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민 Jan 10. 2024

마리

통통한 애벌레와 예쁜 개미 이야기

 아쿠아리움이었다. 나는 솟아나는 해파리들을 보는 중이었다. 해파리들은 가느다란 리본처럼 엉켜 들었다. 실제로 엉킨 것은 아니다. 아쿠아리움의 분홍빛 조명이 녹은 차가운 물이 해파리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철저히 갇힌 채 군무를 추는 그들은 불행한 것 같지 않았다. 모르지만. 그러는 중에 발견한 것이었다. 빨간 머리의 그 사람을. 마리! 나는 그를 불렀다. 포박된 생선들을 구경하느라 들뜬 사람들 속에 내 목소리는 물방울처럼 지워졌다. 바로 옆에 서서 해파리를 구경하던 여자아이만이 나를 쳐다봤다. 마리! 마리! 나는 신발 밑창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그를 불렀다. 심장이 달렸다. 이미 박동은 마리에게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여기 서 있는 건 죽은 몸, 마리 곁에 있는 건 죽은 심장인가보다.

그의 이름을 거듭 부를 때마다 점점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늘어났다. 결국 마리도 나를 봤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민머리였다. 몇 년 전에는 아니었으니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하지만 곧 마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슬프게도 나를 알아본 것이다. 마리는 입을 비쭉이더니 뒤를 돌아 멀어졌다. 마리! 마리! 나는 다시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마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나와 마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했다.

“쫓아가요”

사랑스러운 말이었지만 나는 달려가 마리를 잡아 세울 수 없었다. 심장과 몸 중 하나만 달려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는 해파리 앞을 떠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마리도 더 멀어지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가버렸다. 심지어는 벌써 잘 준비를 모두 끝냈을 것이다. 이제 아쿠아리움 문을 닫으니, 사랑을 잃은 멍청이들은 밖으로 꺼지라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순순히 꺼지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문득 마리의 표정을 곱씹어 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계속 울다 보면 나도 물에서 엉킴 없는 순간이 올까.


 마리와 나는 긴 날 함께 꿈속을 여행했다. 마리는 나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나는 마리의 어깨에 손을 둘러도 괜찮았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때였다. 그 시절이 전생처럼 느껴졌다. 행복 속에 있는 와중에 이것이 행복인 줄을 알고 있는 순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내일도, 내일의 내일에도, 마리와 손잡고 있을 것을 알아서, 감히 두렵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이 이야기를 밤낮없이 반복하는 나를 보며 일기장조차 토할 지경이 되었다. 진짜 토한 것은 룸메이트 주현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마리의 이야기를 했다. 매일매일 했다. 그게 남아있는 마리와 나의 이야기의 전부기에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 꿈 여행에 관한 것, 그러다 꿈 젤리가 금지된 것, 꿈을 꾸지 못하게 되자 우리는 먼지처럼 떠돌아야 했다는 것, 그래서 이 모든 고통이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위로하는 주현이를 교묘하게 속였다. 나의 가장 추악했던 모습과 마리의 가장 구렸던 모습을 빼고 수다를 떨었다. 그건 나를 속이는 것이기도 했다. 마리와 나는 최고의 팀이라는 주문을 걸었다. 주현이는 나를 사랑했으므로 그냥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토해버린 것이었다. 남의 이별 이야기만큼 질리고 구린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이대로 가다간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역겨움을 감당해야 할 테니 말이다. 미안하지만 닥치는 건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병은 안으로 자라 결국 나를 잡아먹을 거다. 이별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아마도 마리는 글 따위는 쓰지 않으리라. 마리는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사람들과 웃고, 잔잔한 일상에 책임을 다하다가 가끔 내가 떠오르면 입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내 버릴 거다. 그러다 어느 아침, 철없는 목소리와 모호한 실루엣, 사랑을 하다 괴로웠던 느낌 외에는 나를 기억할 수 없을 거다. 마리는 그럴 거다.

나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또 괴로워하다가 동네방네 우리의 사랑과 이별을 떠벌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싫어진 채로 돌로 굳을 거다. 나의 이별은 나아가는 게 아니라 원 모양으로 소용돌이치며 과거와 오늘, 당신이 없을 늙은 나 사이에 있을 거다. 그러다 사랑과 닮은 새로운 사람에게 구원받으며 그제야 우리 이야기를 멈출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또 반복.

 다른 이별 중에도 알고 있는 게 있다. 이별은 다 아프다지만 나는 그 이별 이야기를 듣고서 적어도 역겹지는 않았다. 그건 통통한 애벌레와 예쁜 개미 이야기다.     


