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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Apr 22. 2022

응급실은..

 이브닝 퇴근을 하고 나면 급하게 샤워를 마치고 밀린 유튜브 시청을 하는 것이 낙이지만, 오늘은 꾹 참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바빴다거나, 어느때보다도 감정소모가 심했던 날은 아니었지만 그런 하루하루의 누적된 감정덩어리가 제 역치를 뚫은 것이 저를 자리하게 한 것이겠지요.  

 전 환자, 보호자분이 제가 느끼기에 버거운 표현을 할 때에 최대한 왜 저런 말씀을 하실지 생각을 해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결국엔 '내가 비의료인이었다면 나도 저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어요. 왜냐면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은 응급실이 방문객에게 주는 낯섦과 두려움 속의 '무지'에서 빚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도 '비의료인'의 입장에 무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서로의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응급실 진료 절차와 시시각각의 상황을 말씀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응급실은 중증도순으로..'라는 것이 저희의 발목을 잡지요.


 응급실에 오시는 분은 누구나가 응급 상황이실 겁니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느끼셨으니 응급실로 방문을 하셨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의 입장에서 판단 할 수 있는, 기필코 판단해야만 하는 응급상황은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응급실에는 분류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1분 1초라도 대기 시간을 줄여 응급처치를 받아야만 하는 환자분들을 찾아내기 위함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분들이 이런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 응급실이겠습니까. 모두가 급한 마음으로 오셨다는걸 아는걸요. 


 한때는 그렇기 때문에 증상 조절을 제일 1순위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바람에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술 시기를 놓쳐버린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좀 더 무엇을 우선으로 생각해야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결국에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 아무리 노력해도 이 부분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겠구나..'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갈등 속에서 그만 힘들고 싶습니다. 제가 병원에 입사 할 때 자기소개서에 썼던 말이 있어요. '얼굴이 기억에 남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자기소개서에 쓸 그럴듯한 문장을 고민하다 썼다기 보단, 정말 제가 되고 싶은 간호사상이었습니다. 대중매체에서 비교적 보이지 않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다뤄지는 간호사라는 직업이지만, 제가 행했던 역할이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근데 오늘 전 그 분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어떤 얼굴로 기억에 남게 될까 두렵습니다. 나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럼에도 적어도 오늘 전 제 휴식보다, 제 식사보다 환자분들의 진료가, 안전이 그리고 동료의 안식이 훨씬 더 우선순위였습니다. 15분 남짓한 흡입을 마치고 돌아간 것도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함이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적는다는 글이 너무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응급실은 처치는 빠른 곳은 맞지만 모든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은 아니어요. 응급실에 오시면 누구에게나 침대가 제공되는 곳도 아닙니다. 응급실은 오신 순서대로 입원이 결정되는 곳이 아닙니다. 응급실은 원하는 검사가 모두 가능한 곳이 아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진은 여러분의 모든 절차가 최대한 빠르게 진행되길 그 누구보다도 염원합니다.. 


 이 글을 읽고 저희의 진짜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응급실 진료에 대한 문의가 있으시다면 최대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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