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일기
여자로 태어나서, 나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 것이기에, 어렸을 때부터 그려보곤 했던 나의 출산. 일명, '하늘이 노래지는 순간'에야 으앙~ 소리가 들리며 아가가 나오더라는, 너도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출산 스토리.
이상하게 나는 영상에서 출산 장면만 보면, 뭉클하며 눈물이 주륵 흐르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랄까 ···.
엄마의 온 힘으로 태어난 '응애응애' 아가의 크고 우렁찬 울음, 땀에 젖은 엄마의 머리카락, 그 옆에 안절부절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아빠, "축하합니다" 의료진의 목소리. 그 속에서 엄마 가슴에 안겨 첫 젖을 무는, 정말 너무나 조그만, 핏덩이의 아가. 그래서 나는,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다.'
자연 분만을 해야 아가가 더 건강하다, 라는 어떤 교과서적인 믿음 보다는, 아가가 태어나는 그 순간, 잠들어 있는 게 싫었고, 아가를 낳는 그 순간, 품에 안고 싶었다.
너무나 따스할 그 온기 ···.
아가의 첫 온기를 품에 닿게 하고 싶었다.
임신을 했을 때부터 '어떻게' 낳을 건지는, 자주 등장하는 화두 중에 하나였고, 나는 그때마다 '자연 분만'을 당연하게 말하곤 했다.
'건강한 내가, 건강한 아가에, 왜 자연 분만을 못 해?'
그래서 더 건강하기 위해 안정기가 지난 후부터는, 매일 산책과 요가를, 그렇게 평생 하지 않았던 운동을, 빼먹지 않고 아주 열심히 했다. 단 하나의 일념,
'순산을 위해서!' 그러나 ···,
"자연 분만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가 정한다고만 다 되는 게 아냐."
그 말이 맞았다.
나는 결국, 자연 분만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내 담당의는 늘, "순산할 수 있어요! 충분히 자연 분만 할 수 있어요!"라고, 수술 하기 직전까지 얘기 했다. 그렇게 자연 분만을 원했던 내가, 그렇게 자연 분만의 용기를 줬던 담당의를 만나, 그렇게 조금도 열리지 않고 있는 내 자궁을, 철벽같은 내 자궁을, 41주까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진 다 빠지게 ···.
40주를 지나면서 일주일 동안 가진통만을 앓다가, 바로 코앞에 41주를 앞두고 있는 어느 날 새벽, 진통 체크 어플을 켜고 보니, 엇?! 정말 듣던대로 일정한 간격의 진통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아, 이건가봐 이제야 ···'
그렇게 나는, 진통의 간격과 세기를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가, 새벽에 신랑을 깨워 긴 공복에 대비하기 위해 밥을 챙겨 먹었다.
"오빠가 함께 있을테니, 걱정마."
그렇게 애틋하게 손을 잡아주는 신랑과 함께 병원에 도착해, 잠에서 깨 기분이 살짝 상한 간호사가 내진을 해주더니,
"하나도 안 열렸어요."
헉, 진통은 40을 오락가락 찍고 있는데도 하나도 안 열렸다니 ···. 그런데 이렇게 아프다니 ······. 나는 허리로 오는 뒤틀리는 진통에 제대로 설 수도 없는데, 하나도 안 열렸다니 ···. 이 정도 진통은 시작도 안 한 것과 같다는 투의 간호사의 말.
"오빠, 이건 아닌 거 같아."
담당의는 '수술'이란 단어를 꺼내면 표정이 살짝 얼그러지며 잠시 숨을 고르곤 했다. 그런 담당의에 끝까지 '수술'이란 단어를 내비치며 팽팽하게 맞서왔던 신랑. 신랑은 고생하지 말고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늘 권해 왔었다.
병실에 누운 나는, 더는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이제라도 신랑 뜻을 따라 '수술'로 가야겠다고 빠른 결정을 내렸다. 병원에서는 나를 '유도'로 끌고 가려는 듯 보였는데 ···
나는, 브레이크를 강하게 걸었다.
"저는 수술하겠어요!"
"······?"
닷새를 진통해 첫 딸을 낳았다는 울엄마, 그 첫 딸은 유도로 24시간을 진통하다 끝내 자궁문이 안 열려 결국 수술로 딸을 얻었다.
'아, 이건 유전이야!'
안 그래도 며칠을 가진통만 겪은 게 서글픈데, 이렇게 아픈데도 자궁문이 하나도 안 열렸다는 게 서글픈데·· 왠지 그 다음 장면은 ···,
진통만 내리 겪다가 결국 수술실로 끌려 들어갈 것 같다는?
그 서글픔의 끝을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 어쨌든,
지금 겪는 이 내 고통을 끝내고만 싶었다.
고통이 자연 분만은 선불, 제왕 절개는 후불이라지만,
어쨋든 나는, 당장 이 고통을 끝내고 싶으니까!
이렇게 아픈데, 하나도 안 열렸다니 ···,
이건 시작도 아니라니 ···,
장난해????
그렇게 열 달 동안 간절히 바래왔던, 아니 어쩌면 어릴 적부터 꿈 꿔왔던, 온 몸의 힘을 다 해 아가를 얻는 그 희열.
그 꿈이 무너졌다.
그러나 ···,
초기 진통을 아주 슬쩍 느껴본 나는, 그것이 더이상 희열이 아님을, 그것이 더이상 꿈이 아님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건 '그냥 고통'이었다.
생으로 겪는 '고통'
괜히 밥을 먹고 오는 바람에, 나는 공복을 유지했다 수술을 해야 했고, 그렇게 괜한 고통을 몇 시간 더 겪어야 했다.
그런데 ···,
그렇게 자연 분만으로 아이를 낳는 줄 알았을 때는, 신랑이 옆에서 같이 안절부절 하는 듯 보이더니 ··· 수술로 결정하고 나서는, 어라?
"조금만 기다려. 곧 수술할테니!"
신랑이 진통을 겪는 내게 조금은 느긋함을 보이는 게 아닌가.
'엇!'
자연분만을 해야, 옆에서 같이 진이 쏙 다 빠지고, 머리카락도 좀 뜯겨 보고 할텐데 ···
'아 ··· 그거 하나 아쉽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