 통통한 애벌레는 올해로 열한 살이 되어 건강함을 뽐냈다. 예쁜 개미는 길을 지나다 통통한 애벌레를 마주쳤고 예쁜 개미는 예쁜 개미이기 때문에 그 둘은 사랑에 빠졌다. 함께 꿀을 나누어 먹고, 애벌레는 개미를 집 앞까지 배웅했다. 사람들은 연인을 집에 데려다주는 이야기를 진부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익숙한 일상의 노력이 결국 사랑이나 이별 따위의 정수다. 애벌레가 그 통통한 몸을 이끌고 그의 집에 돌아가는 동안 달빛이 어땠으며 어떤 서러움과 어떤 아쉬움, 어떤 벅차오름을 고스란히 느꼈는지 안다면 한순간도 진부하지 않을 것이다. 개미도 마찬가지다. 개미는 오늘 하루 애벌레의 통통한 살결을 어루만진 것을 떠올리며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 있다. 또 애벌레를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상황이 변한다. 상황은 언제나 변한다. 오히려 변화하는 상황에서 멈춤은 찰나다. 애벌레는 사실 나방의 애벌레고 내일은 번데기가 되어야 한다. 끈끈한 실로 온몸을 감싸며 나방 애벌레는 생각한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그러나 통통한 애벌레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믿고 있다. 나의 영원한 연인은 나의 변신을 이해하고 응원할 것이라고 말이다. 아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개미가 애벌레를 찾아갔을 때 개미는 그의 연인을 찾을 수 없다. 거기에는 통통한 번데기만이 놓여 있다. 개미는 번데기에 대고 말한다. ‘통통한 애벌레, 거기에 있니?’ 아무 대답이 없다. 왜냐하면 통통한 애벌레는 이제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개미는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개미는 애벌레를 찾아오지만 거기에는 통통하고 무자비한 번데기만이 나날이 우람해지는 중이다. 변화한 상황을 이해하지도, 적응하지도 못한 개미는 결국 번데기를 갈라 그의 연인을 찾으려고 한다. 변신 중 습격을 받은 통통한 무언가는 푸른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 개미는 통통한 무언가의 얼굴을 본다. 통통한 무언가도 개미의 얼굴을 본다. 둘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끝을 마주한다. 사랑과는 아주 먼 곳에 서서.     


 이 이야기가 들을 만했던 것은, 후회하는 부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후회하는 부분이야말로 정말 끔찍하다.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고, 술을 찾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면서 각자만의 바닥을 경험한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잠옷 가게의 미소였다. 미소는 사랑을 한 지는 몇백 년, 이별한 지는 몇 년이 흘렀다. 미소는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잠옷을 만들었다. 통통한 애벌레와 예쁜 개미의 이야기도 미소가 낮에 쓴 글이었다. 내가 마흔 번째 잠옷을 사러 갔던 쿰쿰한 해 질 녘, 미소는 직접 글을 읽어주었다. 그의 글은 바싹 마른 포근한 잠옷처럼 온기가 있었다. 미소는 글을 읽으며 내가 가져온 딸기 차와 쿠키를 먹었다. 쿠키 부스러기가 미소의 원고 위에 우수수 떨어졌다. 미소가 때로는 개미의 흉내를 내고, 때로는 애벌레의 흉내를 내며 실감 나게 낭독하는 동안, 나는 미소의 연인을 모르는데도 그가 미웠다. 방이 어둑해지고 미소는 텅 빈 접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 먹어 치워 버렸네”

 미소가 접시를 다 비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체구가 작았을뿐더러 입도 짧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사실 소문이 난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건 우리만의 농담이었다. 입이 너무 짧으면 요리사의 마음이 무너지고 하늘이 분노한다는 이야기는 미소가 작은 한숨을 내쉬고 가장 가벼운 음식 한 입 정도를 더 먹도록 했다. 나는 미소가 이 농담을 위해 일부러 마지막 한 입을 남겨두는 점을 사랑했다. 그가 음식을 다 먹는 것은 무언가 심경의 높낮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허전함은 쿠키로라도 채워야 한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말이다. 쿠키의 가장 딱딱한 부분을 열심히 씹으며 그게 불쌍한 혀가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미소는 빈 접시 앞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통통한 애벌레와 예쁜 개미의 이별과 함께 미소가 쥐여 준 마흔 번째 잠옷은 평소보다 서글픈 색이었고 되려 위로가 되었다.

 눈이 많이 쌓인 곳을 걸으면 마리 생각이 났다. 밋밋한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마리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러면 웃음이 났다. 나는 마리를 생각하면 늘 웃게 되었는데, 그게 좀 의아했다. 왜냐하면 동시에 사무치게 그리웠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울기도 했지만, 그때조차 간간이 웃음이 났다. 마리의 요상한 표정, 다정한 말투, 빨간 머리칼, 그 뒤통수가 나를 웃게 했다. 나의 이 미소가 영원하리라는 걸 알아서 두려웠다. 나에게 마리는 그렇게 남았다. 내가 벌거벗은 채 울면서 눈길을 달리고, 동시에 마리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지 않았던 것은 이별에 어른스러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극복하지 않았기에 일상의 평정을 흉내 낼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낮은 절벽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옆에는 마리가 있었다. 유령이었지만 나는 그의 얼굴과 동그란 뒤통수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참의 이별을 미루고 미뤘다. 겨울을 밟으면서 약간 죽은 것 같았는데 그래도 제자리였다.     


작가의 이전글 얼굴을 타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