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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Dec 09. 2023

먹고 사는 일3




지난주 목요일 출근길에 임대주택 신청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동네 행정복지 센터에 방문했다. 나는 번호표를 뽑기 전에 출력한 서류들이 맞게 들어있는지 목록을 확인하고, 담당자가 다시 발급받아 오라고 했던 청약저축 서류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전날에 청약저축 납입인정 회차 증명서에 관리 번호가 빠져 있어서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바쁜 출근길에 세 번째 방문만은 피하고 싶었다.


일자로 길게 이어져 있는 창구에 주로 나이 든 어르신들이 복지혜택 신청을 위해 방문해 계셨다. 담당자들은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우렁찬 목소리로 같은 설명을 반복하다가 급기야 자녀분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무척 분주하고 소란한 광경을 멀뚱히 보며 오전의 행정복지센터는 이렇구나 생각하다가 나도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담당자는 어제의 나를 기억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왠지 떨리는 마음으로 서류를 확인하는 담당자 앞에 서 있는데 그가 어르신들에게 하듯 나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차상위는 아니시죠?”

“네.”

“일인 가구시고요?”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등본 같은 서류를 떼는 것 외에 나라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음에도 매번 미세하게 혜택의 자격에서 제외되었던 탓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담당자는 내 신분증을 복사하고 서류를 맞게 잘 챙겨왔다고 칭찬해 준 후, 생계 활동을 하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내가 낸 서류 하나를 내밀면서 항목에 체크하고 얼른 무인 민원기에 가서 건강보험 자격 득실 확인서를 떼 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서류를 떼 오자 그가 웃으며 가산점 3점이 추가되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1순위가 아니라서 당첨은 힘드실 거예요. 워낙 경쟁률이 세거든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두 번 걸음 했지만 무사히 서류를 제출한 것과 빠트린 가산점을 챙겨주고 당첨이 안 되어 실망할 것까지 마음 써주는 담당자에게도 감사했다. 운 좋게 당첨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아직은 괜찮다 싶었다. 독립해 나오며 내 몫이 된 얼마간의 돈이 통장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되면 더 좋겠지만…….     


임대주택은 독립 선배 똑똑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일인가구의 경우 십만 원 대의 월세에 제법 괜찮은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종류도 국민임대, 행복주택, 매입임대 등 다양하다. 하지만 자격요건이 꽤 까다롭다. 신혼부부이거나 청년이거나 노인, 혹은 주거급여 수급자가 1순위다. 나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일인가구라 차례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거나 영영 안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제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혼자 살게 되면서 나는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다는 데에 놀라는 중이다. 규모는 적어도 전기세나 가스비처럼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지출 항목이 있고, 기본 식비와 의복비, 교통비에 월세와 관리비를 더하면 백오십 남짓한 내 월급에서 오히려 조금씩 마이너스가 된다. 글쓰기 공부를 하겠다고 근무 시간을 줄인 탓이긴 하지만 통장에서 조금씩 줄어드는 잔액을 보면 조바심이 안 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예금으로 묶어두었던 돈 중 일부를 헐었다.

조바심이 날 때가 또 있다. 이따금 가까이 사는 부모님 집에 갈 때다. 부모님은 내가 집에 들를 때마다 월급은 얼마며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러면 나는 최선을 다해 월급을 부풀린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기본급과 이런저런 수당에 상여금과 복지포인트까지 다 그러모아 열두 달로 나눈 금액을 말하는 식이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숨을 쉰다. 그러면 짐짓 명랑하게, 아니 진심으로 기쁘게 주장한다.

 “엄마, 나 그래도 지금이 너무 행복해. 이제야 제대로 사는 것 같다니까.”

역시나 엄마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고 미심쩍을 뿐이다. 엄마에게 행복은 남편이 있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자식을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나이 들어서는 손주들 재롱을 보며 용돈이라도 한두 푼 쥐여 줄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그 기준에 한참 미달인 모양이다. 그래도 어찌하나 내 행복의 기준은 엄마와 다른걸.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지만 가족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사는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니까 그들이 결국 나로 인해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나를 잘 먹여 살리기 위해 고심한다.


* 매거진에 연재했던 글은 책 <나의 경우엔 이혼이라기보다 독립> 으로 출판하였기에 일부만 남기고 발행 취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aladin.kr/p/hQF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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