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했으면 좋겠어?
요즘 사람들에게 면허증은 신분증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면허증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의아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역서나 저서를 통틀어서 23권을 출간했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문학 행사를 해왔으며, 이동 거리만 해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넘어서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다녀왔으니 내가 운전면허가 없다고 하면 어느 별 사람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다른 행성 사람 보듯 하는 시선 다음에는 그 많은 행사나 출판사 미팅에 갈 때 어떻게 이동하느냐는 질문이 뒤를 잇는다. 불편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일단 지하철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지방에서 행사나 일이 있을 경우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대표님 차를 얻어 타거나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것에 대해 거부감도 부끄러움도 없다. 방향이 같다면 얻어 탈 수도 있고, 그럴 상황이 안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될 것이니 문제 될 것도 없고, 불편할 것도 없다는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면허 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한 번은 나한테 러시아어를 배우던 남학생이 게임으로나마 운전을 경험해 보라며 함께 카트라이더를 하러 가자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운전한 것보다 더 너덜너덜한 상태로 PC방을 나왔고, 제자를 원망해야할지, 고마워해야할 지 모를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면허로부터 오히려 조금 더 멀어졌다. 도보로 이동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직진 본능이 몸에 밴 탓에 좌우를 살피지 않는 습관 때문에 같이 가던 남편이나 제자들이 뜨악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오늘 다시 한번 운전을 해보는 것이 나을지 고민을 하게 만든 일이 생겼다. 남편이 운전해서 이마트를 갔다 집에 가는 길에 우리 앞에 갑자기 끼어든 택시 한 대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뭐야 저건?
-그러게. 운전 못하는 나도 저건 아니라는 걸 알겠구먼.
-그러니까 말이야. 위험하잖아.
-그런데 택시 기사 조금 전에 깜빡이 킨 거 아니야? 미안하다고 표현한 거 아닌가?
-아닌데. 비상등을 안 켰잖아.
-비상등? 비상등이 뭐야?
순간 내가 질문을 하면 구체적으로 어디에 붙어 있는지, 비상등의 기능은 무엇인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뻔하다는 것을 깨달은 남편이 서둘러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런 거 있어.
순간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 혼자 정의 내린 '비상등'을 상상해 보려 애썼다. 그리곤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어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운전에 대한 고민이 떠올라 남편에게 물었다.
-나 운전 배울까?
-아니, 하지 마. 안될 것 같아. 혼자 깜빡이 켰다고 생각하고, 깜빡이 켰는데 안 켰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러게. 앞만 보고 달리고, 직진에 방해가 되는 차는 죄다 긁고 그러겠지?
-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당신은 절대로 운전하지 마.
-내 기억으론 당신 꿈이 당신이 만취했을 때 내가 운전해서 집까지 데려오는 거였던 것 같은데?
-어, 그렇긴 한데. 꿈에 목숨까지 걸고 싶진 않네.
-내가 그 정돈가?
-응.
순간 지금까지 내가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던 남편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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