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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Feb 15. 2024

한계성의 무한함을 알려주다

요시다 유니를 통해 나 자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개제 된 사진들은 전시장에서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작년 11월부터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의 개인전을 나는 나의 쓰리디 공부로 인해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워낙 컸던 탓에, 이 개인전이 2024년 2월까지 기간연장되었다는 기쁜 사실로 인해 나 또한 이 전시전을 직접 보러 갈 수 있었다.


일단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 글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내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메시지도 담는다. 아티스트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그리고 이 전시를 통해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무엇인지. 그렇기에 화려하거나 현란한 문체는 잘 모르겠고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그대로의 언어를 그저 여기에 담담하게 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아트 디렉터 분의 전시를 보고서 내가 느낀 점은 크게 이 것이었다.




한계성이 있어서 무한하다.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이 분은 본인 스스로를 아티스트가 아닌 '아트 디렉터'로 칭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한계와 틀이 정해진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드는 데에 흥미가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을 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관객을 시각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시각적 매체를 모두 총괄하는 직업인 아트디렉터로서 불리기를 선호한다.


이 분의 작업은 굉장히 직관적이며 강렬하고 대단한 상상력이 한꺼번에 썰물이 밀려오듯 찾아온다. 첫 번째는 강렬한 색채에 놀라고 두 번째는 숨어있는 메타포에 감탄하며 세 번째는 이 분의 엄청난 장인정신에서 나오는 디테일함에 감탄한다. 굉장히 놀라운 부분은, 작품 하나하나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그런데 작품성과 예술성 또한 매우 뛰어나다. 그 이유는 디지털 작업물이 범람하는 현대인 오늘날,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작업형식을 고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요시다 유니의 이 분을 지칭하는 수많은 설명에 불과하다.





자, 여기서부터 나에 대한 자랑이 아닌 자랑도 같이 나오겠다. 아니, 감히 유명인과 나를 같은 선상에 놓는 발칙한(?) 발상을 할 수 있는지 그 대단한 자신감에 헛웃음이 나오시는 분들도 계시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고 아무 말도 없이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떠나 주시길.


앞서 나는 내게 바치는 러브레터, 내게 보내는 메시지이며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글이라 밝혔다.


그럼에도 대담한 나의 생각과 느낀 점 그리고 깨달은 바를 보고 싶으시다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떠나보자.





이 분의 전시회에서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작가님은 " 100% 수작업인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신다.



완벽하게 수작업이라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 수작업으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요시다 유니라는 작가명만 보면 모두들 수작업 100%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고 추구하는 장인정신의 천재라 칭송하는데 정작 본인은 완벽한 수작업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작업으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게 무슨 의미냐면 본인 스스로 말하는 완벽한 수작업이란, 디지털의 도움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정통 그 자체의 방식이라 느껴졌다.


나는 이분의 이 말 한마디를 통해 직감했다.


이분, 나와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아니 아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글을 호흡하며 읽어보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감히 이제 막 졸업한 내가 세계적인 명성의 아트디렉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게 단순히 내 자랑으로 들린다면 다시 뒤로 나가주시길. 그렇다고 내 자만은 더더욱 아니다. 아직 내가 그럴 깜냥이 되지 않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이 사람이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말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며, 과거의 나는 이 사람과 현저히 달랐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에서 얻는 창의성을 사랑했고 어느 정도의 한계성이 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정확히는 교수님들께서 주신 주제가 자유인 과제에서 강점을 띠었고 주제와 목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과제에서 약점을 보였다.


