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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May 27. 2024

불확실성마저도 계획적인,

제임스터렐관의 기획과 의도 그리고 나의 고찰


나는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고 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나의 마음속에선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 빵! 하고 터지는 오래된 욕망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내 생각엔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욕망들이 더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뮤지엄 산'에 들러보는 것이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 건축한 건축물이자 미술관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고고한 콘크리트 건물들 그리고 이 건물의 상징물인 빨간 원뿔형 조각물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느 매체로든 나는 어찌 되었든 이 '뮤지엄 산'을 보았고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이곳을 언젠가 꼭 들러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결국 3월에 좋은 기회가 닿아 이모부의 도움을 얻어 이곳, '뮤지엄 산'에 방문하게 된다.







일단 '뮤지엄 산'은 첫인상은 굉장히 깔끔하고 담백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깔끔했고 단정했으며 콘크리트 특유의 질감이나 색이 자연과 융화가 되어 전혀 어색하거나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일 보고 싶었던 빨간색의 원뿔형 조각물은 바로 건물 초입에 있어 전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수확이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달엔 공교롭게도 예정된 전시가 없었지만 제임스터렐관과 명상관이 열려있었는데 나는 엄마와 함께 최대한 모든 곳을 방문할 수 있는 '통합권'을 끊어 관람했다. 제임스터렐관은 초입 매표소 건물과 굉장히 떨어져 있는데, 만약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곳을 먼저 들르고서 나머지 건물들을 천천히 방문하는 식으로 동선을 짜면 편하실 것이다.







'제임스터렐관'은 독특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다. 오직 이 관에서는 예술가가 의도한 대로 따르며, 그 속에서 오는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왜 이 예술가가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임스터렐관'은 변화무쌍한 하늘과 빛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관이며 모든 건물들과 설계는 그가 의도한 바대로 착실히 흘러간다. 하지만 그의 건축물과 의도가 빛을 발하게 된 큰 이유는, 바로 자연에서 오는 무질서함이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굉장히 밝고 화창했다. 맑고 기분 좋은 날씨였다. 그 덕에 하늘은 푸르렀으며 나는 선명하다 못해 눈이 녹아 없어질 듯한 푸른색과 밝은 햇빛을 내 눈에 선명히 찍어내었다. '제임스터렐관'은 그날그날의 불확실하고 무질서한 자연의 변화마저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철저히, 치밀하게 구성된 각 공간마다의 의도된 설계는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예술가는 수학, 과학, 철학 그리고 심리학에 견문이 높으신 분이며 그 덕에 '제임스터렐관'은 착시효과나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탁월한 경험도 선사한다.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핸드폰도 사용하지 못하는 까닭에 온전히 그 건물과 그 작품 속으로 직접 체험하며 나의 몸과 마음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들려오는 도슨트의 설명과 해석에 나는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터렐관'을 경험하며 나는 재료에 한계란 없으며 융합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확인했다. 예술은 요즘 더욱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 간극과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당장 내가 전공하는 영상과 애니메이션 분야도 점점 공학계열과 접목되는 추세이며 예전보다 세분화되고 있으면서도 다루는 주제나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기술이나 툴들의 제약은 거의 없어진 지 오래다.


참으로 재미있는 점은, 무엇하나 이 '제임스터렐관'이란 공간, 건물엔 뭐 하나 이 예술가가 의도하지 않은 바가 없으며 모든 건 철저히 계산되고 설계되었으나 결국 이 공간과 예술가의 의도가 빛을 보게 하는 건 바로 자연의 '불확실성'이다. 나는 이 공간에 있으면서 하늘의 푸른색과 햇빛의 따스한 손길, 그리고 하얀 벽들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계산과 설계라는 확실성에서 자연의 무질서, 예측불가, 그리고 계속되는 우연의 연속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느꼈다.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들, 요소들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접목될 수 있고 모든 것이 승화가 가능하다. 아마도 이 예술가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전공들을 최대한 접목시켜 오늘날의 이 '제임스터렐관'을 만드신 것 같다. 자신이 다루는 재료에 한계란 없으며 융합의 경계가 모호하다. 자연의 무질서함과 불확실성까지도 하나의 작품으로 한껏 끌어들여 작품으로 승화한 그의 안목과 그것 또한 '의도한 바'이기 때문에. 참으로 재미있고 탁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분 좋은 바람과 햇살. 그리고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전시의 내용들이 모두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일들의 연속인 불확실성과 계획과 계산이란 확실성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라고 느껴졌다. 눈부시게 화창하며 인자하고 상냥했던 바람과 햇살이 아직도 피부결 사이사이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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