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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 날개를 달자 Nov 15. 2022

인생에서 한바탕 소나기는 피할 수 없지만 결국 그쳐

그치지 않는 비 (오문세)

친구는 늘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가능하다면 빨리. 가족들의 품에서 벗어나야만 해...” 그 친구에게 가족은 어쩜 반쪽짜리 행복이었을지 모르겠다. 부모의 이혼과 새엄마의 아이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친구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랬는지 그 친구는 가장 먼저 가정을 꾸렸고, 친정에서 멀리 신접살림을 꾸렸다. 따스한 정과 웃음이 피어날 것 같은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어쩜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족이 없는 나만의 공간을 꿈꾸게 되고, 가족이 없는 혼자의 시간을 꿈꾸게 된다. 가족이란 존재가 한없이 버겁게 느껴지고 짐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면 나에게 '돌'이 날아올까? 


열아홉의 나이지만 외모는 열다섯처럼 보이는 주인공 나. 학교를 자퇴하고 여행을 떠난다. 나에게는 여행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가출처럼 보이는 외출. 여행길에서 나는 돈도 잃어버리고, 무차별적인(?) 친절을 베풀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불편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수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수모도 겪는다. 하지만 길 위에서 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내면과 만나게 되고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된다. 나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고, 어떤 아픔이 있었고, 어떻게 치유하게 되는 것일까? 한 소년의 여정을 따라 내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비련의 주인공인양 나 자신을 아프게 만들고, 아픈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을 만든 것과 실제로 아픈 것은 많이 다르다. 아직 여리기 만한 소년의 마음은 상처 입을 대로 입었고, 누구도 그 상처를 함께 치유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상처만이 최고의 아픔이 되고, 누가 더 심하게 망가지는지 내기라도 하듯 서로의 상처에 무심하기만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부서져 버린 지 오래다. 이렇게 암울하고 아픈 소설이 있을까? 결코 어렵지 않은 글이고, 결코 어렵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술술 읽히는 글 속에서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여기서 이렇게 대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작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소년이 겪게 된 현실은 지극히 암담하고 아프다. 


놓칠 수 없는 기회. 그런 건 없다. 어떤 엄청난 기회가 인생의 문턱에 찾아왔다고 해도 우리는 한참이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그것이 기회였음을 깨닫는다. 기회라는 건 분석된 결과에 지나지 않으니까. (중략) 기회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진짜 인지 가짜인지는 모든 것이 끝난 뒤에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그때 그것이 기회였지.. 하고 (62)

소년에게도 기회가 왔을까? 암담한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그런 기회는 없었다. 축축하고 눅눅한 세균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눅진함이 온몸에 달라붙어 기분조차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소년은 무슨 희망으로 살아갔을까? 엄마의 죽음이 소년과 형의 인생을 매몰차게 갈라놓았다. 형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방법으로, 소년은 공부를 더 악착같이 하는 방법으로... 하지만 소년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힘들어한다. 일말의 아픔이나 상처를 사유할 시간 없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로봇이 되어가는 그곳에서 소년은 고통을 치유할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나는 소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처음에는 목적지 없는 여행이 가출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년의 여행은 결코 기분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비가 내리고 있구나.” “그래요 지겹게 오고 있어요.” “그칠 것 같지 않네요.” “곧 그칠 거야.”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까.” (249)

소년은 그곳 어머니의 고향에서 그간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이제 이 세상에 남은 사람이라곤 아버지와 소년뿐. 소년은 용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와 형에게. 그렇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서야 살아갈 힘이 생겼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은 결국 혼자인 것 인가보다. 곁에서 아무리 따스하게 말해주고, 그 상처를 보듬어 주려고 해도 당사자인 본인의 마음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혼자가 좋다. 이렇게 나만의 심연 속으로 똬리를 틀게 마련이다. 결국 상처에서 벗어나고, 인생 본연의 궤도 안으로 입성하려면 아플 만큼 아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가족 중 한 사람의 죽음을 보는 건 더더욱. 더구나 자연스럽게 죽음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고사의 경우는 남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커다란 슬픔 속에서 빠져나와 인생 궤도에 무사히 입성하는 것. 그것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라는 것, 살면서 한바탕의 소나기는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 비는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고 싶다. 햇살 좋은 따스함만 가득한 인생은 이 세상엔 없다. 슬프지만 대 놓고 울지 않게 만든 작가의 솜씨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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