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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지 Apr 26. 2021

상상에 빠진 월터 미티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

벤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동안 마음에 남아 오랫동안 생각에 빠졌던 작품이 있습니다. 감정의 요동치거나 강렬한 임팩트가 없었는데도 여운이 오래 남아 어쩐지 내 삶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가 제게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소심하고 융통성 없는 주인공 월터가 등장합니다. 월터는 이제 곧 폐간될 예정인 <LIFE>지에서 필름 원화 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지하실 구석의 작업실이 월터가 몇 십 년 동안 몸담아 온 공간입니다.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월터는 상상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신을 해고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상사 앞에서도 상상하기를 멈추지 못해 눈 밖에 날 정도로 말이죠.      


태어나서 한 번도 국내를 벗어나본 적 없는 월터의 생애 첫 모험은 폐간호 잡지의 표지사진(정확히는 25번째 필름)을 잃어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표지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헬리콥터와 배,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등을 타고 이동합니다. 월터가 소심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의외의 모습이 보입니다. 스피드를 즐길 줄 알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려는 책임감은 월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월터도 이 순간이 즐거워 보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련하고 안타까운 회한과 같은 감정도 함께 느낍니다. 월터는 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용기를 낸 이 여정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과거의 월터’를 떠올린 걸까요? 

    

시나리오 작법서 <save the cat>의 저자 블레이크 스나이더는 개인적인 삶의 문제에 빠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과의례’라고 부릅니다. ‘통과의례’ 이야기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답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그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문제’, 두 번째는 당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잘못된 방법’, 세 번째는 문제의 해결책인 ‘받아들이기’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삶을 다루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동원하곤 합니다. 그래서 ‘통과의례’의 이야기 요소 중에서 ‘삶의 문제’와 ‘잘못된 방법’은 다른 분류의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통과의례’ 이야기의 차별 점은 세 번째 요소인 ‘받아들이기’에서 드러납니다.      


월터를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필름일까요? 오랫동안 만들어온 잡지의 폐간일까요? 이 사건들이 월터를 모험으로 이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과거의 월터는 모히칸 머리를 하고 다닐 정도로 반항기질이 있으며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스피드를 즐기는 활발한 소년이었습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약속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월터는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급격하게 말수가 줄어들었으며 상상에 매달렸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책임감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월터는 아무런 준비 없이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욕망의 배출구는 ‘상상’이었죠. 그런데 이것은 월터에게 닥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잘못된 방법’입니다. 그는 이 모험을 통해 잘못된 방법에서 벗어나 보다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마주하고 받아들입니다.  

   

월터는 사진작가를 만나 표지사진을 찾았을까요? <LIFE>가 폐간된 후 월터는 해고되지 않았을까요? 과연 그 표지사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영화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건들이지만, 월터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부수적인 역할일 뿐입니다. 월터에게 중요한 것은 상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한 걸음을 내딛은 데 있습니다. 그것이 월터의 모험에서 얻어낸 삶의 변화이자 정체성의 발견입니다. 공교롭게도 월터의 변화는 폐간을 앞둔 <LIFE> 모토와 맞닿아 있습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이유는 ‘인생’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입니다. 삶의 모순성을 확인하며 그것의 부조리함에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인생이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자 삶의 목적입니다. 영화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폐간되어 버리는 <LIFE>지에서 근무하는 월터를 보여줍니다. 이 안에서 변화는 삶의 필수입니다. 변화를 받아들인 월터의 삶이 결국 지속되듯이 비록 <LIFE>지는 폐간하지만 사람들의 ‘삶(LIFE)’은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삶의 크고 작은 문제에 가로막혀 잠시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월터 미티의 변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목적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TIP! 소소한 재미의 이유

1)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미국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인 벤 스틸러가 감독하고 주연을 맡았습니다. 벤 스틸러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이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해서 감초역할을 합니다.

2)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월터 미티에게는 짝사랑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셰릴 멜호프라는 매력적인 여성은 월터가 모험에 뛰어들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물론, 월터의 상상 속에서요. 

3) 모험을 망설이는 월터의 상상 속에서 셰릴은 월터를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바로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인데요. 영화에서는 본래의 제목이 아닌 <Ground Control to Major Tom>이란 제목으로 쓰였습니다. 우주사고로 돌아올 수 없는 모험의 마지막 순간에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톰 소령과 지상관제소와의 대화로 이뤄진 가사는 영화의 주제를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인생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모험을 떠난 톰 소령의 가사를 듣고서 월터가 헬리콥터에 몸을 실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년 개봉. 2017년 재개봉) 영화의 스틸이미지


청강뉴스레터. '재미의 이유'에 싣기 위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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