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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Sep 09. 2024

혼자 서울 여기저기

 혜원이는 일 년에 한 번 딸을 데리고 장모님과 여름휴가를 보낸다. 올해는 휴가가 3일이었고, 혜원이와 딸이 없는 동안 나도 하루 회사를 안 가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유난히 더운 8월이었지만, 서울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역으로 향했고, 그라운드 시소 센트럴에 진행 중인 사진전을 관람했다. 뉴욕의 오래된 건축물들에서 발견되는 차갑고 따뜻한 기하학적 구조들과 패턴들이 매력적인 이경준 작가님의 사진전은 좋은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진은 어떻게 찍는 것인지 늘 궁금하다. 사진집, 사진전, 이론에 대한 학습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멋진 사진 몇 장 정도는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어렵다.  





 광화문 국밥은 꽤 오래전에 가봐야지 하며 저장해 둔 곳이다. 이곳이 주는 느낌은 익숙하기도 했고 새롭기도 했다. 근처에 올일이 있다면 언제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조금 이른 점심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번 혼자 보내는 시간에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3인칭으로 바라보는 평일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바쁜 출퇴근길, 점심시간, 휴식시간 등을 그 안에 속하지 않고 바라보는 느낌을 기대했다. 광화문 국밥에 식사하러 온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직장인으로 보였고, 덕분에 기대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평일 오전, 점심 즘이 주는 느낌은 특별하다. 정신없어야 할 도시의 어색하고 잔잔한 바이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식사한 후 서촌으로 이동해 커피를 마시며 가져온 책을 읽었다.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은 사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좋은 책으로 많이 소개되어 읽게 되었고, 꽤 오랫동안 읽고 있다.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평창동으로 이동했다.





 서울 시립 아카이브에는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멋진 공간이 있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준비 중인 자격증 공부를 했다. 공부하던 학생들, 작업하던 사람들, 사진 찍던 어르신들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이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직장생활 중 많은 시간을 프로젝트를 하며 보냈다. 프로젝트들은 쉬울 때도 어려울 때도 있었고, 즐거울 때도 지루할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코어 한 방법론 또는 스킬을 익힐 수 있게 해 준 프로젝트들은 모두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몇몇은 당시엔 즐거운지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생각하니 즐거웠다고 기억되는 것도 있었다. 항상 생각해 온 것은, 모든 과정들이 최선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상황에 더 적합한 방법론이 있었을 것이고, 그 방법론들을 알고 있었다면 더 나은 과정 또는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작한 공부인데,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할때즘, 밖에 나와 바람을 쐬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도, 걷고 싶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과 모르는 동네에 와서 든 호기심 때문이었다. 언덕을 올라 여기저기 골목을 걸었다. 낯선 동네를 걷는 기분이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아직 퇴근시간이 안되어 평일 낮 바이브는 끝나지 않았다. 이 기분을 좀 더 유지하기 위해 한적한 동네를 좀 더 걸었다. 꽤 먼 거리였는데도 오늘하루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도 하고, 혜원이와 딸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상상도 하며 걷다 돌아왔다. 공부를 마무리하고 저녁식사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종로에 근무하는 친구랑 함께 식사할까 하다가, 혼자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했다.





 서촌에 유명한 치킨집을 찾아 혼자 치킨을 먹으며 맥주 한잔 했다. 치킨집에 혼자 오니 조금 어색했다. 오늘 하루 들른 곳들, 지나친 장면들, 들었던 생각들을 다시 꺼냈다.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던 치킨은 다 먹었고, 맥주도 한잔 더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치킨집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할 때 즘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평일 느낌은 끝나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저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하철 노선을 검색했다. 퇴근길 지하철이 얼마만인지, 너무 오래되어 조금은 설레기까지 했다.





 퇴근시간 무렵 지하철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약속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이 생긴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해하다 다시 책을 읽는다.


 지상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노선은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을 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들은 왜인지 모르게 어릴 때를 생각나게 하며 따뜻한 느낌을 많이 준다. 할머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기억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와 보낸 시간들, 큰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따뜻했던 어릴 적의 순간들은 내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혜원이와 딸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순간들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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