한 햇볕에 철모와 무기들이 번쩍였다. 사다트는 순간 우쭐해지는 자신을 깨닫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나세르의 망령을 지웠다.
"먼저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 p. 380. 이집트의 환골탈태.
. 그동안 읽었던 임용한 박사님의 책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있다. 모든 일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게 놀랍도록 위대한 일이든 놀랍도록 한심한 일이든 이유없이, 기적으로, 그냥 바보여서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걸 보여준 것이 '한국고대전쟁사' 시리즈였고 '전쟁과 역사'였으며 '병자호란'이었다. 그런 임용한 박사님이 이번에는 중동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섰다.
. 나름 현대에 벌어진 사건이고 그 덕에 책과 방송영상 등 풍부한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전쟁은 지금도 수많은 오해를 안고 있다. 서방국가는 이스라엘을, 소련과 중국은 아랍권을 전적으로 지원했다거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랍군이 작은 이스라엘 하나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연전연패했다거나, 그 반대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고 최신예 무기로 압도했기에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심지어 6일 전쟁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기에 이스라엘이 그토록 빨리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주장은 지금도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정설인 것처럼 믿어지고 있다.
아랍 국가 모두가 부러워하던 이집트의 풍부한 전력과 세계대전의 경험은 절반이 허상이었다. 세계대전 중에 영국이 이집트군을 후방으로 돌렸기 때문에, 전쟁을 총괄하고 전선에서 전쟁을 운영해본 적이 없었다. 일선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전쟁을 직접 겪긴 했지만, 수동적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 p. 110. 제1차 중동전쟁, 1라운드.
. 더군다나 임용한 박사님이 책머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저 잘못 알고 있는 정도면 모르지만, '이미 편을 정해놓고' 그 시각에서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보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중동전쟁을 왜곡된 채로 이해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만큼 사실은 걸러지고, 시야는 좁아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중동전쟁 자체가 1-2차 세계대전만큼이나 오랜 기간이 걸린 사건이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25년 간 네 번에 걸쳐 벌어졌고, 각각의 전쟁과 전쟁 사이 전간기에 대한 자료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처음 보고(540쪽 정도 되지만, 판형은 작은 편이다)분량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어 아쉽기도 했지만, 읽고 나면 이 책이 어디까지나 길잡이라는 목적에 충실했다는 걸 알 수 있다.
. 실제 이 책은 철저하게 '왜'에 중점을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3차 중동전쟁을 다룬 제레미 보엔의 'Six Days'가 6일 전쟁의 매 순간순간을 세세하게 나누어 장면 하나하나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뒀다면, 이 책은 전쟁의 당사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 어떤 부담을 안고 있었는지로부터 시작해 그 상황과 부담이 당사자들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했는지, 그렇게 당사자들의 행동이 얽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중동전쟁의 의문들이 풀려나가고, 오해들이 바로잡혀진다.
"우리가 그냥 진 게 아니다. 이스라엘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도와서 진 것이다. 이집트 공군이 하루만에 궤멸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 말이 또다시 먹혀들었다. 너무나 빠르고 믿을 수 없는 패전이 나세르에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미국과 서방 국가가 직접 개입했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중략)
세계 초강대국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석패했다니. 이집트 국민과 아랍 국가들은 더욱 비장해졌다. 거짓 보도에 오랜 세월 경도되어 온 결과였다. 이집트 국민과 아랍동맹은 미국 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소련 대사관에 항의하는 등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인다. 나세르가 카이로 시내의 사원에 들어서자, 군중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위로했다. 결국 유엔 휴전안이 발표되던 10일, 나세르는 사임을 철회했다.
- p. 361. 골라니 여단의 실화.
. 1948년의 1차 '건국'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은 사방에서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제 막 창설된 이스라엘 군에게 이기지 못했을까? 나세르는 어떻게 2차 '수에즈'전쟁에게도 패배하고도 이겼으며, 그것은 왜 그에게 독이 되었을까? 이스라엘은 어떻게 3차 '6일'전쟁에서 나세르의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등의 아랍연합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고, 사다트의 이집트는 어떻게 그런 강력한 이스라엘을 4차 '욤 키푸르'전쟁 초중반 내내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그리고 네 차례의 중동전쟁이 끝난 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어떻게 화해하고 공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물론 임용한 박사님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세상에 '그냥', '운이 좋았으니까', '멍청하니까' 같은 손쉬운 답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수상이 다얀이든 라빈이든, 이스라엘은 욤 키푸르 전쟁으로 중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누가 이집트를 저렇게 변화시켰는가? 아랍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이후로 6일 전쟁 같은 일방적인 승리는 없을 것이다. 아랍이 다시 단결하고 양면 전쟁과 소모전을 되풀이한다면, 이스라엘은 견딜 수 없다. 사실 이스라엘이 제일 무서워한 것은 소모전쟁이었다. 이스라엘 국민도 전쟁에 승리했다고 무조건 관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경제력은 소모전을 버텨낼 수 없으며, 승리를 해도 후유증이 너무 컸다. 1974년 물가상승률은 56%였다. 국민도 이런 삶이 자식과 손자 세대로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 p. 528. 끝나지 않는 비극.
. 이러한 의문들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과정에서 읽는 이들은 의문의 답 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안게 된다. 중동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요르단과 시리아, 그리고 그전까지 제3세계 전체의 맹주를 자처했던 이집트는 극심한 빈곤에 빠졌고, 이스라엘 역시 네 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고도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소모전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 사이에 중동의 중심은 이라크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들로 옮겨갔고, 지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산유국들이 부를 누리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이스라엘은 계륵 같은 시나이 반도를 내려놓고, 이집트는 이름 뿐인 맹주자리를 내려놓으며 둘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작 이라크와 이란은 둘의 그런 모습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건 총력전을 벌이다 둘 다 경제가 파탄나버린 게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이겠지만.
.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에 말하듯,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인류 역사의 과정'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모습은 가장 빨라 보이는 길을 자신이 스마트하다 생각하며 거침없이 걸어가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치며 상처투성이가 되어 한발한발 내디디는 것이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처음의 한 발자국을 옳게 뗄 수 있을 것이므로.
필자는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에 조금이라도 다가서는 것은 선의의 이해가 아니라 현장의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한 줄의 지식, 교훈, 이념은 인간을 더 잔인하게 만들 뿐이다.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인간이 평화와 정의를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얼마나 쉽게 이기심과 이해관계에 굴복하는지 보여준다. 바로 그 불완전한 인간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인류 역사의 과정이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에 두자. 또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가 이루어놓은 것에서 방법을 찾자.
- p. 540.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