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한때 해외원조를 받던 못 사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10 대 원조국이 된 매우 훌륭한 국가다.` 외국인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대단한 민족의 일원이지`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북한이 Korea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그렇다. 약 80년 전 Korea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엇비슷하게 해외 원조를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완연히 다르다. 남한은 세계 10대 원조국이 되었다. 북한은 아직도 어디서 식량을 꾸어올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최빈국의 위치에 서있다. 그러니 Korea는 해외원조의 모범국이라기 보단, 해외원조의 연구 대상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해외 원조 현장에 있다 보면, 우리를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내고 성공한 매우 우수한 민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가슴 한편이 쓰리다. 북한이 그리 만든다. 한 발짝 떨어져 Korea를 보면 어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리도 머릿속이 달그락거리는 이유는 아마 북한과 엇비슷하게 산다는 부르키나파소를 3년간 도와주었기 때문일 듯싶다. 나라가 못 살면 어찌 되는지 여실히 목격했고, 경험했다. 수도 외곽으로 빠지면 지붕 없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도로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북한도 이와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을 때 목격한 국경선을 지키던 북한 군인들의 앙상한 체격과 키는 부르키나파소 서민들과 별 차이 없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는 잘 살기도, 아주 못 살기도 하는 한민족이다.
해외 원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것이다. `북한? 사는 게 거기서 거기겠지.` 현장에 하루만 나가봐도 사는 게 거기서 거기가 아니란 건 단박에 알게 된다. 현실의 냉정함과 잔인함 그리고 슬픔은 멍에가 되어 사람들을 짓누른다. 상당수의 우리 민족도 그런 지경에 살고 있다.
국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기간이나마 가난한 나라를 돕는 기회를 제공하는 건 해외 원조에 꼭 필요한 일이다. 가난을 알게 하고 우리도 저리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슴에 새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호텔에 머물면서 관광이나 하고 돌아오지 않는 이상. 예외는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우리가 타고난 우수한 민족이라서가 아니다. 열심히 노력했고, 시스템이 이를 받추어주었고, 운도 따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장에서 일할 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나왔다. 자칫 해서 백 킬로미터 북쪽에서 태어났다면, 부르키나파소 주민들과 별 차이 없이 살고 있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