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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Jan 25. 2021

영어 거부하는 아이, 그게 뭐 대수입니까?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린 이유 3가지]


2021년 1월, 딸은 이제 막 7세가 되었다. 지난해 등록해 둔 유치원(병설)은 1년간 총 몇 번이나 갔는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작년 11월에 처음 등록했던 피아노 교습은,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아이들을 받지 않으신다고 한다.


현재 7세 딸의 하루 일과는? 놀고, 먹고, 또 놀고, 먹고, 중간에 책 좀 읽고, 또 놀고~  


그래도,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정서적 교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유의미한 일을 기록하자면, 딸과의 잠자리 독서다.

출처 : pixabay

그림책 읽기(우리말 그림책 90%, 영어 그림책 10%)를 같이 하고 있다. 5개월 가량이 흐른 지금은 우리말 그림책 80%, 영어 그림책 20% 정도로 영어의 비중이 살짝 커지기는 했다. 시작할 때는 많은 분들께서 시도하는 엄마표 영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으나, 내가 딱히 우리 딸에게 어떤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잠들기 전 매일 그림책을 같이 읽어 주고, 관심 있어하는 영상을 같이 보고, 내용에 대해 대화 나누기 정도이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학생들을 대하는 것과는 완전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물론 나는, 내 딸 또래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은 없다. 그러나, 딸이 만약 내 수업을 수강하는 내 학생이었다면, 나는 '성과'를 내기 위하여 학습을 시켰을 것이다. 강사의 존재 목적 중 가장 큰 이유가 '성적 향상' 및 '가시적인 성과'이기에, 정서적인 부분만 보듬어 가며, "괜찮아, 너 하고 싶은 만큼 실컷 놀고, 네가 원할 때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기 힘들다. 이 아이가 당장 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년일수록 더 그러하다.


그러나, 내 딸에게는 그게 된다. 성과와 상관없이 내 아이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우리 딸. 실컷 놀아. 영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수학도 하기 싫으니? 그럼 이것도 지금 하지 마.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영어, 수학을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야."


물론 아이가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일 수 있다.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당장 수치로 제시되는 성적이 보이는데도 마냥 아이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달리는 길에서, 나만 걷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내 아이가 달리기를 힘들어하는데 남들이 달린다고, 다 같이 달려야 할까? 내 아이는 수영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나는 피겨 스케이팅이 좋다고 해서 나의 방식을 아이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엄마로서의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해 왔으며, 또 성인이 되어서까지 애정이 사그라들지 않아 업으로까지 삼았다. 그래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미래의 내 아이도, 당연히 나처럼 영어를 좋아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주변 성공 사례들을 보며, 이중언어교육이라는 원대한(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세웠으며, 아이 언어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영어 음원 등에 노출시켜 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딸은 돌 무렵 경부터 모국어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모든 영어 음원을 거부했다. 유명하다는 위 씽 시리즈도 영어 노래라고 싫다고 하고, 뽀로로 영어 버전을 잠깐 보여줘도 우리말이 아니라서 싫다고 했다.


영어가 싫다는 아이,
어떻게 했을까?


영어 노출을 전혀 시키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4세까지는 영어 노출 제로, 5세에는 영어 동요만 가끔 듣기+ 이마저도 싫다고 하면 바로 끄기, 6세 하반기부터 잠자기 전 영어 동화책 한 두 권씩 읽기 시작했다.


결정적 시기를 강조하며, 어릴 때 귀를 틔워 주어야 한다는 여타 육아서들과는 대조적인 선택이다. 결정적 시기 가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지연시켰다.


그럼,
나는 무슨 이유로 느긋한가?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린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스트레스를 줘 가며 외국어 학습을 시키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영어는 도구이다. 잘하면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영어를 도구로, 더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도구적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경험의 폭 및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참고, 단단한 영어공부, 김성우 저자) 그러나,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함양시켜야 할 역량은 아니다. 외국어 학습에 투입할 에너지를 본인의 다른 관심 분야에 쏟게 하고 싶다.


둘째, 직업상 큰 학생들(고등학생들, 성인분들)을 많이 만나왔다. 영유를 다녔건, 해외 체류 경험이 있었건, (탄탄한 모국어 사고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어설픈 외국어 노출은 자칫 '유창한 발음' 그게 다인 경우가 왕왕 있었다. 발음과 억양만 들으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화자와 구별하기 힘들지만, 실제 그 대화의 내용에 유의미한 알맹이가 없다면? 그리고, 모국어(주로 한국어)로든 외국어(주로 영어)로든 인문학 서적 등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유창한 발음 혹은 억양은 큰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셋째, 수년간 여러 학생들을 만나면서, 강요로 인한 학습(특히 부모로부터의 강요, 교사로부터의 강요는 그래도 수긍하고, 따라오는 아이들이 많지만 말이다.)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는지를 지켜봤다. 물론, 계속 나이가 들고, 초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전혀 학습에 관심이 없다면, 어느 정도 부모가 개입해서 학습 습관 및 공부 정서를 잡아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영유아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마음껏 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인걸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영어 노출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아주 간혹 영어 동요만, 아이가 좋아하는 리듬감 있는 노래들 (ex. the wheels on the bus, itsy bitsy spider 등)만 들려주고 율동을 같이 해봤다.




6세가 되자, 딸이, "엄마, 나 영어 알려줘~."라는 말을 스스로 꺼냈다. 


(아이의 마음이 바뀐 이유는 콕 집어 하나를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마이 리틀 포니라는 캐릭터들이 있다. 유튜브에서 접한, 딸이 원하는 마이 리틀 포니 장난감들이 한국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아이가 유튜브에서 보고, 저 스케치북을 사달라고 하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OO아, 이 스케치북 우리나라에는 없어.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비행기도 잘 안 다녀~. 구하려면 우리가 미국에 가서 직접 사 와야 해~ 그리고 미국에 가면 영어로 말해야 해~."


딸이 영어에 마음의 문을 연 계기 중 하나인, 마이 리틀 포니 스케치북 영상 유튜브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우리 딸은 영어를 배우고 싶단다. 영어 교육학에서 말하는 도구적 관점 + 진정성 있는(authentic) 상황에의 대비책이 혼합되었다고나 할까?



6.5세에 시작한 영어는 조기교육일까 아닐까?


지나친 조기교육의 문제점을 다룬 수많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영유아기 부모들이 조기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들 중 몇 가지가, '늦게 시작할수록 영어를 배우기가 힘들다. 늦게 시작할수록 습득이 아닌 학습을 해야 하고, 우리 대다수 어른들이 거쳐 온 힘든 학습 과정을 밟아야 한다..'라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또한, 영어를 늦게 시작할수록 아이들이 우리말에 익숙해져서, 영어책, 영어 영상을 거부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부모들의 조기교육에 불을 붙이는 이유가 된다.


내 딸 역시, 이르면 이른, 그러나 늦으면 늦다고도 할 수 있는 6세 하반기에 영어 노출을 시작했기에, 당연히 한국어 사랑 >>> 영어에 대한 관심이다.


그럼, 이런 아이(유창한 한국어 능통자, 넷상에서 의견을 주신 모 이웃님께서는 우리말 장인이란 표현을 사용하셨다.)에게는 어떤 식으로 영어 노출을 시킬까?


나는, 유창한 모국어를 구사하는 내 딸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시도한, 유창한 한국어 능통자 아이에게 영어 노출시키기 우여곡절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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