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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은 Nov 16. 2020

감각의 어머니 래퍼런스

감각을 키우는 래퍼런스

이전 글에서 말했지만 나는 감각이 디자이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감각을 키우기 위해(날카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모든 클라이언트들과 시니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래퍼런스'가 정답이다.


'래퍼런스 찾아주세요', '래퍼런스 보여주세요', '기획서 말고 래퍼런스 없나요?' 등 실무자라면 질릴 정도로 들은 래퍼런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듯 래퍼런스는 원활한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래퍼런스를 참고하는 방법은 실무에서 래퍼런스를 참고하는 방법과는 조금 다르다. 실무에서의 래퍼런스는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서로 느끼고 있는 결이 일치하는지 알기 위해 참고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감각을 기르기 위한 래퍼런스 참고 법'이다.


감각이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라면 래퍼런스는 그 길 위의 등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면 어두운 곳에서 길을 더듬는 감각만으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고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한명의 머릿속에서만 만들어낸 작업물이 수많은 래퍼런스를 참고해서 만들어진 작업물보다 좋은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렇다면 어떻게 래퍼런스의 등불을 밝힐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양'이다. 많은 양의 래퍼런스를 보면 저절로 감각이 길러진다, 아니 길러질 수밖에 없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높은 퀄리티의 작업물들에 많이 노출되면 될수록 미완성된 작업물에서 느끼는 질적 결핍감은 커진다. 다른 창작자들이 이 결핍을 어떻게 만족시키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관찰'이다. 래퍼런스에서 어떤 부분이 완성도를 높이고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 더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래퍼런스를 제대로 관찰하기 시작하면 몇몇 작품에서는 디테일에 감탄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 디테일들이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해'다. 가장 좋은 것은 작품이나 결과물의 창작자가 설명해놓은 글을 읽는 것이지만 주관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것도 좋다. 어떤 효과를 이용했고 그 효과가 어떤 느낌을 내는지,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을지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관찰한 래퍼런스에 대한 디테일이나 효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로직'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래퍼런스의 의도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을 훈련하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에서도 의도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네 번째는 '모방'이다. 이제는 보는 것을 넘어 실제로 해보는 훈련이다. 래퍼런스를 똑같이 만들어보는 것이다(물론 모방한 작업물은 습작으로서 남겨야 한다). 신기하게도 똑같이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똑같이 만들다 보면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생기는데 이것이 핵심이다. 호기심대로 효과를 수정해보고 레이아웃을 바꿔보고 새로운 효과를 적용해보면서 원작에서 멀어지는 훈련을 하면 어느새 모방이 아닌 '응용'을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영감'이다. 모방과 영감을 구분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실제로 둘 사이에 선명한 선이 없기 때문이다(심지어 창작자 본인도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래퍼런스를 응용하는 다음 단계가 영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구분법은 창작자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업물에서 같은 감각을 표출할 수 있느냐'이다. 모방자는 다시 그 감각을 찾아내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영감을 받아 스스로 감각을 찾은 사람은 다시 한번 표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응용에서 영감으로 넘어가는 것에는 정말 정답이 없지만 조심스레 생각한 결론은 '교묘하게 응용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부정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원작에 대한 응용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교묘하게 응용하다 보면 어느새 원작은 사라지고 원작에서 나온 감각만 남는데 이것이 영감이 아닐까 생각한다(이 부분은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고 아직 디벨롭이 필요한 주장이다).




이렇게 래퍼런스를 참고하면 대충 턱을 괴고 스크롤을 내리며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더 빨리 피곤해진다. 하지만 헬스장에서 빡쎈 운동을 끝낸 후처럼 우리의 감각은 근육이 붙고 더욱 단단하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방법론에 불과하다. 내가 지금 까지 한 말은 '꾸준히 성실하게 운동하면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다만 조금 더 디테일한 운동법을 알려줬을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다. 실천이 없으면 방법은 종이쪼가리일 뿐이지만 실천이 있다면 방법은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래퍼런스를 참고해야 할지 모르고 헷갈릴 것이다. 상관없다, 헬스를 처음 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운동해도 근육이 붙는 것처럼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래퍼런스가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래퍼런스를 위한 래퍼런스라고 부른다. 이것은 네 번째 모방 단계에서 연습한 것을 실제 작업물로서 공유하는 것인데, 여러 위험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인 위험은 자신의 실력을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방한 작업물에 대한 칭찬을 받고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실제 자신의 실력이 그 정도인 줄 착각하게 된다. 실제 실력과 자신이 생각하는 실력의 인지부조화가 가장 큰 위험이다.


놀라운 것은 생각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아무렇지 않게 래퍼런스를 목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찔릴 것이고 심지어 나도 이렇게 작업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상관없다, 자신이 잘못됐음을 아는 것이 발전의 시작이다. 지금부터라도 래퍼런스를 위한 래퍼런스를 경계하고 감각을 발전시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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