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3-45
동료의 물음에 샘플3은 스스로를 '원인제공자'라고 칭했다. 사실이다. 그 당시에 그만두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끌고 온 부분들에 대해서 잘못했다며, 그래서 자신이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료는 회의 석상에서 우리에게 그만둔다고 폭탄선언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정말로 잘못했고 그래서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라면 조직이 돌아가게끔 하려고 노력을 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벌써 그만두겠다고 말한 지 3개월이나 지났지만 그만두는 절차는 하나도 이행되지 않다고도 이야기했다.
샘플3과 대표는 발끈했다. 특히 샘플3은 침착한 척했지만 얼굴은 이미 빨갛게 달아오른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확실히 하자고 했다. 자신은 이런 얘기를 하기 싫지만 해야겠다면서 말이다.
"어.. 그때 그만둔다고 말씀을 드렸고"
"네, 6월까지 하신다고."
"네, 제가 그렇게 요청을 드렸죠."
"네. 6월까지 계시겠다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있겠다가 아니라, 요청을 드렸고요."
샘플3이 요청을 했다고 했다. 자신이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6월까지 일을 하지 않더라도 월급을 달라고 했다.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던져놓고 요청했다는 표현을 썼다. 절차를 그렇게 따지는 샘플3이 엉뚱한 곳에 '요청'을 한 것이다. 우리는 결정 권한이 없었다.
"어차피 징계성으로 그만둬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사업 관련해서 챙겨주십사 말씀을 드렸던 거고, 그러면 예산계획도 나오면 되는 거죠. '나가는 사람이 무슨 입장과 무슨 의견을 제시합니까'라고 제가 두 번 정도 얘기했죠. 그것이 만사형통 치트키가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기는 했지만. 그리고 저는 미리 보고 듣지도 못하고 예산을 통해서 3월까지만 일한다는 여러분의 의견을 당일날 들었습니다."
이번에 발끈한 것은 나와 동료였다.
징계성으로 그만두라고 한 적도 없거니와 그는 우리에게 사업을 챙겨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안 할 거니까 남은 사람들이 하세요, 나는 그만둔다고 말하면서 일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였다. '논의'가 아니라 '통보'였음이 확실했다. 나가는 사람이 무슨 의견을 제시하냐가 아니라 다 말해놓고, 제가 말한다고 뭐 있나요 식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맡아서 하던 일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놈의 예산. 분명 내가 그만두는 것으로 3월까지 예산을 짰다고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샘플3은 자신은 6월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와 내 동료가 자신을 내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표가 예산에 대해 문책할 때, 언제까지 일하는지 알려줘야 예산을 짠다는 얘기를 했음에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상황이었다.
"얘기를 안 해주셨잖아요."
"그니까요. 어쨌든 그런 식에서 얘기한다라면 몇 개 되지 않는 업무 인수인계하면 되는 거죠. 그것이 남아 있는 분들의 판단이었잖아요."
철저히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저희가 계속 기존 사업이든 회계든 인수인계가 되어야 계획을 짤 수 있다고 말씀드려왔지만 진행이 되지 않았죠. 심지어 자료집에 들어가는 부분들도 정리해 달라고 말씀드린 것도 안 해주셨잖아요. 대화도 안 되고 언제까지 일할 거라는 의사 표명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예산을 짜요. 그러니까 제가 그만두는 걸 전제하에 예산을 짠 거죠."
샘플3은 자신은 내가 부탁한 일을 다 했다고 말했다. 아니다 1/3도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부탁한 것은 실제로 세 가지였고, 그중에 한 가지만 대충 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맡아서 하고 있는 일, 더구나 우리에게 공유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정리해 달라고 한 것도 진행하지 않았다. 부탁을 받을 때는 마음 좋은 사람처럼 알겠다고 했었다. 샘플3은 네가 좋아하는 폴더에 올렸는데 무슨 소리냐며 비꽜다. 약속 기한은 지나있었고, 업로드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난 했으니 알아서 해라는 꼴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폴더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건 우리 공용 드라이브였다. 오프라인 드라이브에서 온라인 드라이브로 바꾼 지 1년이 다 넘어가는데 그것에 대한 투정을 또 이런 식으로 부린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일은 자신만 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늘 매일 해오던 소리다. "왜 일은 나만 해?"
십 여개가 넘어가는 카테고리 중 단 2개의 카테고리의 평가항목만 맡겼을 뿐이었다. 다른 건 다 정리가 가능했지만 실제로 활동한 사람의 평가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내가 평가하는 것처럼 웃긴 일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샘플3은 본인이 맡은 일 외에 다른 일들에 대해 정리는 가능한 것인지, 관심은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돌아보면 전체를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했던 말들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 일이 일이라고 생각 안 해."
"저는 그 내용 몰라서요, 설명해주세요."
"나한테 말 한 적 있나?"
말해도 소용없었다. 소귀에 경을 읽어도 알아들을 것 같았다. 심지어 스스로 '내가 요즘 자꾸 잊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화를 하면서 더 집중을 하거나 적어야 했지만 오히려 더 하지 않았다. 샘플3은 대체 어디까지 챙김 받기를 원했던 것일까?
사건이 벌어진 시점부터 이후의 일들, 해결하려는 과정, 아주 작은 공론화까지. 샘플3은 확실한 원인제공자였다. 그리고 내가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원인제공자는 2차 가해의 주인공, 대표. 한 사람이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