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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라디오 Jay Radio Oct 19. 2020

[Radio]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2)

오늘도 다행인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코끼리 공장의 성실한 노동자입니다. 


아버지에게 성실한 노동은  신념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훌륭한 코끼리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종교와 같은 신념입니다. 


그런 아버지에게도 그의 신념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십여 년 전 즈음 코끼리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을 뻔했지만, 다행히도 코끼리를 찾는 수요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위기는 기회였고(아버지의 성실함으로)  이십 년 만에 처음 '라인(Line)  매니저(Manager)'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에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가끔 본사에서 찾아오는 파트장이라는 사람의 방문 일정을 체크하는 정도의 일이 추가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성실한 아버지에게는 아무튼 코끼리가 잘 팔리지 않았던 그 시기가 운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도 그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없은 좋은 기회였다고.


작년 가을 본사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평생을 일해온 성실한 노동자의 절반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기회로 코끼리 공장에는 'KP134'라는 작업로봇을 10대 들어왔습니다..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이 휴머노이드 로봇은 400명의 성실한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들의 일을 대체하였습니다. 


멋진 효율입니다!


아버지는 본사에서 파트장이 찾아올 때마다 'KP134'의 뒷목 쪽에 어떤 '칩'같은걸 바꿔놓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파트장님 이번에도 멋진 일인가요??"


파트장은 왜인지 모르지만 이런 맥락 없는 아버지의 질문에도 짧게 대답해주곤 했습니다. 말해줘도 모를 테니 상관없다는 듯이.


"그다지.. 뭐..."


'휴. 그다지 라면  걸음걸이 교정 정도인가?' 아버지는 속으로 그 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말인가에 파트장이 '훌륭한(awesome)!'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KP134'가 일순간에 지게차를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었는데, 그 훌륭함 덕분에 아버지의 성실한 동료 15명은 일자리를 잃었었습니다. 


그때쯤부터 아버지에게 '멋진', '훌륭란', '지금까지 본적 없는'등으로 말하는 것은 큰일이고, '적당한', '일단은', '그냥 그런'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행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코끼리 공장의 성실한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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