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국제 캠핑장
강한 추위가 지나간 직후 인천 송도 국제 캠핑장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나왔다. 최저는 영하 2도, 최고는 영상 3도의 날씨는 최근 1주일 동안 있었던 강추위 탓인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바람도 없었는데 미세먼지까지 없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운이 좋았던 건 아니었고 저녁부터 어김없이 공기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 겨울의 캠프사이트는 처음이다. 작년 봄에 시작해서 아직 한 번도 겨울을 겪어보지 못한 비기너 가족에게,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 혜원이와 어린 딸이 있는 우리 가족에게 겨울 캠핑은 진입 장벽이 높았다. 그래서 겨울 한동안 멀리 있는 캠프 사이트는 계획하지 않았고 접근성 좋은 지역 캠프사이트를 예약한 후, 밤은 나 혼자 보내기로 했다. 어쨌든 나오니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우리 딸은 두 달 후면 48개월이 된다.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들 정도로 많이 컸다. 그래도 아직 아기라 늘 집에선 내복을 입고 지낸다. 언제나 내복차림으로 실내에 있는 딸을 보며 이 모습은 언제까지일까, 그리고 내복만 입던 아기의 모습은 금방 없어지고 훌쩍 크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도 혜원이도 딸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아기 또는 어린아이로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요즘이다.
혜원이와 딸은 계획대로 저녁식사 후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아 시간 보낼 준비를 했다. 먼저 가족들이 사용했던 짐을 정리했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요즘은 굉장히 건조하기 때문에 장작에 불을 붙이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불이 붙은 장작은 쉽게 꺼지지 않고 새로 넣은 장작도 금세 불이 붙는다. 장작에 신경 많이 쓸 필요가 없어 그 시간만큼 다른데 집중할 수 있다.
춥지 않은 날씨 덕에 쉘터 문을 열어놓고 모닥불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캠프사이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밤에는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숲이나 산속에서 모닥불을 펴고 보내는 시간도 매력이 있는데, 이곳은 바다너머 멀리서 불을 밝히고 있는 LNG 기지가 있어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책을 읽다, 오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가족 생각, 일 생각 등을 반복해서 했다. 캠프사이트에서의 저녁 루틴이다. 다른 곳보다 캠핑 중에 어떤 생각들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째는 시각적인 부분인데, 모닥불 또는 랜턴이 만들어 주는 편안한 밝기와 색깔이다. 다른 곳에 있는 형광등보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조명이 좋다. 두 번째 이유는 청각적인 부분이다. 모닥불 타는 소리, 가스랜턴에서 연로가 공급되는 소리, 캠프사이트의 사람들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가위바위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흰색 안 밟기, 간지럽히기 같은 아무것도 아닌 놀이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처럼 웃어주는 날이 얼마나 오래갈까. 나와 혜원이에게 함께 놀자고, 어디 가자고, 뭐 하고 싶다고 하는 날이 얼마나 될까. 주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한다. 어떻게 보면 슬프기도 하고 또 답이 없는 주제다. 최선을 다해 이 순간들을 함께하고 즐기며,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힘이 될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딸이 어떤 아이가 되고, 어떤 청소년이 되고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혜원이가 어떤 아빠와 엄마가 될지도 늘 궁금하다. 딸이 늘 본인의 영역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할 수 있는 아빠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딸이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언제든 자신에겐 늘 기댈 수 있고 응원해 주는 아빠와 엄마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장작을 모두 태우고 쉘터 문을 닫고 들어와 앉았다. 문닫힌 쉘터 안에서 가스랜턴이 주는 은은함이 있는 순간도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다. 책을 조금 더 읽다 사진정리를 마저 했다. 사진들을 저장할 수 있는 스토리지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찍은 사진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숙제 중 하나이다. 우선 먼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패드로 사진을 옮기기 전에 카메라에서 먼저 지울 사진들을 골라낸다. 덕분에 수정하고 클라우드에 아카이브해야 하는 전체 모수가 과거보다 많이 줄긴 했다. 다만 어떤 사진을 남기고 어떤 사진을 지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또 다른 숙제로 아직 명확한 기준이 없어 매번 다르게 접근 중이라 아직 효율성은 떨어진다. 피곤해서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어있었고,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캠프사이트에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반합이 눈에 들어왔다. 반합은 작년에 오직 라면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구매했고,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라면을 좋아했다. 자주 먹진 않았지만 좋아하는 식품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라면을 먹은 날은 아마도 몇 달 전인 것 같다. 아침에 뭔가를 먹을 계획은 없었다. 전처럼 커피를 내려 마신 후 짐정리하다 보면 혜원이와 딸이 오고 짐을 싣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아침에 눈에 가장 먼저 반합이 들어온 덕분에 오랜만에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맛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준비했다. 얼마 전 부산 여행을 다녀왔고, 영도에 있던 인상 깊던 카페에서 원두를 사 왔다. 카페가 마음에 들어 크게 망설이지 않고 원두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내가 마신 커피에 사용된 원두는 품절이었다. 거의 비슷한 원두라는 설명에 다른 원두를 구매했다. 전에 제주에서 맘에 들었던 카페에서 사 온 원두가 있었는데 그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그 카페 생각이 났다. 같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며 영도의 원두를 사용해 커피를 마신 지 좀 되었는데, 영도생각이 잘 난다. 사실 아직도 커피 맛은 잘 모른다. 원두가 주는 맛 또는 향이 그 카페들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기 보단, 단순히 그곳에서 사 온 원두라는 사실이 그곳들을 떠올리게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커피를 준비하고 마시는 과정은 아직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