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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민 Jan 30. 2022

얼굴을 타고서

야, 얼른 타!


나는 황금색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굉음과 먼지바람이 일며, 버스가 멈춰 섰다. 주위가 어두워서 버스인 줄 알았던 것은 막상 마주하자 거대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릴 적 재미없게 보았던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세계 각국의 아이를 울렸던 얼굴이 달린 기차. 그것과 비슷했다. 얼굴은 여러 개의 피부 조각이 연결된 모양새였다. 나의 코 앞에서 버스의 굉음이 잦아들더니 이윽고 완전히 멎었다. 나는 손을 들어 버스의 얼굴을 쓸어 보았다. 그 피부들은 바람을 가로질러 오느라 많이 상하고 주름졌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아주 촘촘한 바느질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손 끝이 유리알 같은 것에 스쳤을 때, 그 주위의 피부가 살짝 떨렸다. 나는 비로소 여러 군데에 박힌 눈알을 발견했다. 그 눈알들이 멀리서 보기에는 하나의 눈알 같았다. 입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피부의 찢어진 부분에 손전등이 박힌 곳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빛인데, 이상하리만큼 눈 부시지 않구나.


뭐해, 얼른 타라니까.


소녀가 버스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창백한 얼굴에 체구도 작은 것이,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았다. 소녀는 재차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마지못해 그곳으로 가며 물었다.


이거 타면 어디로 가?


소녀는 까만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꿈에서는 버스 타면 안되는 거 알지?


모르는데. 이거 꿈이야?


소녀가 창문을 쾅쾅 두드리자 버스가 다시 소리를 냈다. 나는 창문이 세로로 커지더니 입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녀는 먼저 올라타서 손을 내밀었다.


무서운 곳으로 갈 거야. 가자. 오늘 꿈자리는 좀 뒤숭숭해.


소녀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그 애의 손은 아주 따스했다. 마치 손바닥 안에 작은 불꽃을 키우는 사람처럼. 버스 안은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내 손바닥에 묻은 빨강을 멍하게 들여다보았다. 소녀의 손바닥은 가죽이 없고 바로 근육이 보이는 채였다. 나는 소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납득할 수 있었다. 거기는 우리 둘 뿐이었다. 버스 앞에 달린 거대한 얼굴까지 우리로 쳐야 하는 걸까? 버스는 한참 어둠 속을 달렸다. 나는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버스의 창문에 기대서 밖을 내다보았다. 내 머리통이 유리창에 쾅쾅거리며 부딪혔다. 꿈이라서 아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심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몇 번을 잠에 들다 깨다 했다. 소녀는 축축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더니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을 봐. 누가 서 있어.


나는 실눈을 뜨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부서질 듯 작은 빛 하나가 아롱거렸다. 빨간 불. 먼지가 일어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었다. 소녀가 무어라 말을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가로등이었다. 조금 더 달려 버스는 가로등 바로 옆에 멈춰 섰다. 나는 가로등 밑에 서 있는 두 명의 얼굴을 확인했다. 


야, 엄마랑 아빠네. 태워드리자. 


소녀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부모님을 많이 사랑했던 나이였다. 나는 흥분한 그 애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가자. 


소녀의 표정이 단숨에 실망으로 차올랐다.


왜? 엄마, 아빠 심심해 보이는데.


두 분한테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그만 가자.


나는 버스의 벽면을 쓰다듬으며 부모님을 쳐다봤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버스 앞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올려다보자, 아버지는 살짝 웃었다. 나는 벽면을 몇 번 더 쓰다듬었다. 버스는 내 마음을 알아들었는지, 천천히 출발했다. 소녀는 뒤 쪽 창문에 붙어 멀어지는 두 사람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아직 창문에 코를 붙인 채로 소녀가 물었다. 함께 있고 싶은가? 나는 전부 행복하길 바랐다. 나는 소녀의 등을 토닥였다.


우리는 무서운 곳으로 간다며. 엄마는 무서운 거 싫어하잖아.


그건 그렇지.


우리는 또 한참을 정적 속에 달렸다. 버스가 기동 하는 소리만이, 바닥과 마찰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소녀는 조금 울다가 금세 기운을 차리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나는 그 애의 그림을 들여다봤다. 얼굴 버스를 닮은 사람들이었다. 소녀는 문득 고개를 들더니, 창가로 걸어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 또 불빛이야.


나도 그 애의 뒤를 따라 밖을 쳐다봤다. 이번에는 파란빛이었다. 빛은 먼지 속에서도 또렷이 보였다. 아주 강한 불빛이었다. 버스가 멈춰 서고, 나는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여자를 확인했다. 여자는 눈썹이 없었다. 오른발도 없었다. 손톱도 없었다. 내가 본 것을 말하자 소녀가 우습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 거리에서 그게 보여? 나는 대머리라는 것만 알겠는데.


여자는 머리카락도 눈썹도 오른 발도 손톱도 없었다. 어쩌면 이빨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창문을 넘어 뛰어내렸다. 버스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여자가 나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소녀가 따라 내렸다. 나는 소녀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 태우자.


소녀는 얼굴을 한껏 찡그린 채 말했다.


왜? 나 좀 무서운데. 대머리고.


뭐가 무서워? 저거 나중의 나야.


소녀는 여자에게 성큼 다가가 얼굴을 바짝 대고 살폈다. 여자는 놀라는가 싶더니 소녀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정말 똑같이 생겼네.


여자는 소녀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여자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발 한쪽이 없어서, 좀 올려줄래?


소녀와 나는 여자를 부축해 태웠다. 여자는 버스 한쪽 의자에 앉았다. 그 여자는 아주 처음 소녀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 후로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다시 어둠 사이를 달릴 동안 소녀는 나를 보고 나는 여자를 봤다.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왜 머리카락이 없어?


날아간 발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니?


여자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그게 서운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어디선가 작은 원형 상자를 가져와 바닥에 앉고는, 나를 불렀다.


이리 와. 이제 나아가야지.


나는 소녀 옆에 편하게 앉았다. 소녀는 작은 상자 속에서 작은 칼과 작은 바느질 도구들을 꺼냈다. 그 애는 능숙하게 나를 가르고 가죽을 벗겨냈다. 나는 뼈, 살, 흩뿌려 날리는 피가 되어 그 장면을 지켜봤다. 소녀는 나를 자르고 꿰매고 엮어 판판한 이불 한 장으로 만들었다. 황금빛을 내뿜는 버스는 더욱 견고한 채로 어둠을 달렸다. 어딘가 무서운 곳을 향해서. 대머리가 된 나를 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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