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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an 29. 2022

네 옆엔 평생 아무도 없을 거야

좌절하지 마. 앞으로 만날 인연들이 더 많아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많은 이들은 이 질문을 보고 소개팅 상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이 질문은 이제 한물 간 듯 싶다. 만약 내가 이 질문을 누군가에게 듣는다면 피식하고 웃음이 날 것 같다. 늘 그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변하고 있고 이미 변화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위 질문을 대체할 수 있는 질문이 새롭게 생성되었다. 바로 MBTI이다. 소개팅 외에도 친구를 사귀는 등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요즘들어 꼭 나오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MBTI는 인간의 성격을 16가지로 나누어 분류하는 것으로, 꽤나 꼼꼼한 검사를 통해 한 사람에 하나의 MBTI가 주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 유형을 고작 16가지로 나눌 수 있냐며 믿지 않지만 나는 MBTI를 꽤나 믿는 편이다. 여러 사람들을 접하면서 MBTI의 정확도가 높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MBTI는 ENFJ이다. 풀어서 써보면 (E) 외향적이고, (N) 공상이 많으며, (F) 감수성이 풍부하고, (J) 계획적인 인간이다. 최근 MBTI에 붐이 일어나면서 유튜브 등 다양한 SNS에서 16가지 MBTI별 특징을 소개해주는 게시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나 또한 한땐 소소한 재미로 많은 영상들을 보았다. 때론 친구와 함께 보면서 서로에게 맞는 듯한 부분에 감탄을 하며 놀라기도 하였다. 나의 MBTI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 강아지’라고 한다.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맞다. 나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내가 좋다. 그런데 도가 조금 지나친 걸까. 이러한 나의 성향 때문인지 나는 늘 나보다 남이 우선인 삶을 살았다. 어쩌면 나보다 남을 신경 쓰면서 사는 게 나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람을 좋아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은 나의 삶에서 종종 있었다.

     

 나는 늘 주변 친구가 힘들어할 때면 옆에서 위로를 해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거나 도움을 주면 쉽게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 탓일까. 남들은 나와 조금 다른 듯하다. 나는 베풀고. 그들은 나의 선의를 받고. 그리고 그것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는 금방 까먹기까지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그리고 그들도 모르게 그들이 나를 이용하는 일은 잦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넘어야 할 큰 산인 수능을 앞둔 19살 수험생 시절, 오래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로 하며 며칠째 감지 않은 머리를 하고 있던 나는 남자 친구와 헤어져 울면서 거리를 방황하던 친구의 전화 한 통에 씻지도 않은 채 5분 만에 후다닥 집에서 뛰어나갔다. 그러고선 친구를 위로해주고 기분을 풀어주느라 하루를 다 써버렸다. 저녁이 되자 친구에게 남자 친구의 연락이 왔고 친구는 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다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생각에 웃음이 끊기지 않은 채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빠르게 가버리던 친구의 모습에 조금은 허무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주변 사람이 힘든 순간에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 생각하니 뿌듯했다. 친구도 속으로 나를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었다. 얼마 뒤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4년 동안 가장 친하다고 믿은 그 친구와 사소한 문제로 크게 다툰 뒤 다시는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 그 친구가 장문의 문자로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마구 쏟아내었지만 딱 한마디만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네 옆엔 평생 아무도 없을 거야.”

    

