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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un 14. 2021

2차 가해

샘플 3-46

이야기가 또 되돌아오고 있었다. 결국 샘플3의 잘못들은 큰 잘못이었지만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내가 그만두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표가 지속적으로 내 입을 막으려고 했던 것과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결국 대표님의 따님이 같은 상황이 되어서도 나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행동을 했을 것이냐 물었다. 나의 얘기가 채 끝나기 전에 대표는 내게 묻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이 일의 매듭을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고, 본인이 떠나면서 사무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고, 뭐 일단 대안이 있는지 물어볼게요."


없다고 했다. 그러면 어쩔 거냐는 대표의 말에 내가 피해를 당하고 있고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피해자, 가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두 사람이 다 떠나고 나면 여기 사무실은 운영이 안 될 거라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를 왜 떠나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대표 본인의 2차 가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대표는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었다.


"왜 안 하겠어요. 근데 둘 다 떠난다는 생각은 저는 없었어요. 샘플3이 가고 싶은 위치로 가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둘 다 돌볼 수 있겠죠. 저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제가 이후의 일을 고민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은 좀 있네요. 비중만 달라질 뿐 지금이랑 같은 체제인데 제가 나간다고 달라질 게 있나요?"


나의 말에 대표는 대답 없이 바로 샘플3에게 물었다. 나의 말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것이었다. 나의 이야기는 제안도 아니고 대표의 질문의 답도 아니었다. 자조 섞인 어쩌면 '내가 왜? 니들 알아서 잘 살던가'의 다른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면 고민해볼 수 있는 공간 분리가 있었고 제안했던 휴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대표와 샘플3의 생각에는 그만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 사항에 없었다. 누가 떠나고 남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본인의 말을 아주 잘도 뒤집었다. 나는 하지도 않은 '같이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라는 붙여가면서까지 말이다.

샘플3이 입을 뗐다.


"저는 이제 잘못이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뭐, 실수라는 표현들을 쓰지는 않구요. 잘못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들은 온전히 저의 책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을 했고, 그다음에 사과를 어쨌든 했고, 남아있지는 않든 어찌 됐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현재까지 어떤 형태든 간에 오픈되어가지고 책임이 생긴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왔고, 그것에 대한 부분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들이 명확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즉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와중에도 거짓말을 했다. 그는 우리에게 그만둔다고 말하고 여기저기 다녀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그만둬야 하는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전에 그만두겠다는 말은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었고, 그가 명확하게 그만두겠다고 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받은 뒤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일단 질러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상위 조직으로 가는 것은 현장판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만두고도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부분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들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로서는 굉장히 불가능한 형태가 됐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잘못한 부분들이고 그것이 오픈되었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 또한 저는 많은 장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지 않고 제가 올곧이 책임을 지는 것이 맞겠죠. 이상입니다."

누가 들으면 아주 이상적인 답변이었다. 자신이 잘못했고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만둠'에는 애초에 책임이 없었고, 공론화 아닌 공론화에 그는 책임감을 운운하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실제로 자신의 잘못을 통감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의문을 다 풀어줘야 하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어디다가 얘기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일을 무마하려는 것은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상위 조직으로 가지 않겠다고 단언하던 그는 지금 상위 조직의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얘기했던 대로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말로만 그만둔 상태로 조직에 관여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자진퇴사'로 상실 신고된 자신의 퇴직 사유를 대표와 쿵짝해서 '전 직원의 대표와의 소통 미흡'으로 이유를 들어 '권고사직'으로 변경한 것은 명백히 신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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