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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Apr 29. 2021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5가지 이유 (ft. 윤여정)

['윤며들다','휴먼 여정체'가 우리에게 남긴 것]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만 73세의 윤여정 배우님이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할머니라기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귀엽다고만 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여유와 겸손, 인생 내공이 너무나도 단단한 그녀. 영화 <미나리>, 윤여정 님의 연기가 화제가 됨과 동시에, 그녀의 영어도 같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소위 있어 보이는 표현, 고급 단어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진솔하게 할 말 다하는 그녀의 언어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윤여정 님의 영어는 실생활에서 부딪히며 익힌 영어,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는 영어이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마음을 울린다. 몇몇 대중들은 그녀의 영어 히스토리를 분석하며, "살다 왔다잖아. 그러니까 그렇지."라며, 한국이라는 EFL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인 양 선을 긋기도 한다. 그러나, 해외 거주 유경험자가 모두 그녀만큼 영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이상을 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년을 살다 왔다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언어 구사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들도 있다.


영어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서도, 간단한 영어 한 마디 쉽지 않다는 게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이다. 이들 대부분은 의사소통에 중점을 둔 교육이 아닌, 문제 풀이식 입시 교육을 탓한다. 물론, 가장 근본적으로는 평가 제도가 바뀌지 않은 데에서 오는, 입시 위주 교육이 일차적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한국인이 영어를 못 말하는 진짜 이유를 말하고 싶다.

  

도대체 왜, 한국인들은 영어를 못 할까?


첫째, 공부법은 공부하지만, '공부'는 하지 않는다.


공부법 책만 잘 팔리는 시대다. 실제 공부에는, 절대적 밀도의 투입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어에 10년, 20년 투자했다고는 하지만, 총 투자 시간 말고, 총 투자 양으로 다시 계산해보아야 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읽은 영어책(영어 학습서 말고, 영어로 된 소설, 영어로 된 서적)은 몇 권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시청한 영어 영화(한글 자막 켜고 본 영화는 제외하고, 순수하게 목표 언어로만 시청한 영화) 몇 편이나 되는가?


느슨한 노력 투입으로 10년을 할 것인가, 밀도 있는 노력 투입으로 3개월, 6개월, 1년을 할 것인가? 밀도 있게 일정 노력을 투입한 후에는, 여유 있게 걸어도, 쉬어 가면서 해도 어느 정도는 유지가 된다. 그러나, 절대량을 투입한 적이 없다면, 아웃풋도 기대할 수 없다. 하루 30분 미만의, 영어 표현 한 두 개씩 매일 공부 정도는, 감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비약적 실력 향상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단 몇 달 만이라도 밀도 있게 공부하고 나면 비약적 실력 향상의 느낌이 온다. 만약, 시험 영어(토플, 텝스 등)를 공부하고 있다면, 시험 영어가 아니라 '영어 자체'를 밀도 있게 공부한 후, 단기간의 유형 학습으로 시험을 쳐야 한다. 토익 문제집을 6개월간 혹은 1년간 들고 있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공부 방법은 없다.


둘째, 한국인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목표 언어를 배우는 데에 있어서, 직접 해외로 나가서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책 읽기다. 그중에서도 목표 언어로 된 '소설 읽기'는 한 두 권에서 시작해서 네다섯 권만 읽어도, 소설을 읽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영어의 감과 어휘를 장착하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한국인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모국어로 된 소설도 읽지 않는데, 목표 언어(가령, 영어)로 된 책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 말이 불편할 수도 있다. "나는 책을 읽는다. 당신이 뭔데 나의 독서 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가?" 라면서 말이다.


국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있는 책을 살펴보자. 대부분이 '방법론'책, 혹은 '자기 계발서' 그 외, '각종 공무원 대비 수험서'들이다. 2021년 4월 마지막 주 기준,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영어 베스트셀러로는 1, 2위가 'EBS 수능특강 영어영역 영어, 영어독해연습', 3위가 '공무원 영어 OOO 실전 동형 모의고사'이다. 반면, 우리나라를 벗어나, 아마존 킨들 북스의 순위를 검색해 보면, 1부터 100위권까지 상당수가 소설(Literature & Fiction) 분야에 속해 있다.


