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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철 Dec 02. 2024

'아가씨' (박찬욱, 2016)


나는 내 손에 피를 내면서 사랑하는 이의 상처를 보다듬을 수 있을까


아가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숙희'가 '히데코'가 낭독회에 읽던 책들을 알게되고 그 책들을 갈기갈기 찢는 장면이다. 히데코는 어릴 때부터 이모부이자 후견인인 '코우즈 노리야키'에 의해 야설을 읽는 훈련을 받는다. 단어, 호흡, 묘사 등을 통해 야설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여 집에 방문하는 귀족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책을 비싸게 팔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심한 고문과 함께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훈련의 결과로 히데코는 이모를 대신하여 훌륭한 낭독자가 된다. 


숙희는 히데코와 사랑에 빠지고 '후지와라 백작'을 속여 일본으로 도망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숙희는 히데코의 이모부가 히데코에게 한 짓을 알게된다. 서재에서 음란한 글과 그림이 가득한 음란소설을 보게 된 것이다. 숙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꺼내 서재에 있는 책을 갈기갈기 찢는다. 장식장을 깨고 더러운 그림에 물감을 부어버린다. 더러운 책들을 물 속에 집어놓고 다시는 볼 수 없도록 하나씩 발로 짖밟는다. 그 과정에서 숙희는 칼에 손을 베어서 피를 흘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처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히데코에게 음란하고 더러운 일을 시킨 코우즈 노리야키에 대해 분노할 뿐이다. 그리고 히데코는 자신의 상처에 대해 본인보다 더 아파하고 분노하는 숙희를 보고 처음으로 타인의 사랑을 느낀다.


나는 사랑하는 이의 상처를 진짜로 있을까. 사랑하는 이의 상처를 알게 됐을 고개 돌리지 않고 제대로 직시할 있을까.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해 내 상처만큼, 아니 그보다 더 분노하고 보다듬을 있을까. 쉽게 말할 없는 일이다. 타인의 상처를 진짜로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고 그것을 보다듬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힘든 일이라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사랑하는 이의 상처를 보고 뒷걸음질 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그녀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든 것을 껴앉는 일이니까. 그 일을 멈추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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