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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Jan 17. 2023

크레딧, 리워드, 포인트로 지급되는 노동의 대가

데이터 라벨링 사이트에서 일을 한 대가는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정산된다. 작업자가 요청한 시기에 급여가 들어오기도 하고 작업장의 정책에 따라 주기적으로 입금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급여 단위는 '원(won)'이 아니고 하나같이 크레딧, 리워드, 포인트다. 명확하게 '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왜 사이버 머니 냄새를 풍기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해외에 있는 라벨링 사이트에서는 작업자들을 '플레이어'라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작업을 마치 게임이나 놀이처럼 인식하게 한다고 한다고. 보통 사람들에게 게임이나 놀이는 의무가 아니고 재미로 하는 일이다. 보상이나 권리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고 시간이 날 때 어쩌다 하는 일. 라벨링 업무를 게임처럼 인식하게 된 플레이어들은 보상 체계가 희미하더라도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된다. 게임을 하다가 어쩌다 얻게 되는 포인트는 게임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일 뿐, 포인트를 덜 얻게 된다고 해서 분노하지는 않는 것처럼.


요즘 DIRT5라는 자동차 게임을 즐겨하고 있다. 레이스 중 경험하는 풍경이 예술이다. 이 게임에선 레이스를 완료하면 여러 가지 종류의 포인트를 준다. 포인트가 쌓이면 새 자동차나 여러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다. 레이스 포인트는 이 게임 내에서 '현금'. 하지만 레이스 별로 어떤 포인트를 얼마나 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따져보거나 눈여겨본 적도 없고. 왜냐하면, 이 포인트가 진짜 현실세계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많으면 어떻고, 적으면 어떤가. 게임만 재밌으면 됐지. '저번 레이스에서 1등 했을 땐 5312포인트였는데 왜 이번 레이스에서는 5229포인트인가? 내 레이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맞는가?'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게임을 하다 보면 포인트가 쌓이고, 하다 보면 쌓이는 포인트를 쓰기도 하고 냅두기도 할 뿐.


https://dirtgame.com/dirt5


만약 라벨링 작업자가 일을 게임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에의 갈망은 타당성을 잃게 된다. 게임 포인트는 진짜 돈이 아니다. 누구도 그 게임을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얻게 되는 돈에 관한 권리를 인식하기 조차 힘들다. (게임 포인트에 대한 플레이어의 권리가 있기는 한 걸까?)


만약 데이터 라벨링 사이트에서 작업에 대한 대가가 '원'이나 '달러'로 명확히 표시된다면, 작업자들은 스스로를 플레이어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라벨링 작업장 쪽에선 필연적으로 작업자들의 권리를 챙겨야 할 것이다. '노동'을 인정하고 '급여'를 지급하는 분명한 체계가 드러나는 것이므로. 국내의 라벨링 사이트에서 쓰는 '포인트' 개념이 해외의 사례를 그저 가져다 쓰는 건지, 게임과 플레이어라는 철학까지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급여를 화폐 단위로 지급하는 것과 포인트 단위로 제공하는 것은 어감상의 차이도 있다. 지갑에 있는 현금 2000원은 적은 돈이지만 쇼핑몰 사이트에서 지급한 2000포인트는 절대 적지 않다. 5000원은 급여로서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라벨링 사이트에 방문할 때마다 상단에 표시되어 있는 5000포인트는 든든하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클릭을 몇 번 했더니 1시간에 5000크레딧이 모였다, 출근 시간에 클릭을 몇 번 했더니 30분 만에 3000리워드를 획득했다.' 

5000원과 5000포인트는 분명히 다르다. 적은 금액이라도 '거저 생긴 돈'이란 뉘앙스가 있다. 출근하면서 꽁돈 3000원이 생기면 모닝 커피 값은 되니까, 노동의 강도는 차치하고 3000 포인트에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원'에는 노동의 대가, 노력, 직업 등과 같이 삶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포인트와 크레딧에는 그런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동차 게임 레이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따지지 않듯, 라벨링 업무가 게임으로 인식되면 크레딧/포인트/리워드에 대해서도 유사한 인식 체계가 잡힐 수도 있다. 라벨링 사이트에서 크레딧/포인트/리워드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라벨링 작업을 '노동'이 아닌 '플레이'로 인식하게 하는, 노동자들에게 굉장히 불리한 노동시장을 형성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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