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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Jan 27. 2021

영어 거부 아이에게, 영어로만 말 걸라?

[영어 거부하는 아이 Part2]


이전 글 [영어 거부하는 아이 Part1]에서도 언급했듯, 마이 리틀 포니에 힘입어 드디어 6.5세의 딸아이가 스스로 영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한 스푼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어로 그림책을 읽거나, 영어 영상을 보여주려 시도했을 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엄마, 나 영어책 말고, 한글책 읽을래." "엄마, 나 저거 한글로 보여주면 안 될까~?"였다.

 

6.5세에 처음 영어를 접한 딸아이에게는

영어 =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한국어 = 읽고, 듣고, 말하기가 모두 편한 언어

인지라, 모국어 쏠림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모국어에 익숙한 아이들(가령, 7세 내 딸)에게서 나타난다는 영어 영상 혹은 영어 그림책 거부의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딸의 능숙한 모국어 사용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우여곡절을 거친 구체적인 시도는 아래와 같다.




1. 우리말 그림책 활용


딸은 우리말 그림책을 많이 읽어 왔고, 한번 꽂힌 책은 무한 반복하는 독서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책 속의 대화 및 표현을 거의 그대로 외우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걸 보고, 나는 우리말 그림책 중 영어 번역본인 경우는 영어 원전을 찾았다. 그다음 우리말 그림책 옆 혹은 책 귀퉁이에 대화체에 상응하는 영어 표현을 필사다. 이른바 수제 한글-영어 쌍둥이 책이다.


[관련 글] 영어 유치원 1달 비용으로 1년 나기


우리말 책 옆에 영어를 바로 적으면 자칫 한영 번역으로 보일까 봐 우려될 수도 있으나, 어차피 내 딸은 영어를 읽을 줄 모른다. 따라서 한영 번역 혹은 해석으로 흘러갈 걱정 없이 그냥 적어 두었다. 그다음, 딸이 좋아하는 대사 한 두 마디를 영어로도 말해준다. 이 과정을 통해 대단한 습득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줄일 수 있다.


2. 우리말 영상 활용


다음, 우리말 애니메이션 영상도 최대한 활용했다. 모국어로 이미 1회 이상 시청해서 스토리가 익숙한 영상 + 아이 취향 저격의 영상을 영어로 보여주기 및 소리 들려주기를 시도해 보았다. 가령, 딸이 좋아하는 만화인 <마이리틀포니>, <페파피그>, <타요> 등을 우리말 더빙판으로 시청한 후, 다시보기할 때는 같은 영상의 영어 원버전을 틀어준다. <브레드 이발소>역시 딸이 좋아하는 만화이다. <브레드 이발소>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만화인데, 다시보기할 때는 영어 버전을 찾아 보여주고 있다.


영상 속 캐릭터가 되어 역할 놀이를 즐기는 딸은 영어 대사가 나왔을 때 그걸 우리말 대사로 바꾸어 나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영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점에 이 대사가 나온다는 것을 외운 것으로 보인다.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대단한 습득 혹은 학습 효과를 기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영어의 리듬 및 억양에 익숙해지고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딸은, 특정 애니메이션은 모국어로는 너무 많이 틀어줘서(영상 노출 10%, 소리 노출 90%) 이미 외우다시피 했다.                


 "OO아, 지금 엄마 영어로 들려줄 거야."     

"응, 엄마~ 영어로 들려줘도 좋아. 나 어차피 내용 다 알거든."               


이 아이가 내용 다 안다는 것은, 영어로 들려줘서 안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모국어 영상을 한 번 봤고, 모국어로 된 사운드를 많이 들어서 내용을 다 알기에, 영어로 들려줘도 분위기만으로도 파악이 된다는 거다. 그냥 틀어주고 있다. 아직까지는 무의미한 흘려듣기일 수 있지만, 우선은 그렇게 한다.      


3. 우리말로 익숙한 영상 + 책의 결합


현재, 딸은 밤마다 페파피그 책들을 쌓아 놓고 가져온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그림책들을 영어로만 읽어 주면 좋아하지를 않아서, 그림을 보면서 우리말로 살짝씩 대화(해석 X, 번역 X) 해 나아가야만 읽는 반면, 모국어 영상으로 이미 내용이 익숙한 페파피그 책의 경우는, 읽어 주는 과정에서 우리말 사용을 전혀 하지 않아도, 킥킥대며 듣는다. 영어 단어를 읽고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익숙하니까 영어로도 거부감이 없다.

      

손바닥만한 페파피그 책 무려 100권에 13만원 가량, 한 권당 1,300원 꼴로 가격도 훌륭, 내용도 훌륭하다.
영어 버전 영상으로 시청한 후, 관련 우리말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딸이 영어 영상을 거부하지 않는 아이였다면 당연히 목표 언어로만 노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딸은 이미 돌 무렵부터 폭발하는 모국어 능력과 비례해서, 영어 거부 현상을 보였다. 5분 이내의 영어 사운드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아서 구매했던 영어 동요 CD도 거의 틀어보지도 못 했다. 다행히, 딸은 2021년 1월 현재까지, 알고 있는 내용의 영어 음성 노출은 거부하지 않는다.

(물론, 각 아이의 배경 및 사례가 다를 테니, 일반화는 아니다.)


엄마표 또는 아빠표 영어 등으로 "아이의 말문이 터졌어요."를 말씀하시는 분들의 조언 중, "첫 시작부터 모국어로는 절대 보여주지 말아라, 한 번 모국어 익숙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혹은 "우리말 영상 모두 끊고 영어 영상만을 보여주기."라는 방안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아직 위의 방법들은 써 보지 않았지만, 신빙성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아빠표, 엄마표 영어를 성공적으로 일구어내신 분들이고,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 방법을 따를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첫 시작은 모국어로 노출되었다. 아이들의 뇌 속에 있다는 가상의 그것, 언어 습득 장치(LAD)에 힘입어, 모국어에 익숙해진 정도가 아니라, 모국어 능통자가 되었다.

둘째, 우리말 영상을 모두 끊고 영어 영상만을 보여주기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바이지만, 부모 된 마음에 왠지 짠하다. 강제 어학연수/해외연수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 옵션은 보류다. 물론 언어의 바다에 퐁당 빠지면, 어떻게 해서든지 헤쳐 나가는 것이 아이들이라지만, 어쩐지 짠해서 내 딸에게는 시도해보지 않았다.


현재 시도하고 있는 모국어 활용을 통한 영어 노출거부감의 문턱을 낮춘 후에, 차차 자립을 유도하려 한다.

처음부터 물속에 넣고 "수영해서 나오렴."의 방식이 아니라, "차차 팔 튜브 빼고 들어가 볼까? 발 끝부터 물속에 담가보렴~." 이라고나 할까?


부모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따라오는 자녀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나는 우리 아이에 맞추어, 어느 정도의 유연함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이전 관련 글] 영어 거부하는 아이, 그게 뭐 대수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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