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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 날개를 달자 Nov 22. 2022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저 달과 별이 시어머니와 나 같다

나는 참 늦복 터졌다. (이은영)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껄끄러운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아닐까? 시어머니 입장에서 며느리는 내 소중한 아들을 빼앗아간 나쁜 년이고,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독한 어른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남편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여자를 원했다고 한다. (울 시어머님은 일찍 혼자되셨다. 그래서 남편에게 울 시어머니는 안타깝고 아픈, 그래서 꼭 효도를 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조건이 아마 35살이 되도록 장가가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나타(?) 났고, 시어른과 산다는 것이 어떤 고난(?)을 야기하는지 몰랐던 나는 그게 무슨 대수냐 싶어 결혼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제삼자가 아무리 좋은 어른이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받는(?) 그분들도, 그놈의 ‘시’ 자가 붙으면 영락없는 ‘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머님과 나는 사는 층이 달라 살림을 같지 하지 않는다는 정도? 처음 3년은 매일을 죽을 것처럼 살았고, 다음 3년은 모든 것을 내려놨으며, 이후 3년은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결혼해 나는 지금까지 위아래층으로 시어른과 함께 산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큼 살았으니 분가해도 되지 않아?’ 이 말에 내 대답은 ‘노’다. 나는 분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머니 스타일에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응한 나는, 이제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다. 맏며느리인 내가 제사며 명절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그런 나를 믿고 맡겨주시는 어머님 덕분에 힘들어도 웃으며 일할 수 있다. 내가 그리고 어머님이 서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했기 때문 아닐까? 물론 가끔은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시기도 하지만 그 정도쯤은 애교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고 마음 쓰다 보면 피곤해서 맏며느리를 할 수 없고 같이 살 수도 없다. 때론 어머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며느리에게 하는 소심한(?) 말의 복수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어머님의 인생을 조용히 반추하다 보면 시어머니, 며느리 입장이 아니라 여자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관계지만 이해하고자 맘먹으면 못할 것도 없는 사이. 바로 고부관계.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나와 우리 어머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 남자를 만나 자식을 낳고 그의 가족이 되었다는 이유로 여자들은 시댁 식구들에게 무조건 잘해야 한다나는 왜 무조건 잘해야 하는가나는 왜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가나는 왜 내 생각을 말하면 안 되는가? (133) 우리 집의 고부 관계가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나도 뛰쳐나가겠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분가하겠다고 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시댁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으시고, 내 생각을 말해도 화내지 않으신다. 아니 이제는 특별히 뭔가를 시키시거나 화 낼 일도 별로 없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바쁜. ^^


울 시어머님은 아직까지 일을 하시는데 만약 그 일을 그만두고 나면 얼마나 적적하실까? 그때 나도 울 어머님께 뭔가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책에선 글을 쓰고 수를 놓았다.) 엄마한테는 쉽게 할 수 있는 말들을 시어머님께는 할 수 있을지. 그건 자신이 없지만, 지금의 관계가 그때도 지속되면 좋겠다. 오늘은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저 달과 별이 어머니와 나 같다어머니가 달이 되고 내가 별이 되어내가 달이 되고 어머니가 별이 되어 우리는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오래오래 그렇게 살았다. (139)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게 바로 시댁 어른을 대하는 나와 같다. 더 시간이 지나 '가깝지도 멀지도'라는 감정 자체가 없어지면 그때 진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 지금보다 더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에게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만큼의 거리는 유지하고 싶다. 그게 내가 울 어머님을 공경할 수 있고, 어렵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시어머님은 늙어갈 것이다. 가끔은 장난처럼 나보다 더 건강하시네, 하지만 시간은 그 모든 걸 뛰어넘기도 하니. 살아계신 동안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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