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찾아 한 바퀴. 100일 휴가 넷째 날 목적지는 작은 수목원. 찾아가는 길을 검색해 보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서울창포원. 해가 쨍. 지난해 여름 잘 쓰고 다녔던 모자를 쓰고 길 나섰다. 붓꽃 가득한 식물원이라 했던가. 보라색과 노란색의 붓꽃들이 초록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천천히 한 바퀴 다 돌고 나니 드는 생각. 제주 절물휴양림처럼 비가 오면 더 좋을 곳이겠구나. 머지않아 이뤄질 이곳에서의 우중산책을 기대하며 벤치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인간은 돌아가려는 존재다. 예의 과거로. 오래 머물렀던 그 자리로.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나아가려는 존재다. 우리에겐 분명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다. 관성에서 벗어나 나아가는 100일. 그게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첫 쉼, 100일의 휴가다.
2022.5.17 서울창포원
전날 본가에 다녀오는 길 "그럴 수도 있지"를 수백 번 되뇌었다. 좋지 않은 기분을 흘려보내기 위해. 왜 이튿날까지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을까. 왜 함께 식사를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을까.
'가족이니까'
오래 생각해온 다섯 글자다.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이해와 인내, 요구 수용은 '가족이니까' 가능해야 하는 걸까. 그게 가능한 걸까. 과거의 내가 '네' 했다면 지금의 나는 '아니오'. 가족이기 때문에 다 이해해야 하는 것도, 가족이라고 다 참아야 하는 것도, 가족이기 때문에 다 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게 폭력이라는 걸 과거의 나는 알지 못했다.
가족도 엄연히 타인이다.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모두 적당히 이해받는 한편 적당히 이해받지 못하고 산다. 모든 것을 이해받아야만 하는 삶도 없고 모든 것을 이해받을 수 없는 삶도 없다. 각자의 삶일 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행동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다. 그렇게 쓸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그저 각자 삶의 방식이라 여기고 모두 흘려보내야 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타인을 바꿀 수 없다. 바꿔서도 안 되며 바뀌어지지도 않는다. 다시 깨닫는다. 타인이 그리고 세상이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집착을 버려야 한다. 안타까움 마저도. 각자의 삶이다.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