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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라봉 Mar 13. 2024

[가] 엄마가 되기 전 무슨 일을 했을까?

결혼+1년, 출산 -2년 전 갑자기 취직한 이야기

'육아독립군 부부의 워킹맘'으로서 맞벌이 육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출산과 임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육아 전우가 된 남편과는 2017년 4월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었다. 나는 결혼한 후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전업주부를 하려고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전 직장의 극심한 가스 라이팅 환경에서 극한의 노동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혼을 준비하기 위함이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니 더 이상 다닐 이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어떤 경력인지 정의하기도 어려울 만큼 3년 동안 했던 일은 정말 많은데 무언가 '완성했다!' 할 프로젝트는 손에 꼽았던 것도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퇴사 후 6개월 정도의 신혼생활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냈고 그 이후엔 취업하고자 나름대로 이력서를 쓰고 몇 번의 면접을 보며 지낸 시기였다. 다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갑자기 온 대학교 동기의 연락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공간 디자이너 찾고 있는데!! 지금 일 쉬고 있다며!?!?!" 졸업하고 몇 년 동안 볼 일이 없던 동기가 전시 공간 디자이너를 찾는다며 연락이 왔다. 간단히 어떤 프로젝트인지 확인을 하고 급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연락이 온 후 이틀 만에 면접이 성사되었다.


면접 시간은 오전 11시였는데, 10시 30분쯤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 있다가 10시 50분에 회사 문 앞에서 '띵동'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건 불이 켜지지 않은 확 트인 사무공간에 여러 물건들과 책이 뒤엉켜 있었고, 문 옆에 있는 소파에서 잠들다 나의 벨소리에 잠에서 깬 듯한 남자 직원이 보였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오늘 11시 면접 일정으로 왔어요"


그분은 내게 "회의실에서 기다리세요." 말을 하고 시계를 보고 이제 일을 해야겠다 싶었는지 소파를 정리하고 있었다. 회의실도 유리 파티션으로 구획되어 있어 입구에 누가 오는지, 어떤 직원이 출근하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분 차이로 11시쯤 되니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면접이라니... 면접 준비를 많이 못했다. 안 했다. 다만 그간 면접을 여럿 본 경험으로 자기소개라든지 전공 관련 경험에 대한 답변 등은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소개할지 머릿속에 있었다. 다만 내가 숙지하지 못했던 것은 회사의 정보였고, 궁금한 것은 내가 참여할 프로젝트의 정보였다. 보통은 면접에 임할 때, 회사의 정보까지 빠삭하게 리서치하고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할지 상상하며 준비하는데, 작은 회사여서인지 정보가 많지 않았다. 이야기하면서 분위기를 볼 수 있겠거니 하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에 응했다.


면접은 2:1로, 대표와 디자인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논의한 후 같이 일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업무 담당자를 불러 투입될 프로젝트 자료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자체 용역 사업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된 상황에서 기획을 구체화하고 실시설계를 하고 실제 공간 구축을 해야 하는 프로세스를 앞두고 있었다. '실행'단계 앞서 그 업무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료를 함께 본 후, 대표는 이 프로젝트 제안 내용과 공간 디자인 부분이 어떤지 나에게 의견을 물었고, 처음 본 제안서였기에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나름 답변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공유 및 논의 후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다. 면접 당일인 오늘은 금요일인데... 바로 3일 뒤였다. 이어서 연봉이야기를 했다. 대표는 이력서에 적힌 전 회사의 연봉만큼은 주기 어렵다며 회사 측 금액을 제시했다. 내가 받았던 직전 연봉의 -600만 원 금액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진행될 기간인 3개월 계약 조건이었다. 대표는 나에게 하루 생각해 보고 다음날 통화로 결정해주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었고, 그렇게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전화를 하여 근무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연봉을 조정을 해줄 후 있을지 문의했고, 살짝 더 받을 수 있었다. 연봉이 줄어든 것과 계약직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동안 면접 이력서 넣었던 곳이 높은 연봉은 아니었기도 하고,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출근 제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커리어 측면에서, 공간 기획과 문화콘텐츠 기획, 3D 공간 시안 도출, 도면 설계만 진행하고 실제 공간은 오픈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갈증이 있었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 물론 면접 중 파악한 나의 예상 업무는, 실시 설계와 시공 감리와 같이 현장업무가 포함되어 있어서 공간을 실제 구축해 본 경험은 없다고 사실대로 말했었다. 시공 경력은 없지만 그럼에도 '공간디자이너'로 같이 일을 하자고 오퍼를 준 것이니 '해보지 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출근했다. 사실 어떤 미래가 나를 기다리는 줄은 모르고 우선은 나의 커리어에서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충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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