한계성을 가진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브레이크가 나는 너무나 싫었다 그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상상할 수 없고 마음껏 내 끼를 펼칠 수 없는 사실이 싫었다. 내 자율성과 창의성에 대단한 자신감을 내비쳤던 나는 자유인 과제에서 당당히 A+를 받았고, 오늘날의 요시다 유니의 작업물처럼 메타포를 이용한 과제에선 B+를 받았다. 한계성에 나는 한계를 느꼈고 그 벽에 부딪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요시다 유니는 한계성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운 자신의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사용했다. 그 속에서 얻어지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 그리고 그 속에서 본인이 발견한 것에 더 발전시키는 끈기와 집착. 완벽함에 대한 꼼꼼함과 그 집념.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 오늘날의 포토샵으로 만들어진 듯한 환상적인 아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한계성'이란 단어에서 오는 위압감과 제한적인 조건에서 더욱 풍부하고 넓은 그녀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냈다. 한계가 분명하기에, 결계처럼 정해져 있기에 오히려 나올 수 있는 그녀의 영감의 원천들. 그리고 그녀만의 놀라운 창의성은 실로 감탄스럽다. 내게 '한계성'이란 나 자신을 억압하는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날개라고 일러주는 듯했다.


오늘날의 '나'는 요시다 유니란 사람의 끈기와 집념, 고집과 인내, 그리고 유연함에 감탄하며 그럼에도 그녀와 나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기까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완성할 수 있다'


'내가 고집하는 방식은 끝까지 밀어붙인다'


'다양한 툴들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다재다능하다'


'낙서를 많이 하며 특히 에이포 용지에 자유롭게 스케치를 하는 것이 좋다'


'항상 메모를 한다'


'결단력과 실행력, 추진력이 대단하다'


'계획하고 만들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자연을 사랑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요시다 유니는 순간포착에 굉장히 능하며 타고난 센스와 감각으로 자신이 계획한 모든 스케치들을 그대로 구현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가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가진 오늘날의 아티스트들의 귀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기까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완성할 수 있다'

칼아츠 동계연수에서 3주밖에 안 되는 촉박한 기간 동안 타이틀 시퀀스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최고점수를 얻었으며, 졸업작품에서 나는 1년이란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획적으로 움직여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내가 고집하는 방식은 끝까지 밀어붙인다'

칼아츠 동계연수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 장 한 장 그려내는 투디 애니메이션 방식을 채택했으며 한 장 한 장 찍어 시퀀스를 만드는 스톱모션 기법도 활용했다. 졸업작품 제작땐 교수님께서 기함하신 일일이 수백, 수천 장을 일일이 포토샵 브러시로 선을 따고 채색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다양한 툴들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다재다능하다'

쓰리디 툴을 현재 능숙하게 다룰 줄 알며 애니메이션 기법으로는 투디, 쓰리디, 스톱모션을 배웠고 영상 편집과 음악 작곡 수업을 들어서 툴도 만질 수 있다. 누드크로키와 일러스트레이션도 강점을 보이며 캐릭터 디자인, 콘셉트아트는 교수님들께 항상 호평을 받아왔다.


'낙서를 많이 하며 특히 에이포 용지에 자유롭게 스케치를 하는 것이 좋다'

즉흥적인 상상을 많이 하는 탓에 항상 노트나 에이포 용지에 낙서를 많이 한다. 그 탓에 따로 아카이브를 해야 할 정도로 종이가 여기저기 많이 쌓여있다.


'항상 메모를 한다'

요즘 스마트 폰에 메모를 많이 하는데 메모가 700개가 넘었다.


'결단력과 실행력, 추진력이 대단하다'

한번 꽂히거나 만들어내야 하는 데드라인이 정해진 프로젝트에선 어떻게든 시간 내에 최상의 결과물로 마무리한다.


'계획하고 만들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칼아츠 때도, 나의 3학년 스톱모션 오리지널 캐릭터 인형을 만들 때도, 그리고 졸업작품 제작 때도 나는 내가 만들고자 계획한 바를 그대로 구현해 냈다.


'자연을 사랑한다'

그녀의 대표작인 Layered, The moment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그녀는 자연물, 특히 과일과 꽃과 같은 자연물을 쓰는 것을 즐겨한다. 나 또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물에서 여러 영감을 얻는 만큼, 그녀 못지않게 나도 자연을 사랑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나 또한 적당히 시끄러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내게 백색소음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어준다. 그렇기에 이 분의 작업방식이 나와 참으로 많은 부분이 닮았고 맞닿아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누구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요시다 유니라는 사람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가며 성장한 지금, 나는 이제야 요시다 유니 같은 사람과 같아졌다. 이제 툴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길러졌다. 내가 상상한 대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이 자체가 얼마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가!


