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파슬로우
최고기온이 28도에 가까웠던 더운 4월 말이었다. 다행히 아침저녁은 10도 정도로 선선했다. 우리 가족은 원주에 있는 캄파슬로우를 찾았고 오랜만에 캠프사이트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캄파슬로우는 날이 풀리면 먼저 가보고 싶은 캠프 사이트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보낼 시간을 기대했고, 실제로 이곳에서의 시간은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했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쉘터를 피칭하고 사이트를 정리하는 동안 혜원이와 딸은 나무학교에서 예약해 둔 수업을 들었다. 아쉽게도 우리 딸은 아직 어려 나무를 직접 카빙 할 수 있는 클래스는 들을 수 없었지만, 엄마와 함께 나무를 간단히 손질하고 색칠할 수 있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캠프사이트는 모든 곳이 자연 친화적인데, 나무학교가 있는 곳이 특히 그랬다. 건물들은 자연에 녹아드는 구조로 안과 밖이 분리되지 않아 실내에서도 숲에 있는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사이트 준비를 마치고 나무학교에 내려가 멀리서 혜원이와 딸을 바라봤다.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한 후 다시 나무를 꾸미는데 집중하는 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이트에 올라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캠프사이트에 올 때마다 심심할 수 있는 딸을 위해 색칠 놀이, 색종이 등을 챙겨 온다. 딸은 요즘은 종이 접기에 빠져있다. 오기 전 딸을 놀라게 해 주기 위해 몰래 유튜브에서 30초 이상 날 수 있는 종이비행기 접는 영상을 봤고 기억을 되살려 비행기를 접었다. 접는 법이 의외로 간단했기 때문에 이 단순한 비행기가 30초를 넘길 수 있을까 했는데, 5초를 못나는 걸 보니 손재주가 없긴 없나 보다. 오히려 영상도 보지 않고 접은 혜원이 비행기가 꽤 잘 날았다. 그리고는 딸이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딱지 접는 법을 모두 따라 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질 때쯤 랜턴에 불을 켜고 혜원이와 딸이 나무학교에서 만들어온 장난감들을 파일드라이버에 함께 걸어 두었다. 캠핑과 꽤 잘 어울려 앞으로도 가지고 다니며 걸어놓을 예정이다. 해가지며 더위가 빠르게 식었으며 쌀쌀한 밤이 찾아왔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캠핑을 처음 시작한 작년 4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도 지금과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낮기온이 이렇게 높진 않았다. 예보를 보니 우리가 나온 날이 유난히 더웠고 기온은 다시 내려가긴 하는 것 같다. 이대로 쭉 더워진다면 올해 캠핑은 6월까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캠프 사이트에선 늘 먼저 자고 싶다는 말을 하는 딸은 이날도 먼저 자겠다며 잠에 들었다. 감기기운이 있던 혜원이와 나는 밖에서 모닥불 앞에 더 있지 않고 쉘터 안에 들어와 랜턴을 켜고 이야기를 했다. 추위에 약한 혜원이와 딸이 지내기엔 밤기온 10도는 아직 낮았기에, 난로도 폈다. 요즘 우리 이야기, 딸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크고 작은 계획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흘렀고 늦지 않게 잠에 들었다.
가족 모두 일찍 일어났다. 딸이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모두를 깨웠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기대하는 일이 있으면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캠핑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침은 밖에 있어도 춥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기온이었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돌아다니며 자는 딸 덕분에 캠프사이트에선 늘 편히 못 자는 편이라 나와 혜원이는 피곤했다. 하지만 숲의 아침 공기가 주는 신선한 느낌 덕분에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커피를 준비했다. 캠프사이트에서 커피를 준비하는 과정은 재밌기 때문에 기대하는 시간 중 하나다. 옆 사이트에 딸보다 세 살 많은 꼬마 숙녀가 있었는데, 수줍음이 많았다. 우리 딸도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꼭 딸의 머지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둘은 가까워지고 싶어 했는데, 수줍음 덕분에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이튿날이 돼서야 인사하고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다. 마음이 따뜻했던 옆사이트의 꼬마숙녀의 가족은 캄파슬로우에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가꾸고 계셨고, 흔쾌히 농장을 소개해 주시며 우리 딸에게 밭을 일구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감사한 경험이었다.
나와 혜원이는 딸이 자연에 대한 고마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자연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놀이들을 알아가며 성장했으면 한다. 우들라이프의 방향성과 비슷하다. 우들라이프의 철학은 딸뿐만 아니라 혜원이와 나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둘째 날 우들라이프 마켓이 열렸다. 마켓에서 여러 종류의 달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 처음 보는 여러 가지 색깔의 달걀을 샀고, 느낌이 좋은 동화책도 몇 권 살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따뜻하고 포근한 마켓이었다.
딸 얼굴이 까매졌다. 얼굴이 까매질 때마다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서, 잘 놀고 있는 것 같아서, 아직 어린아이 같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