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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0일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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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25. 2022

사는 게 슬펐어... 왜?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100일의 휴가 - 7일 차

올림픽공원역은 처음이었다. 늘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내렸기에 '평화의 문'이 보이지 않는 올림픽공원역은 어쩐지 올림픽공원 같지 않았달까. 전날 밤 초록을 찾아다니는 100일의 휴가 7일 차 목적지로 올림픽공원을 정한 뒤 지하철 노선을 살피다 발견한 올림픽공원역. 응? 5호선에 언제? 두 번 갈아타기에서 한 번 갈아타기가 가능해졌으니 몽촌토성역 대신 올림픽공원역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올림픽공원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온 난 다시 한번 알았다. 역시 나는 익숙한 걸 좋아하는 인간임을. 애정이 있을수록 말이다. 좋아하는 장소로 향하는 여러 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길은 있는 법. 어쩌면 인사동 메인 도로와 지금은 걸을 수 없는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지던 돌담길,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두 갈래 길, 여미지에서 중문해변으로 가는 길처럼 길 자체가 내게 소중한 장소이듯 그래 평화의 문과 너른 광장 역시 그중 하나였구나. 초록을 배경으로 한 나홀로나무와 바람의언덕으로 여겨지던 올림픽공원의 그저 '입구'가 아니라.


무튼 100일 휴가 중엔 '안 하던 짓'도 선뜻 해보고 안 가던 길도 기꺼이 가보기로 하였으니 일단 씩씩하게 걸었다. 모든 길은 통하니 가다 보면 나오겠지 생각하며.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제법 낯설다. 무슨 일? 과거 자주 들렀던 올림픽공원이 낯설다니! 얼마나 가던 곳만 걷다 갔으면 이리 낯설까 싶어 속으로 한참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늘 내리던 역이 아닌 새로운 역에서 내리니 참깨만큼만 보던 올림픽공원을 서리태콩만큼은 더 보는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5.20 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 장미광장
올림픽공원 들꽃마루

5월은 작약과 장미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달이다. 올림픽공원 장미광장에도 색색의 장미가 만개했다. 향기에 흠뻑 취해 천천히 걸으며 눈에도 휴대폰 카메라에도 넉넉히 담았다. 그리고 드디어 찾은 익숙한 평화의 문에서 나홀로나무까지 가는 반가운 그 길을 지나 벤치에 앉아 일기장을 폈다. 지하철 안에서 읽던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에서 마음에 남았던 구절.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주어진 일에 임하는 자세, 예측하지 못한 불상사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자세 등은 부모의 태도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 문장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라... 순간 자동 플레이되는 장면. 과거 "사는 게 너무 악물스럽다"며 절규하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자신의 분을 어쩌지 못해 악을 쓰며 울던. 보고 보고 또 봤던. 여전히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는. '악물'의 뜻은 몰랐으나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 아버지에게 삶은 그런 것이구나. 했던. 그렇다면 나에게 삶은? 내색 않고 견디고 참고 이겨내고 견디고 참고 이겨내고의 반복. 그랬던가. 그래서 삶이 슬픈 것이라 생각했던가. 나는. 언젠가 사는 게 어땠냐던 지인의 물음에 "나는 사는 게 슬펐어"라고 답했었다. 맞다. 어린 나도, 자라지 못한 어른인 나도 사는 게 슬펐다. 성장환경과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길러진 우울, 잠재의식이 배경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안다.


삶은 나에게 무엇으로 다가오나? 삶에 대한 나의 인식은? 차분히 질문해본다. 삶은 힘든 것? 삶은 견디는 것? 삶은 참는 것? 그래. 그랬다. 그런데. 아니. 아니다. 삶은 때로 힘들기도, 견뎌야 하기도, 참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다시 나를 키운다. 키워본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또 찾아서 실행으로 옮겨보는 과정. 그게 소소한 것이든 제법 거창한 것이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아가는 여정. 그리고, 조금은 더 가벼워져도 되는 것. 언제나 첫 번째는 나 자신임을 기억하는 것. 그래야 하는 것. 그래도 되는 것. 게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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