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Jul 15. 2023

추어탕을 대하는 자세  

기쁘지가 않아요 

 난 결혼하자마자 시댁 건물에서 살았다. 시부모님은 3층에 사시고, 세입자인 우리는 2층에 살았다. 결혼해서 거의 1년 후에 딸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하면 딸도 봐주시고, 음식도 해주시고, 김치도 해주셔서 덕분에 주부 답지 않은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성격은 원래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서로 다르니 이해하고 맞춰간다지만 제일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식성, 식성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아버님은 보양식을 포함해서 가리시는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드시고, (참고로 과메기에서 오이맛이 난다며 나한테 먹어보라 하셔서 먹어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후론 과메기가 오이로 다시 태어나지 않은 한은 다시는 안 먹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체질상 가리시는 것이 많지만 추어탕이나 개고기 같은 보양식은 드시는 편이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을 먹고 자랐고, 딸은 어리니까 어른 입맛 따라잡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가 제일 문제였다.

 개고기는 어렸을 때 먹을 뻔하다가 내가 평소에 먹던 고기와 다른 걸 눈치채고 아빠를 추궁한 결과 아빠가 개고기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안 먹고 지금까지 버텼으며, 소나 돼지의 부속물은 비위가 약하다는 핑계를 대며 멀리했다. 식성도 오랜 세월 굳어진 거라 단 시간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몸에 좋은 걸 하실 때는 나도 먹고 힘을 내길 바라시는 시부모님이 내게 해당 보양식을 먹는지 물어보실 때가 있다.

  곱창, 순대, 각종 허파 등 내장은 당연히 못 먹지만, 살코기류는 먹으려면 먹을 수도 있고, 탕으로 나온 것일 경우 누린내나 비린내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식감이 많이 이질적이지 않는다는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먹을 수는 있다. 그러니까 기꺼이 좋아서 흔쾌히 먹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다니까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을 뜻한다.

 한 번은 어머님이 추어탕을 끓이고 계셨다. 추어탕이 몸에 좋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먹어본 적도 있지만 맛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할 때 팀 전체가 추어탕을 먹으러 갔기 때문에 같이 갔고, 점심은 먹어야 했기 때문에 먹었던 것이다. 그나마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인 거라 수프를 먹듯이 후루룩후루룩 삼키며 맛을 음미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먹었던 기억이랄까...

 문득 내가 먹을 수도 있고,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신 아버님이 물으셨다.

''주연아, 너 추어탕은 먹냐?''

'추어탕은'에는 네 식성이 까다로운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몰라서 물어보는 거라는 아버님의 배려가 묻어있었다.

 남편에게 '주연이 추어탕은 먹냐?'라고 물어보셨다면 남편은 '안 먹을걸요.' 혹은 '안 먹어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아버님은 나한테 직접 물어보셨고, 나는 최대한 아버님이 기분 나쁘시지 않도록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시나리오 다듬듯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생각을 마무리하고 대답했다.


 ''먹을 수는 있는데 기쁘지가 않아요.''


아버님이 생각하신 대답이라면 '추어탕은 못 먹어요', '저 추어탕 못 먹어요.', '추어탕은 먹어요.', '먹을 수는 있는데 즐겨 먹지는 않아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대답을 했고, 아버님도 순간 당황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먹을 수는 있지만 기쁘지가 않다'라는 대답은 꽤 참신했고, 아버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 그래?''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참신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기쁘지가 않다'는 말은 다음에도 써먹어야겠다.


#서로를이해하기 #삶 #일상 #추어탕

 



   



   

매거진의 이전글 빵 부스러기와 중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