 집에 초대한 친구를 위해 음식까지 준비했는데 계속해서 시간을 미루다 결국 오지 않은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던 한 친구는 곧바로 나에게 전화했다. 자신의 집에 와서 음식을 먹어줄 수 있겠냐고 하였다. 나는 곧 퇴근하시는 친구의 부모님에 고작 30분 정도 함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요금이 넘는 택시비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1분이라도 더 함께하며 위로해주려고 급히 서둘러 친구의 집에 갔다. 친구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 보였다. 또다시 뿌듯함이 몰려왔다. 역시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건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가 친구에게 만나기를 권유할 때면 친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와의 만남을 귀찮아했다. 결국 그 친구와도 자연스레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뿐인가. 심지어는 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나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는 내가 힘들 때 나에게 조언도 해주고 자주 만나던 내가 평생 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던 친구이다. 이 친구와 함께한 세월도 벌써 5년이 넘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서로의 단점을 보게 되고 불만이 생기고 짜증도 내며 관계가 틀어질 뻔한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지만 항상 끝에는 서로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서로 고치려 노력하며 점점 관계는 안정적이게 되었다. 이 친구만큼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나 스무 살이 되는 새해같이 특별한 날엔 늘 이 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는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듯 보였다. 친구는 난생처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스무 살이 되는 1월 1일같이 또래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는 날엔 늘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을 우선시하였다. 물론 다른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부분에 서운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단 한 번이라도 특별한 날인만큼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주길 바랐다. 단순히 동네 미용실에 혼자 가기 싫으니 함께 가달 라거나 심심한데 연락할 만한 친구가 없어 나에게 만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난 ‘필요할 때마다 연락하면 바로 달려올 친구’ 딱 그뿐이라 느끼면서도 나는 나를 찾아주는 친구의 연락에 덥석 좋아라 하며 늘 친구에게 달려갔다. 말은 안 해도 속으론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아니었다. 이 친구도 내가 필요하지 않을 땐 나를 귀찮게 여기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걸 조금씩 느끼면서도 애써 부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확실히 깨달았다. 나와 함께할 땐 오는 연락마다 일일이 보고 답하고 여러 번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친구가 나의 문자엔 다음날 저녁이 되도록 답장이 안 오고, 사진과 함께 미용실에 갔다 왔다는 나의 문자에 "ㅊㅋ"이라는 답장만을 보내었을 때.

     

 그때부터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에 빠졌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남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는 게 나에게 좋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는데 그 믿음이 깨졌으니. 내 마음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모든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며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고, 또 어느 날엔 그동안 나의 연락에 귀찮아하는 태도를 보이고 결코 먼저 연락하지 않던 친구의 문자 한 통에 또다시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에 한 드라마를 보았는데 드라마 여주인공의 별 거 아닌 대사가 나에겐 위로가 되었다.

“아, 나 친구 없었지.”

여주인공에겐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충실히 회사 생활을 하며 동료들에게 존경받는 상사이고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 캐릭터였다. 무엇보다도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내고 친구가 없다는 말을 창피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내 눈에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보기로 하였다. 나를 우선시하는 사람. 쓸데없는 감정소비 대신 자기 계발에 힘쓰는 사람. 주변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조금은 외롭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는 사람. 이후로 나는 예전처럼 관계가 끊어질까 걱정하며 끊긴 대화를 이어가고자 먼저 연락하지 않았으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 애썼다. 자기 계발을 위해 평소 관심 있던 글쓰기를 배우고 글을 쓰며, 그 글을 책으로 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하였다. 또한 살을 빼기도 하고, 알바를 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도 보고, 혼자 카페에 가서 책도 읽으며 완벽히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혼자 걷는 거리는 꽤나 자유로웠고 어떨 땐 신이 나기도 하였다. 낮에는 자기 계발에 집중하고, 저녁에는 알바를 하며 함께 일하는 또래들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밤엔 오늘 하루에 대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엔 나의 감정을 글로 풀어쓰고 다음날 계획도 세우고 유튜브와 같은 SNS를 보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띄엄띄엄이라도 연락하며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던 예전이 나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최근에 이러한 고민을 나와 함께 일하는 한 살 어린 동생에게 털어놓자 그 친구가 그동안 멀어져 가던 관계를 붙잡으려 애쓴 내가 답답하다는 듯 말하였다.

“저 같으면 그냥 안 만나고 말아요. 제 가치를 몰라주는 사람하고 뭐 하러 관계를 이어가려고 애써요? 그냥 그런 친구는 신경 쓰지 마요. 시간이 아깝다!”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 시들한 관계에 매달리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고 갑자기 지금 당장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생기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맞아! 어차피 앞으로 만날 사람이 더 많은데 뭐.”

이 말을 하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말은 나의 아버지가 식사 중에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다.

“사람들은 항상 지금 함께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할 것이라 생각하며 때로는 자신이 가진 관계에 연연하며 나를 챙기지 못할 때가 있지만, 살아보니 매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바뀌더라. 어릴 땐 골목에서 놀던 친구가, 학생 시절엔 같은 반 친구가, 대학생 땐 동기가, 사회에 나가서는 동료가 내 옆에 있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어. 그러니 지금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너무 좌절하지 마. 앞으로 만날 인연들이 훨씬 더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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