해외여행 중, 여유 시간이 있을 때, 한국인들은 사진을 찍고, 유럽인들은 소설을 읽는다. 결혼 전, 남편은 혼자 터키 여행을 다녀왔던 적이 있다. 딱히 볼만한 주변 풍경도 없이,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했던 지루하다면 지루했던 시간 속에서 유럽인들은 대다수가 손바닥만한 페이퍼북을 꺼내어 소설을 읽고 있었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마주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고 했다. 그러는 남편에게 "그렇다면 그때, 당신은 무얼 했느냐?" 물었더니, 본인은 음악을 듣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결혼 후에 함께 한 여행에서도, 영미인과 한국인이 비교되어 관찰되었다. 몇 박 며칠을 머무르며 해변가에서 관찰하게 된 영미인들, 유럽인들 상당수가 태닝을 하는 와중에도 소설책을 꺼내어 읽고 있었다. 반면, 소설책을 읽고 있는 한국인? 본 적이 없다.


1년에 며칠 겨우 휴가 써서 오는 대다수의 우리나라 직장인들과는 달리, 서구인들은 휴가 기간 자체를 여유롭게 설정하고 와서 그럴 수도 있겠다. 여유 있는 그들의 삶과 달리, 항상 각박하고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삶이라는 상황 자체가 한국인을 소설을 많이 읽을 수 없는 민족으로 몰고 갔다. 나 역시, 마음이 급하고, 눈 앞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픽션의 긴 호흡보다는, 논픽션에서 알려 주는 짧은 호흡의 실용 지식들이 받아들이기에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어 감각을 깨우는 데에는, 때론 잘 읽은 소설 한 권이, 비실용서 5권, 10권의 가치를 한다는 것을.  


셋째, '고급 표현'에 집착한다.


윤여정 님의 영어를 보면, 소위 '있어 보이는' 단어가 있는가?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중학교 수준의 쉬운 어휘를 구사하지만, 특정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용례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다. 한 때 회자가 되었던, snobbish(고상한 체하는)라는 단어도, 고등학교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시 1. “Every award is meaningful, but this one, especially being recognized by British people, known as very snobbish people, and they approve of me as a good actor, so I'm very, very privileged and happy. Thank you so much.”


예시 2. "Where were you while we were filming in Tulsa? It's an honor to meet you."

예시 3. (서구권 사람들이 '여정'을 발음을 정확히 못 하고,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말하며) "Tonight, you are all forgiven."


윤여정 님이 이때 과거 시제 생각하고, 능동태/수동태 생각하며, 머리 쥐어 짜내서 말했을 리가 없다. 그녀가 그렇게 영어를 했더라면 듣는 사람도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테니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편안하게 말했고, 선을 넘지 않는 당당함과 솔직함을 전달했다.


소위 '고급 단어', '고급 표현'을 쓰는 것이 지성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단어책에서 본 고급 단어들, 영상 혹은 영어 표현 책에서 건져 올린 '원어민이 자주 쓴다는 고급 표현들' 몇 개 쓴다고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영상이든 책이든 목표 언어의 콘텐츠들을 많이 접하고, 본인 생각을 많이 말하고 써 봐서, 고급 어휘마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야 우리 모두의 '이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열심히 노력한 바의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일 뿐, 그 '이상향'을 목표로 삼고 달린다면, 인과 관계가 뒤집힌 것이다.


