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 1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62

by chill십구년생guy


모든 면에서 적당히를
거부하는 나라



글로벌 사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치명적인 독은 다름 아닌 ‘선입견’이다. 내가 가진 좁은 기준을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면, 그 기준에서 1mm만 벗어나도 쉽게 ‘틀렸다’고 단정하게 된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독을 만병통치약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나름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믿었던 내 기준들이, 사실은 그저 ‘익숙함’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꽤 많은 비용이 들었다.


사실 사람은 살아온 환경과 문화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내가 편견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 낯선 풍경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리적으로 떠날 수 없다면, 최소한 열린 마음으로 다른 문화를 배우려는 ‘유연함’이라도 갖춰야 한다.


시장마다 차이는 존재하고, 그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2019년 10월, 1년 만에 다시 찾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나는 그 당연한 진리를 온몸으로 다시 배웠다.



사막 위에 새겨진 ‘근거 있는 확신’



2019년 여름, 나는 해외 파트너십 확장에 집착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씨앗은 뿌려두었지만, 뭔가 판을 뒤흔들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는 갈증이 계속됐다. 이왕이면 큰 시장, 완전히 새로운 판을 벌여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공고 하나가 눈에 꽂혔다. 10월,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중동 최대 규모 게임쇼 ‘게임스콘 2019(Middle East Games Con 2019)’의 한국 공동관 참가사 모집이었다.


순간 1년 전 방문했던 두바이가 떠올랐다. (17화 참고) 끝도 없는 사막 위에 세워진 신기루 같은 도시.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비웃듯 화려하게 솟아오른 마천루를 보며 느꼈던 전율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 중동이다.’ 그곳엔 분명 뭔가 있을 거라는, 근거는 없지만 묵직한 확신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참가사로 선발되었고, 나는 다시 한번 아라비아의 바람을 맞으러 비행기에 올랐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7성급의 위용



목적지는 아부다비였지만, 여정의 시작점은 두바이였다. 두바이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1년 전의 그 압도적인 위용이 나를 반겼다. 번쩍이는 대리석 바닥과 끝없이 이어진 면세점.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게 바로 오일머니의 스케일이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10시간이 넘는 밤 비행으로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오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아부다비행 단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막과 에메랄드빚 바다라는 어색한 조합



이동 중, 두바이가 처음인 참가사들을 배려해 잠시 주메이라 해변에 정차했다. 세계 최초의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을 병풍 삼아 펼쳐진 에메랄드빛 아라비아만. 사진으로 여러 번을 봐도 실제로 마주하는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압도되는 풍경이었다. 잠시 풍경에 취해 숨을 돌린 뒤,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아부다비에 입성했다.



새벽을 깨우는 아잔(Azhan)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공식 일정이 몰아쳤다. 행사장 사전 점검을 위해 아부다비 국립 전시 컨벤션 센터(ADNEC)로 이동해 부스와 동선을 꼼꼼히 살폈다. 주최 측의 중동 시장 브리핑도 이어졌다. 화려한 숫자와 통계, 독특한 문화적 특성에 대한 설명이 쏟아졌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가슴으로 실감이 나기엔 아직 부족했다. 그렇게 긴장과 피로가 뒤섞인 첫날이 저물었다.


다음 날 새벽, 낯설고 묘한 노래 소리에 잠에서 깼다. 기도를 알리는 소리, ‘아잔’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이 소리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고, 강제로(?) 부지런해진 덕에 호텔 조식을 새벽같이 먹게 됐다.



진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아침



뷔페에는 중동답게 다양한 양고기 요리와 후무스가 즐비했다. 그중 압권은 빵 코너 옆에 떡하니 놓인 진짜 ‘벌집’이었다. 공산품 같은 꿀이 아니라, 벌집째로 놓여 꿀이 뚝뚝 떨어지는 장관이라니. 이건 첨가물 여부를 따질 필요조차 없는, 의심이 실례인 100% 자연산 그 자체였다. 아침부터 입안 가득 퍼지는 극강의 달콤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중동 지역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루 리듬이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행사가 아침 일찍 시작해 해지기 전 끝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오후 1시에 시작해 밤 9시가 넘어야 막을 내린다. 살인적인 오전 기온을 피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다. 실제로 밤 9시가 넘으면 시원해진 공기 속에서 도시는 낮보다 활기차게 살아난다. 우리가 익숙한 ‘나인 투 식스(9 to 6)’의 문법이 이곳에선 무용지물이다.


덕분에 여유가 넘치는 오전 시간, 나는 친구와 함께 근처 대형 쇼핑 아케이드인 ‘마리나 몰’ 구경에 나섰다. 우버를 타고 도착한 그곳의 첫인상은 단순했다. “크다. 무지막지하게 크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쇼핑몰은 귀엽게 보일 정도의 스케일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거의 없어서, 거대한 쇼핑몰 전체를 우리가 전세 낸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잠시나마 기름 부자가 된 듯한 착각은 덤이었다.



인생 첫 파이브가이즈를 아랍에서



한참을 걷다 보니 한국 상륙 전이었던 ‘파이브가이즈(Five Guys)’가 보였다. 소문만 듣던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긴 건 산더미처럼 쌓인 ‘무제한 땅콩’이었다. 껍질을 까먹는 짭조름한 땅콩의 맛에 홀려 햄버거가 나오기도 전에 배를 채울 기세였다. ‘부유한 나라는 땅콩 인심도 다르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그냥 이 브랜드의 특징이란다. 육즙 가득한 햄버거의 감동도 기대 이상이었다.



‘적당히’를 거부하는 나라의 게임쇼는 과연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쇼핑몰 한편의 아이들 놀이시설을 보고 다시 한번 입이 떡 벌어졌다. 에어바운스로 만든 놀이터였는데, 그 규모가 거의 축구장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항복 선언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중동은 정말이지 모든 면에서 ‘적당히’라는 단어를 거부하는 곳이다.


아이들 놀이터조차 이 정도 스케일인데, 오후부터 시작될 게임스콘 전시회는 또 어떤 광경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비로소 진짜 전쟁터인 행사장으로 향했다. 아부다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나의 편견을 깨부술 새로운 막이 오르고 있었다.




다음편,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 2'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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