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섭 Mar 18. 2022

욕망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가 철학자다. 

 우리는 모두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보통 단어에 '욕'이라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욕망이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욕망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나라는 존재 자체도, 인류라는 존재 자체도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우리의 유전자에 '이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듯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생물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에 생기는 그 욕망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끔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욕망이 일순간 끊기면 어떻게 될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내 몸은 의학적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욕망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무엇이 인간에게 욕망을 일으키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당연하게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생존'하기 위함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 점차 치사율은 낮아도 전파력이 높은 변이 형태로 진화했듯이,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욕구를 파악하게 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며 만족시켜가는 욕망들이 또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욕망들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격체가 형성된다. 그저 본능을 좇아 살아가던 한 생명체가 비로소 인간으로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생을 지속하기 위한 욕망만을 추구하는 생명체를 '동물'이라고 하고 그 외로 다른 인격체들과 함께하며 이루어간 욕망들로 '개성'을 가지게 된 생명체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씩 뉴스에서 보이는 '짐승'이라고 불리는 자들과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간은 인간으로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조금 전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지금 이대로로도 충분히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지금 상태 100%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내가 힘들지 않은 선에서 발전할 수 있다면 모두가 그런 편을 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고민들 속에서 욕망은 태어난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글쓰기 실력을, 나의 축구 실력을, 나의 요리 실력을, 나의 기술적인 면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끝에는 '나는 왜 더 발전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의 기저에는 결국 사랑받기 위함이 존재한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니까. 물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생존하고자 하는 욕망과 같은 의미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욕망은 너무나도 무의식 수준의 깊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삶을 윤택하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심금을 울리는 글을 써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감과 위로를 받게 하여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축구 실력을 늘려 같은 축구팀의 멤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팀 내에서 더 나아가 높은 연봉을 계약할 수 도 있다. 매력적인 면을 많이 갖추어 내가 꿈에 그리던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해결함과 동시에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욕망의 끝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사랑'이 남아있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는 어디까지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내가 내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해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욕망은커녕 더 주저앉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요즘의 나의 상태가 그러했다. 10년을 운동을 해오면서 이렇게까지 무기력함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 않던 운동을 해봐야 하는 생각에 크로스핏도 시도해 봤었지만 무릎이 좋지 않다는 적절한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금 본래의 하루의 패턴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기에 갑자기 나에게 이런 시기가 온 걸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건대,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나의 욕망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외적인 자극만을 좇아 내면에서 요구하는 리비도를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진득하게 앉아 '나라는 사람은 어떤 철학을 가진 사람일까?'라고 고민해보게 되었다. 


 '언젠가 TED와 같은 곳에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다니던 때가 있었고, 나만의 문화 복합공간인 심리상담센터를 차려 누구나 쉽게 방문하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생각들이 나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토대로 하여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욕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굉장히 많다. 70억 인구라면 70억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나의 마음과 같다면 전쟁이란 없겠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적어도 나 스스로가 알아주면 내 마음속에는 전쟁이 없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의 철학은 어떠한가요? 

 

작가의 이전글 자기소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