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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Oct 15. 2020

나는 늘 꿈을 꾸고 있었다.

홀로 내 꿈의 길을 걷는 당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꿈을 지녀라. 그러면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다.'- 릴케


 
# 외롭던 아이의 꿈이 시작되다: 그림은 내 유일한 친구.

인생은 늘 고민과 번뇌로 가득 찬 것 같다. 그래서 모두들 그 긴 여정에서 방황하고 또 헤매는 것 아닐까. 어느 작가의 말이 스친다.
“빨랫감 없는 집은 없다”라고. 어떤 인생을 안고 가던 모두가 저마다 처한 인생이 있다고.

나 역시 끊임없는 방황으로, 나의 그림 인생은 어쩌면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깊고 긴 어두운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당시, 그 깊은 어둠은 내게 걷힐 것 같지 않았다.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학업에도 취미가 없던 나였다.
그러나 나는 장소가 어디가 되었던 늘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림과 대화를 나누었고 언제부터인가 혼잣말을 하는 소녀가 되었다. 그렇게 칠흑 같던 어둠의 어린 시절, 내게 친구가 되어준 건 연필 한 자루와 스케치북이었다. 말이 되든 되지 않든 나는 나의 상상의 세계를 그려나갔다.
바쁜 부모님들 뒤로, 나는 누군가 내 그림을 봐주지 않아도 계속 그려나갔다. 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고 그렇게 행위를 연명해 나가지 않으면 내가 없어질 것만 같았다.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하던 나는 매년마다 열리는 사생대회에 열심이었다. 미술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알지조차 못했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그 풍경을 예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매해 상장이 늘어갔고 중학교 2학년 때,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운동장에 모여 있을 때였다. 교장 선생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렸고 학년을 대표하여 사생대회 대상을 탄 것이다. 그때만큼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재능을 처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내 모두가 바쁜 삶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는 외로이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과 대화하며 점차 화가의 꿈을 안고 그렇게 성장해 나갔다.



# 소녀의 첫 번째 도전: 꿈으로 다가가다.

고2 가을이 다가올 무렵, 바람이 살며시 옷깃을 스치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가정처럼 우리 집에도 IMF가 찾아왔다. IMF는 정말 모두에게 끔찍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덩달아 내 꿈은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께 미대를 가고 싶다고 내 꿈에 대해 태어나 처음으로 이야기를 했었던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 학원을 다녀야 했는데 만만치 않은 학원비가 결국 가족의 발목을 잡았다. 나는 엄마를 붙잡고 울며 이야기했다.

“엄마, 내가 학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할 테니 제발 다니게 해 줘”

아빠의 심한 반대가 이어짐에 따라 나는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지나치지 못했다. 방구석에 박혀 매일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 결국, 미술학원을 데리고 가셨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어려운 상황에 나를 도와준 엄마를 위해서라도, 정말로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서 열심히 하자고.
 
당시, 나는 늘 자존감이 없던 아이였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자신감이 없어서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나를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림조차도 특별한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런데 유일하게 나의 경쟁의식을 발휘하게 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림이었다.
미술 학원을 다니며 그림이 잘 안 그려지기도,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찝찝한 기분이 온종일 이어졌다. 그리고 나보다 늦게 들어온 친구가 더 실력을 발휘했을 때, 그 열등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덕분에 그런 과정은 나를 다져갔고 더욱 전진하고자 한 모든 원동력이 되었다.

