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an 31. 2024

핸즈온, 그 낯설고도 사랑스러운

선생님의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의 손길







 나는 내가 다니는 동네 요가원에선 요가를 배우고 수련하는 학생이자 대외적으로 티칭 하러 나갈 땐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그 간극에서 오는 차이는 어쩔 땐 낯선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핸즈온'이다. 핸즈온은 요가할 때 선생님이 수련자에게 건네는 터치인데 수련자의 아사나가 바르지 않거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더욱 심도 있는 티칭을 할 때 주로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선생님이 하는 '핸즈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수련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선생님의 손길은 마치 이런 식으로 아사나를 취하면 안 되는 것이라 다그치며 교정하는데 그 의미가 짙은 거라 나도 모르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끔 내게 다가오는 선생님의 '핸즈온'이 그다지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의 수련시간에 나는 나의 단단한 착각의 틀을 깼다.


아쉬탕가 수업시간.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측각도 자세 (우띠 따 파르스바코나사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핸즈온이 나의 옆구리와 골반에 왔다. 선생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나의 경직된 옆구리와 골반의 열림을 더욱 열어주었다. 


"이제 가동범위가 늘어났으니 좀 더 여는데에 집중해 보세요."


선생님의 울림 있는 목소리가 나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아, 핸즈온이 꼭 내가 잘못하거나 교정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점을 넘어 더 깊은 자세로 인도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간 나의 몸 상태를 지켜보셨고 나의 발전된 아사나를 나보다 더욱 깊이 알아차리고 계신 터였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사나를 하면서 좀 더 우쭐하거나 자만하던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고서야 그간 핸즈온을 그렇게 여겼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티칭을 하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나는 한참 멀었구나, 한참 배워야겠구나를 깊이 느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의 애정 어린 '핸즈온'은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선생님이 내게 보내는 사랑. 내게 보내는 관심.


내가 스스로 더욱 깊은 아사나에 도달하지 못할 때 한계를 넘어 더 깊고 풍부한 아사나의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게 인도하는 것임을 나는 이제 완전히 느낀다.


그리고 티칭 할 때 나 또한 어떤 마음으로 수련자들에게 핸즈온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단순히 자세를 잘 못하고 있거나 교정만을 위한 마음가짐으로 핸즈온을 한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핸즈온에 대해 그리 부정적이었나.


핸즈온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생각을 했나.


이제는 핸즈온이 그리 단순한 손짓이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선생님의 애정 어린 '핸즈온'처럼 단순히 몸만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깊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기를 그렇게 스스로 소망하며 수련하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지도자 이기 이전에 나는 수행하는 수련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전공과 요가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