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빛 Dec 23. 2022

부부사이, 생리현상과 내숭 어디까지?

내겐 로망, 남편에겐 수치스러움이었다 (부부사이-생리현상 편)


귀 파줄게!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 아빠, 오빠 심지어 친구들의 귀까지 파 주었다. 나름 학교에 소독솜과 귀이개를 가져가는 준비성까지 보이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긴 하지만 귀를 파 주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를 떠나서 조금 더 로맨틱하게 생각해보아도 좋았다. 흔히 드라마 속에서는 종종 '여자의 무릎에 누워있는 남자친구, 그 남자친구의 귀를 파주는 여자의 모습'이 달달하게 나온다.


하지만 남편에게 여러 번 물어보아도 늘 같은 대답이 왔다.


"아냐, 괜찮아~내가 할게!"

"냅둬 냅둬~~"


다정한 목소리와 말투 하지만 그의 다정하지 않은 거절에 조금 토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설득하기도 했다.


"아니 귀 파는 건 귀 청소하는 거라 오히려 깨끗한 거야. 이게 왜 싫어?"


몇 번의 반복된 거절을 받고 그 뒤로는 포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도 생리현상과 비슷한데.. 남편은 다른 생리현상은 큰 부끄러움 없이 자연스러운 걸로 받아들이며 하나씩 텄다. 그런데 그에게 유독 귓속은 보이고 싶지 않은 곳이었나 보다. 들키고 싶지 않은 구역이었나 보다.



생리현상을 들키다



5년 동안 무 생리현상도 트지 않았던 내게 결혼생활은 어쩔 수 없이 생리현상을 들킬 수밖에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잠결에 들려온 내 소리에 수치스러워 잠이 깨고 슬쩍 남편을 보았다. 핸드폰 게임을 하며 아무렇지 않아 하는 남편의 모습에 뒤늦게 그의 얼굴을 가렸다.


"들었어? 들었냐구~~~ㅠㅠ"

내 속상한 목소리에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응? 뭐 어때~~ 자연스러운 건데~"


정말.. 남편이 단순하게 받아들여줘서 마음은 한결 편해졌지만 수치스러움이 여러 번 반복될 때마다 아직도 부끄럽고 힘들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상황을 남편의 상황과 대조해보면 남편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는 그걸 설득하며 강요하려고 했다니..^^

정말 미안하고 민망했다. 그래서 내 재미와 로망을 넣어두고 남편의 수치스러움을 지켜주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귓속을 볼 권한을 내게도 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남편은 초기에는 등에 난 피부병도 못 보게 했으며, 초기의 나는 꼬르륵 거리는 내 눈치 없는 뱃속 소리도 듣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씩 우리의 생리현상을 부끄러움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에 따라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으니 그 부분만은 터치하거나 설득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야겠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자연스러움이 될 수 있도록 천천히 기다려 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서로 트지 않고 어느 정도는 지켜줬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사람에 따라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듯이, 부부사이에 배려해줬으면 하는 생리현상의 기준도 다르기에 그 부분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우리는 둘 다 대놓고 생리현상을 트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런 부분으로 서로에게 실망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서로의 생리현상을 들킨다면 귀엽게 넘어가는 것뿐. 다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트는 범위가 넓어지거나 점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한번 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부부, 내숭과 생리현상 어디까지?]


[나]

- 상대방의 생리현상은 귀엽게 봐주고 조용히 넘어가주자

- 상대방이 수치스러워하는 생리현상을 억지로 트라고 강요하지 말자

- 아무리 서로가 점점 편해진다고 해도, 상대가 싫어하는 상황(ex. 밥 먹을 때)에서는 너무 대놓고 생리현상을 트진 말자


[남편]

- 생리현상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 나는 생리현상으로 자기한테 환상이 깨지거나 싫어하지 않으니까 너무 억지로 힘들어하거나 숨기지 말고 조금씩 편해지면 좋겠어. 부부니까 서로가 조금씩 더 편해지면 좋을 거야






부부는 한 집에서 '서로 다른 둘'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의 삐걱거림이 신경 쓰일 때도 있을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거창한 것까지 모든 걸 맞추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맞추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의무감으로 생각하며 귀찮아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대신, 재미있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씩 솔직하게 털어놓는 대화가 쌓일수록 우리의 삐걱거림은 줄어들었고, 맞춰가는 시간들은 어느새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었다.





* 부부사이 조율일화 <돈, 육아, 생리현상, 스킨십, 시댁, 친정, 친구, 애정표현 등>은 꾸준히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 브런치를 구독해 주시면 글 알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 사이에서도 밀당이 필요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