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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Jan 30. 2024

마치는 글

혼자라서 혼자가 아닌




오피스텔로 짐을 모두 옮기고 처음으로 혼자 자던 날이 생각난다. 침대와 책장만 덜렁 들여놓은 방 이쪽저쪽에 옷가방과 책꾸러미, 미처 풀지 못한 박스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투성이였다. 문득 배가 고팠다. 이제 살림은 안 하기로 했으므로 나는 배달앱으로 찜닭을 주문했다. 독립생활의 첫끼이니만큼 든든하고 푸짐한 음식을 먹어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기롭게 주문한 찜닭은 한 조각만 먹고 도로 뚜껑을 덮었다. 역시 고기는 나에게 무리였다. 자축을 위한 캔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벽에 등을 기댔다. 아직 커튼을 달지 않은 작은 창 너머 건너편 오피스텔의 빼곡한 창과 불빛들이 보였다. 이제 저 풍경을 매일 보겠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뭉클해졌고 조금 쓸쓸한 기분도 들었다. 문밖은 고요했고 더는 나를 찾는 사람이 없는 밤이었다.


그 후로 만 이 년간 책상에 앉을 때마다 창과 마주했다. 맑고 조용한 평일 밤이면 건너편 오피스텔의 창이 마주 보였고 주말에는 일 층 상가의 고깃집과 맥줏집의 네온 조명이 내려다보였다. 비가 내리는 날은 넓은 공영주차장에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 빛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훤히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책상 앞에 앉은 내 얼굴이었다. 노트북의 빈 화면을 막막하게 들여다보다가, 책을 읽고 일기를 쓰다가, 혹은 엎드려 울다가도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창이 검은 반사판처럼 나를 비추었다.

"봐, 넌 여기 있어. 여기 이렇게 분명히."

창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적막한 여섯 평 오피스텔 안에서 나는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조심스럽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발견해 나갔다. 그 순간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싶어 남긴 사진과 글이 제법 되었다. 혼자서만 간직하려던 이야기들이었는데 새집으로 이사하고나니 불쑥 용기가 생겨 글쓰기 모임에 내놓고 브런치에도 하나씩 올렸다. 고맙게도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애정과 격려를 담아 공감해 주었고 덕분에 더욱 용기백배하여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었다. 그러고나니 유독 가팔랐던 생의  한 고개를 넘어 온 기분이다.


"모든 슴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독립은 했지만 과거의 우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어쩌면 이제 조금은 이야기할 힘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씩씩해져야겠다고 다짐했던 어느 밤의 일이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나는 또다시 이 힘을 밑천 삼아 앞으로의 나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주변을 돌보며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우선은 가장 가까운 나의 자매들,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한편으론 영 낯선 사람같은 그들에대해 알아볼 생각이다. 그 과정의 이야기는 혼자만 볼 수 있는 곳에 쌓지 않고 나의 가족들, 자매들, 그리고 어쩌면 시시한 내 이야기가 필요할 지도 모를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자리를 조금 옮겨 새롭게 연재하려고 한다. 글을 올릴때마다 창피하고 부대끼고 후회할 확률이 99.9%지만 실패하며 자라는 게 삶이라 믿으며 꾸준히 해 보아야겠다.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브런치북 연재로 다시 만나요^^


* 매거진에 연재했던 글은 책 <나의 경우엔 이혼이라기보다 독립> 으로 출간하였기에 일부만 남기고 발행 취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4609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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