예체능 계열을 준비하는 모든 고3 학생들이 그러하듯, 학교가 끝나자마자 미술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혼나고 실패하는 시간이 이어져도 집보다 미술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좋았고, 10대 인생에서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미대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견뎌왔던 모든 힘듦이 눈 녹듯이 사라졌던 그 해, 봄날이었다.
학원 건물 위, 미대에 합격한 학생들 이름 사이로 내 이름이 현수막에 함께 실렸다. 오로지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만을 가지고 있던 소녀, 나의 이름이.
대학에 떨어지면 공장에 가서 일이나 하라던 아빠에게 달려가 말하고 싶었다.
“아빠, 나 합격했어”
 
 
# 미대생이 되다 : 내 꿈의 첫 발을 디딛다.

서양화과로 입학하고자 했던 나였지만 나의 수능점수를 고려하여 방향을 틀어 동양화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나를 너무나 괴롭게 한 시작이었다. 동양화를 전혀 준비하지 않고 소묘로 시험을 치고 들어간 과에서 나는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먹이 무엇인지, 채색이 무엇인지 정말 동양화에 ‘동’자도 모르고 들어간 것이다.

학교 내, 과 전시를 할 때면 서양화과 친구들이 부러워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유화를, 나도 아크릴을 하고 마음속으로 갈망했고 결국은 점차 마음의 골이 깊어져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스스로 낮에는 알바를 하고 그 돈으로 밤에는 작은 화실을 다녔다. 그리고 그 화실에서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몇 해후, 스승과 제자는 작가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편입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다시 나의 본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변화가 일어났다.
3학년이 되자 드디어 내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마련되었다. 그때 나는 드디어 동양화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신비할 수가 없었다. 분채의 오묘한 색이 자유로이 장지 위에서 저마다 빛을 뿜어내었다.
통제된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내 감정을 색으로, 선으로 펼쳐 나갔다. 그리고 그 행위는 나의 작업의 기반을 다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2005년 작, 청춘.



교수님, 그들은 나의 그림에 관심이 없었다.
칸막이로 나누어진 작업실, 교수님이 내 자리에 머무는 시간은 극도록 짧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그냥 내 작업에 열중했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4학년 졸업작품 심사가 시작됐다.
네 분의 전공 교수님 중 유난히 내 작업에 대해 관심도 없으시고 혹평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개인 전시로 인해 1차 졸업심사 때 참여하지 못하셨다. 내 그림은 다행히도 다른 교수님들에 의해 1차 심사가 잘 넘어가게 되었고, 2차 심사 때 비로소 그 교수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의 교수님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잠깐 나의 작업 이야기를 슬며시 하자면, 당시 나는
미국 작가인 잭슨 폴록 Paul Jackson Pollock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장지 위로 마음껏 물감을 흩뿌려 내 감정의 색을 채운 후, 그 위로 세밀한 선을 하나하나 그려 감정의 결을 더해 나갔다. 그리고 그 선들은 화면을 가득 메웠다.

1차 심사 때 평가받은 작품을 기준으로 2차 때는 더 크게 그려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내 키보다 훨씬 큰 2미터 정도의 화판을 마주하며 3박 4일 동안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학교 작업실에서 그림과 동거 동락하며 지냈다. 내 몸보다 작은 책상 위로 몸을 웅크리고 자다 일어나다를 반복하며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종이 위로 오고 가는 내 손은 이미 쓸린 대로 다 쓸려서 대일밴드를 수십 개는 갈아야 했다.
그러나 여념 없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의지한 채, 정해 놓지 않은 길을 따라 내 감정과 손이 가는 대로 계속 그려나갔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작품을 보자마자 주임 교수님이 미소를 지으셨고, 다른 교수님들의 표정도 내게 읽힐 정도였다.
“저 아이가 이 짧은 시간 동안 저렇게 그렸다고?”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 분.
그림을 보시고 한참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수고했다”
주임 교수님께서 통과라는 말이 바로 나옴과 동시에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꼈지만, 바로 통과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나를 얕게 보던 그들에게 나의 위력을 보여준 것만 같아서 그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3박4일 고군분투 했던 졸업작품/ 복잡한 나날들, 2006


그리고 그렇게 기쁨도 잠시, 세상에 홀로 다시 나는 내 던져졌다.
‘예술가’의 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작가라는 여정의 꿈에 겨우 한 발짝만 내디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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