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일기(임신 전)
첫 임신을 안 것은 10월 중순쯤이었고, 뱃속에서 아가를 그대로 떠나보냈다는 것을 안 것은 12월 중순쯤이었다. 꽤 긴 시간이었다. 엄마라는 꿈이 중간에 깨져버리는 경우 치고 ….
그 두 달 동안 나는 참 …, 행복한 꿈을 꾸었다. 첫 임신으로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에 설레어 봤다.
하루에 한 뼘씩, 엄마라는 이름으로 울 아가에게 가까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고. 하루하루의 그 두근거림은, 매일 아침에 잠을 깼을 때도, 화장실에 들락거릴 때도,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울 아가의 초음파 순서를 기다릴 때도, 잠자리에 누워 배 위에 두 손을 포개고 두 눈을 감을 때에도, 늘 함께 했다.
‘나는 지금 울 아가와 함께 있다’는 설렘과 기다림 ….
그러나 나는, 어느 날, 아무 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어느 한 여자로, 갑자기 다시 돌아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임산부에서 산모로의 자연스런 변화가 아닌, 특별한 하루하루에서 평범한 하루하루로 갑자기 변해 돌아와 버린 나날들 ….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냥 그렇게 다시 살아가면 되는 거였다.
그때의 나는 병원, ‘산부인과’라는 곳에서 갈 길을 잃었음을 느꼈다. 아니, 갈 길을 잃었다는 말보다, 바로 내가 앉아있는 대기실에 그 좌석이 그 곳의 '외딴섬' 같은 기분이었달까.
나는 임산부도 아니었고, 산모도 아니었고, 예비산모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환자도 아니었다. 나는 이름을 잃었다. 그냥 '유산 한 여자' … 라는 말밖엔 …….
“수술은 깨끗이 잘 되었어요.”
나는 화면으로 아무것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버린 내 자궁을 보았다. 저기에, 바로 저기에 있어야만 하는 그 존재는 없었다. 깨끗하게 비워진, 한동안 너무나 소중했던, 우리 아가의 방이었던 그 방 …….
그때의 나는 참 많은 유산한 사연들을 들었다. 내게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참 많은 사람들이 유산한 경험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래, 생각보다 주위에는 여러 경우의 유산을 겪었던, 그럼에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건강한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게 중요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지……’라는 아픔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저 가만히, 넓은 바다를 마주보고 싶었다. 바다를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파도가 보고 싶었다. 파도를 밀어내고, 파도를 밀고 들어오는 그 힘은, 어떤 존재의 힘일까 …. 어떤 존재이기에, 저리 강할까 ….
그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강한 힘 앞에서, 나는 그저 침묵하고 싶었다. 할 말을 잃었다기보다는, 그 힘에 굴복한다기보다는, 침묵으로 그 힘을 맞서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
더는, 울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첫눈이 오는 날, 내 발자국 옆에 종종종 앙증맞은 발자국이 함께 찍히는 날, 그날에, 그날에, 그때에, 그때에 울 거야. 내가 얼마나 내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는지, 내가 얼마나 내 아이를 지키고 싶어 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