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황금빛 노을의 암막을 치고 악마의 숨결처럼 황홀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찾아오곤 한다. 분에 넘치는 유혹과 욕망의 끝엔 반듯이 그가 기다리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나의 불행을 이미 예측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심코 지나쳤고 애써 무시했으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추측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듯 서서히 외로움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찾아오는 것처럼 불행은 대비하지 못한 이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얻어내고야 마는 것이었다.
달달했던 과거의 일에만 매달리는 사이 나의 일상은 점점 부패되어 썩은 내음만 가득해졌다.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으면 삶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모든 것에 지쳐갔고 나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창틀에 기대 망상만을 탐닉했던 나는, 그러던 어느 날,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 '쿠팡물류센터'의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홀로 밤을 새우는 달빛의 처절함으로 일 년을 다녔다.
8월 하순 늦여름 주간조로 입사한 나는 12월부터는 오후조로 근무를 변경했다. 오후조의 근무 시간은 18시부터 04시까지 지만 40~50만 원 정도를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격한 등산을 즐겨해서 60킬로 초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던 나는 오후조로 변경 후 2개월 만에 8킬로나 빠졌다. 많은 동료들이 이 보단 조금 적지만 대부분 체중 감량을 경험한다. 아마도 활동량에 비해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무의미하게 출근해서 9시간 내내 반복되는 일에 지쳐갔지만 삶의 일부분을 내주는 대신 일정의 '돈'을 받는 것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순전히 생애를 담보로 근근한 식욕을 채워가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 된 느낌이었다.
일하는 동안 많은 상상이 반복되었다. 주로 옛적의 것이었다. 그렇다. 그때까지도 난 지난 일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디스토피아의 새로운 맛이었다. 패배에 익숙한, 실격당한 자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어야만 했었다.
반년쯤 지났을까? 천천히 주변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호흡으로 순간이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일상을 모른다.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 하루 종일 일해도 '안녕하세요?'가 대화의 전부였으니 나는 그들의 삶을 알 수 없었다.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나는 무던하게 살아가길 원했었다. 탈 없이 적당한 선 안에서 나만의 만족을 만끽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무던하다는 것은 감정에 내성이 생겨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했다. 기쁨도 슬픔도 외로움도 늘상의 일인 듯 무감각이 타인을 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날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로 옷깃이 스쳐갔고 멋쩍은 웃음이 늘어갔다.
점점 평범함이 간절해졌다.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상이 그리워졌다.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고 이제 그만 나를 괴롭히고 싶었다. 일어나질 않을 것에 상상을 더하지 않고 펼쳐진 현실에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 순수하다는 것은 백지의 생각에서 최선의 행동을 따르면 된다. 이기적 정의로움을 버리고 개인적 정의로움을 취하면 그뿐이었다.
그들은 작고 여린 손으로 너무나 큰 짐을 지었지만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최저 시급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이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될지언정 타인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들의 발걸음을 유지하는 그들이었다. 살아가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과거 얄팍한 마케팅과 옅은 지식으로 타인을 유혹했던 나는 그들 앞에서 초라해질 뿐이었다. 몇몇은 한 때의 실수로, 다른 몇몇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곳에 도착했지만 대부분의 끝은 위안의 일상을 얻게 된 듯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기는 하다. 습관적으로 속이고 회피하며 꼼수를 부리는 이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곳은 업보를 해소하는 탈출구와 같았다. 고됨을 기꺼이 감내하며 지난 것들을 곱씹게 하는 해우소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쿠팡물류센터'는 힘든 곳이다. 급여는 최저 임금 수준이다. 매일 땀에 젖어 생활한다. 쉴 곳도 없다. 창문도 시계도 없다. 감금된 느낌으로 9시간 내내 노동의 단내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들에겐 다행일 뿐이다. 더 이상 갈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엔 따뜻한 이들도 많다. 어리지만 성실하고 예의 바른 정규직도 많다. 그래서 쿠팡은 움직이는 것이다. 세상 '선(善)'한 모든 이들의 집합소처럼 서로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쿠팡물류센터는 나아지는 듯하다. 변화의 조짐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더 나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내게 셀러리를 주는 회사니 꼭 발전하면 좋겠다. 부디 '선함'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