요시다 유니의 작업노트와 스케치 등이 담긴 아카이브를 보면 이 분 또한 쓰리디 프로그램 (내 생각엔 제품 모델링을 위한 스케치업이나 오토 캐드를 사용하셨을 것 같다)을 이용하여 필요한 소품을 만드셨고 구체적인 색감을 위한 작업을 하기 위해 디지털 페인팅을 하셨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요시다 유니 스스로 완벽한 수작업이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 꼼꼼함과 대단함.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그에 내포한 철학. 단단한 심지.


그 모든 것이 경이롭고 감탄할만하다.


여기서 나는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갈 아티스트로서, 한류가 세계에 스며들고 유행이 되고 있는 거대한 문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옛날 화가들은 카메라가 발명되는 날, 회화의 종말을 예감했다 한다.


오늘날 아티스트들은 AI의 발명을 통해 예술이 더 이상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공포에 떨었다.


나는 '아날로그'가 주는 힘을 믿는다. 참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 누구보다 컴퓨터를 만지고 프로그램을 다루며 항상 컴퓨터와 함께 있지만 사람만이 해낼 수 있고 사람냄새가 풋풋이 묻어나는 아날로그적인 향수에 항상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 모순은 요시다 유니의 작업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의 대표작인 The moment 나 Layered에서 자연물은 모양, 색, 질감이 다 다르며 똑같지 않다.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색도 모양도 질감도 다 다르다. 그녀가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간의 공력과 하나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정렬 그리고 굉장히 공을 들이는 디테일과 정교함의 특징과 다르게 빨리 변화되고 부패하는 자연물의 특성상 그녀는 빨리 신속하게 사진으로 작품을 담아냈다고 한다. 그 상반됨에서 오는 간극의 차이가 참으로 재미있다.


모순적이지만 모순적이라 아름답다. 그렇기에 예술이다. 나는 항상 나의 모순을 직시하며 살았고 그 모순을 영원히 끌어안으며 창작하리라 믿는다. 모순적이라 아름답고 모순적이기에 인간적이다. 지극히 사람답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만의 무언가다.


실생활에서 나는 또 아날로그의 힘을 느낄 수 있는데 요가를 하면서 나는 단단한 나의 발바닥 반다의 힘을 실감할 수 있고 내 안의 곧은 심지가 있단 걸 느낀다.


이 감각과 느낌은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아날로그 고유의 감각과 느낌이다.



요시다 유니의 세계적인 명성은 단순히 그 창의성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테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그녀만의 단단한 철학에서 나오는 경이로움이 그녀를 더욱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제한성'이 있기에 더욱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는 그녀의 발상은 인공지능의 무궁무진한 능력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그녀의 그러한 점을 발견하고 깨우치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승화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나 또한 계속 그런 고민을 하고 있고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물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나 또한 요시다 유니처럼

발견하여 나만의 프로젝트와 아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내 생각엔 그 무언가는 바로 '모순'이며 그것은 지극히 지독한 짝사랑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모순을 더욱 발견하고 더욱 발전시켜 내가 만나는 아날로그의 힘과 내가 다루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간극에서 어떤 창의적인 활동을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그렇기에 과거의 내가 오늘날의 내가 된 것에 감사하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나 자신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한계성'의 무한함이란 역설의 아름다움을 내게 일깨워준 요시다 유니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그녀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앞으로의 아티스트로서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갈지, 인공지능과 더불어 어떤 작업을 해나갈지


요시다 유니의 전시를 다시 한번 더 보면서 더욱 사색에 잠겨봐야겠다.



인간적인 건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나와 참으로 닮은 점이 많은 그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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