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다음 날 우리의 머릿속은 이 대화에 등장했던 닭볶음탕을 해먹을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여보, 오늘 점심은 닭볶음탕 해 먹는 건가?''
''그럼, 그런데 닭을 어디에 넣어뒀더라?''
''난 닭 꺼낸 기억이 없는데.''
''내 기억은 자주 나를 배신하니까 냉장고 안을 봐야겠군.''
''그런데 내가 어제 냉장실 정리할 때만 해도 닭은 없던데?''
''그럼 냉동실에 있나?''
나는 이 말을 하고 냉동실 안을 살펴봤다. 커다란 두 눈에 안경까지 동원해서 샅샅이 뒤졌지만 닭은 없었다. 냉동실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냉장실 안을 살펴봤다. 그 어느 때보다 꼼꼼히 냉장실에 있는 식재료를 살펴본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과거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마트에서 장을 보고 며칠 동안 장바구니에서 오이를 꺼내지 않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오이가 누렇게 변하긴 했지만 다행히 상하지는 않았고 오이는 요리해서 먹었었다. 하지만... 하지만... 생닭이 그때와 똑같은 일을 겪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설마 이 닭도 혼자 어딘가에서 조용히 썩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우며 나는 다급히 장바구니가 있는 서랍 안을 뒤져봤다. 다행히 장바구니는 제 자리에 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상식적으로 마트에서 구매한 닭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 중 한 명이 전화를 받는 등의 다른 행위를 하면서 닭을 정리했다면 생닭이 있을 법한 장소는 꽤 다양해진다. 사실 식재료가 '생닭'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넣는다면 생닭은 베란다, 안방, 화장실 등 실로 다채롭고 창의적인 장소에서 썩어갈 수 있었다. 이때 남편이 말했다.
''혹시 닭 안 산 거 아니야? 어제 마트에서 계산할 때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가?''
''영수증 있어?''
''영수증 찢어서 버렸는데.''
''당신 가계부에 적지 않았나?''
사실 내가 가계부를 적는다고는 하나 구매 물품이 많은 경우 간혹 고의나 실수로 몇 가지를 빼먹는 경우가 있어서 가계부를 100% 신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어제 있었던 일이라 영수증은 내 방 휴지통에 찢어진 상태로나마 있을 터였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쓰레기 통 속에 있는 영수증 조각을 꺼내서 퍼즐 맞추듯이 맞춰봤다.
''어, 진짜 닭이 없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둘 다 닭을 샀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그걸로 닭볶음탕을 해먹을 생각을 했을까? 오래 같이 살다보면 이런 것도 닮나? 당신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잖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