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숭고한 행위
멸치볶음을 집어먹던 막내가 물었다.
“엄마 멸치는 물에 살아? “
“응, 원래는 물에 살지.”
“그런데 왜 여기 있어?”
그렇다. 왜 멸치는 살던 곳을 두고 밥상 위에 올라와 있을까? 어떻게 설명해줄까 고민하며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이 멸치는 바다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잡아와서 지금은 죽은 거야.”
큰아이가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동생에게 설명했다.
옆에 놓인 돼지갈비로 향하던 큰 아이의 젓가락이 멈칫.
“이 고기도 죽은 걸 우리가 먹는 거야. “
한 점 집어 올리던 젓가락을 슬며시 거둔다.
우리의 시선이 남은 반찬들에게 향했다.
이 시금치도 죽은 거지.
그 콜라비도 죽어서 초절임 당한 거.
김치도 원래는 배추로 살아있었던 거겠지.
계란은 병아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밥상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모두 살아있었던 거였네. “
마주친 아이들의 눈 속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우리의 밥상은 죽음으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매끼 이뤄지는 우리의 식사는,
살아있었던 그들의 생명을 섭취하며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숭고한 행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