학부 때, 원어민 교수님 수업에서 팀 수업 멤버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그녀의 영어는 해외파나 교포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버터를 바르고, 입에 모터를 장착한 영어가 아니었다. 굉장히 담백한 발음과 쉬운 어휘로 영어를 구사했는데, 표현 하나하나가 막힘이 없었다. 그녀의 영어 히스토리가 궁금해졌다. 본인은 중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교과서로 영어 회화를 했다고 말했다. 보통, 일반인들이 중학교 교과서라고 하면 코웃음 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이 안에 기초회화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입시 교육 및 중/고등학교 내신 시험을 단순 암기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공부해 봤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경험상, 고등학교 교과서의 문장들을 영-한으로의 '독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영으로의 '영작'이 되는 학생들이라면, 그 정도 레벨의 '영어 말하기, 스피킹'도 가능하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영어 스피킹 실력이라면, 일상 회화 정도에는 큰 지장이 없다.



넷째, '레벨업'에 집착한다.


유명 초등 어학원의 레벨테스트가 '실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이다. 한국인은 레벨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자녀를 둔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녀는 소위 엄마표 영어로 해냈다는 회사 직장 동료분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 '해냈다'는 기준이 '영어 유치원 및 초등영어로 유명한 모 학원 월반'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현재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이렇다 저렇다,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 해 줄 만한 국가 공인 표준 시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엄마들은 '학원의 레벨'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모모 학원 레테(레벨 테스트)라는 말이 맘카페에서 공식 키워드처럼 쓰이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눈에 보이는 수치에 연연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레벨업'에 집착하게 된 우리는, '내 실력에 맞는 영어 콘텐츠'를 찾아 내 것으로 소화하려는 노력보다는, 영어 회화 학원이나 영어 회화 소모임의 '고급반', '내 실력과는 무관한 고급 영어 콘텐츠'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원 레벨업', '영어 자료 레벨업'이 되었다고 '내 실력도 레벨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앞서 세 번째에 언급했듯이, 중고교 교과서 수준의 영단어 만으로도,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레벨업'이라는 것을.


마지막, '타인의 평가/시선'을 의식다.


영어로 잘을 말하려면?


우선, 대화 상대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잘 듣지 않는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잘 듣지 '못'한다. 이유는, 내가 말할 차례가 왔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 내가 만난 영어 학습자들 상당수가 그러했다. 그런데, 또 이들 중에 상당수가, 한국인들이 한 두 명이라도 끼어 있는 상황보다, 아예 외국인으로 둘러싸여 있는 환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한다. 역시 이유는 비슷하다. 다른 한국인들이 나의 발음이나, 내 영어 실력을 '평가'할까 봐, 신경 쓰여서 영어로 말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인 나 역시 다른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려고 하니, 저 한국인 역시 나의 영어 실력을 '평가'할 것이라는 게 신경 쓰이는 게다.


나 역시, 과거,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군분투의 과정을 거쳐 왔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할수록, 완벽을 추구하게 되고, 완벽함을 추구하면 결국 입을 떼기 힘들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먼저', 타인의 실력을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의 영어 발음이나 문법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타인의 삶에 불필요한 관심을 기울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관심이 긍정적인 관심이 아니라, 때론 부정적인 기운을 뿜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과, 타인의 삶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삶의 태도를 영어에도 적용한다. 영어로 대화할 때는( + 가령, 영어로 토의를 한다든지, 영어로 회의, 혹은 발표를 한다든지), '내용'에만 집중한다. 대화의 내용에 대한 '공감'과, 발음 및 문법의 정확도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내면에서부터 먼저 변화가 시작되면, 나 역시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우선은 내뱉고, 개선시켜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나중에 수정한다.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들다)', '휴먼 여정체(직설적이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 솔직한 그녀의 입담을 닮은 글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가녀린 체구의 만 73세 여성의 세대를 넘나드는 영향력에 놀라면서도, 그녀의 유연하고 위트 있는 멘트들이 전해 주는 시원시원한 통쾌함, 진솔함, 대화 상대자에 대한 배려심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돌직구 윤여정 님의 영어처럼, 한국인의 영어 말하기도 '부담을 내려놓는 편안한 말하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은, 타고난 언어 감각의 소유자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 샤론 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다.'의 휴먼 여정체 윤여정 님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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